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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성경지도]에 대하여) -정약용 지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둘째형님께서는 깊이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上仲氏 [성경지도]에 대하여 [성경지도(盛京地圖)]는 세번이나 원고를 고친 뒤에야 다른 여러 글들과 겨우 서로 맞게 되었는데, 참으로 천하의 진귀한 책이자 우리나라의 더없는 보물입니다. 문인이나 학사는 이 지도를 보지 않고 동북 지방의 형세를 논할 수 없을 것이며, 장수나 군주(軍主)는 이 지도를 보지 않고 양계(兩界)의 방어를 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그것을 보건대, 이세적(李世勣)*이 고구려를 공격했을 때 의주(義州)를 경유하지 않고 곧장 흥경(興京)에서 남쪽 창성(創成)으로 나왔는데, 그 사이의 산천과 도리(道理)가 손바닥을 보듯이 명료합니다. 강홍립(姜弘立)*이 불벌할 때도 창.. 더보기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귀족 자제들이 쇠잔해지는 것 역시 천운) -정약용 지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둘째형님께서는 깊이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上仲氏 귀족 자제들이 쇠잔해지는 것 역시 천운 읍내에 있을 때 아전 집안의 아이들 네다섯명이 제게 배우러 왔었는데* 거의 모두가 몇년 만에 폐하고 말았습니다. 어떤 아이 하나가 단정한 용모에 마음도 깨끗하고 필재(筆才)도 상급에 속하며 글 역시 중급 정도의 재질을 가졌기에 끓어앉혀서 이학(理學)을 공부하게 하였습니다. 만약 머리를 숙이고 힘써 배울 수만 있다면 이청(李晴)*과 더불어 서로 짝이 맞을 것 같았는데, 어찌된 셈인지 혈기가 매우 약하고 비위가 아주 변벽하여 거친 밥이나 맛이 변한 장(醬)은 절대로 목으로 넘기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저를 따라 다산으로 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더보기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물감 들이는 법) -정약용 지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형님께서는 깊이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上仲氏 물감 들이는 법 ​ 산골에서 산 지가 오래되어 시험삼아 풀잎이나 나무껍질을 채취해다가 즙을 내기도 하고 달이기도 하며 물을 들여보니, 오색(五色)이나 자색 녹색 외에도 이름지어 형용할 수 없는 여러 색깔이 배어나와 기이하고 아담하고 잔잔한 것이 매우 많았습니다. 요즈음 중국에서 나오는 비단이나 지폐의 색깔이 기이하고도 속기(俗氣)를 벗어난 것은 모두 평범한 풀이나 나무에서 뽑아낸 물감을 사용했기 때문임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색 외에는 오직 자색과 녹색 두가지만 있는 줄 알고 이것 외의 물색(物色)은 다 버리고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안동답답(安東沓沓)*이라는 것입.. 더보기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돈꿰미의 뜻) -정약용 지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형님께서는 깊이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上仲氏 1811년 겨울 돈꿰미의 뜻 ​ 거론하신 9.6과 방(方). 원(圓)의 관계 개념은 서로 맞지 않는듯싶습니다. 8로 1을 에워싼 것이 9이고 6으로 1을 에워싼 것이 7인데 9는 변음(變音)이지만 7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6으로 1을 에워싼 것이 어떻게 6의 원이 된단 말입니까? 점치는 법에 나오는 7.8.9.6의 숫자는 별개의 법칙성을 갖고 있어 수리가(數理家)가 방과 원을 추산하는 법과는 서로 똑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시 자세히 살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민(緡)이란 돈꿰미입니다. [자서(字書)]나 [운서(韻書)]를 두루 고찰하여도 수목(數目)은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 더보기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현산어보]에 대하여) -정약용 지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현산어보]에 대하여 上仲氏 책을 저술하는 데 있어 한가지 절대로 소홀히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으니, 반드시 십분 유의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해족도설(海族圖說]*은 무척 기이한 책이니 이것을 하찮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도형(圖形)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글로 쓰는 것이 그림을 그려 색칠하는 것보다 나을 것입니다. 학문의 종지(宗旨)에 대해 먼저 그 대강(大綱)을 정한 뒤 책을 저술하여야 유용해질 것입니다. 대체로 이 도리는 효제(孝弟)를 근본으로 삼고, 예약(禮樂)으로 꾸미고, 감형(鑑衡) 재부(財賦) 군려(軍旅) 형옥(刑獄)을 포함하고, 농포(農圃) 의약(醫藥) 역상(曆象) 산수(算數) 공작(工作)의 기술을 씨줄로 삼아야 완전해질 것.. 더보기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시골 장터를 줄여야) -정약용 지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밥 파는 노파에게서도 배웁니다 上仲氏 시골 장터를 줄여야 ​ 오랫동안 백성들 사이에서 살며 백성들의 물정을 보았습니다. 시골의 장터가 마을마다 설치되어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커다란 폐속입니다. 재산을 낭비하고 농사짓는 일을 어지럽히며 술주정을 부리고 싸움판을 벌이는 일과 도적질하고 사람을 죽여 쓰러뜨리는 일 같은 변란이 일어나는 이유가 모두 장터 때문입니다. 단호하게 금하는 것이 마땅하며 큰 고을에는 오직 두 세곳만 남겨두고 작은 고을에는 단 한곳의 시장만 두게 한다면, 반드시 풍속이 순박해지고 송사(訟事)나 재판사건도 줄어들 것 같습니다. 시장을 주관하는 관청에서는 마땅히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 ​#유배지에서보낸편지 #정약용 .. 더보기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빈풍'의 근거) -정약용 지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밥 파는 노파에게서도 배웁니다 上仲氏 '빈풍'의 근거 '백금(伯禽)*의 증손자가 빈공(豳公)인데, 혹 그가 명을 받고 방백(方伯: 관찰사 觀察使)이 되었을 때 빈(豳) 땅에 거주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호칭을 얻었을까요? [빈풍(豳風)]*은 대체로 모두 주공(周公)이 지은 것과 주공을 찬미하는 것들인데, 빈공이 천자(天子)에게 시(詩)를 아뢰었기 때문에 마침내 빈풍이라고 이름한 것일까요? 이에 대해 아마 근거가 있을 법도 합니다. ​ ​ *백금: 중국 주나라 성인(聖人) 주공의 아들. *빈풍: [시경(時經]의 편명 ​#유배지에서보낸편지 #정약용 #유배지에서보낸편지필사 #책소개 #책추천 #독서 #책읽기 #주부독서연구소 #다산정약용 #다산.. 더보기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아버지와 어머니의 차이) -정약용 지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밥 파는 노파에게서도 배웁니다 上仲氏 아버지와 어머니의 차이 어느날 저녁에 집주인 노파가 곁에서 한담을 나누다가 갑자기 물었습니다. "선생은 책을 읽은 사람이니 이런 뜻을 아시는지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은혜는 똑같고 더구나 어머니가 오히려 더 애쓰시는데도, 성인들이 교훈을 세우기를 아버지를 중히 여기고 어머니는 가벼이하며 성씨도 아버지를 따르게 하였고 복(服)을 입을 경우에도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한등급 낮게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혈통으로 집안을 이루게 해놓고 어머니 집안은 도외시하였으니 이건 너무도 편파적이 아닌가요?" 그래서 저는 "아버지께서 나를 낳으셨다,라고 했기 때문에 옛날 책에는 아버지가 자기를 처음 태어나게 하신 분으로 .. 더보기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기문의 하나) -정약용 지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밥 파는 노파에게서도 배웁니다 上仲氏 기문의 하나 ​ 근래[우공(寓貢)]* 의 주(注)를 보았더니, 바로 "팽려(彭蠡:파양호 罷陽湖)와 동정호(洞庭湖)는 겨울에 마른다"라고 하였습니다. 역시 기문(奇聞)의 하나인데, 앞서 책을 읽으면서도 한번 훑는 식으로 대충 지나가버렸으니 탄식할 일입니다. ​ *우공: [서경]의 편명. ​ ​#유배지에서보낸편지 #정약용 #유배지에서보낸편지필사 #책소개 #책추천 #독서 #책읽기 #주부독서연구소 #다산정약용 #다산 #두아들 #두아들에게보낸편지 #두아들에게주는가훈 #둘째형님께보낸편지 더보기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요국 요순시대의 고적법) -정약용 지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중국 요순시대의 고적법 上仲氏 요순 시대의 나라 다스리던 법은 뒷날의 세상에 비교해볼 때 훨씬 엄혹하였으며 물을 부어도 새지 않을 만큼 빈틈없이 짜여 있었다는 것을 요 몇년 사이에 깨달았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요순의 정치는 순박하고 태평하여 천하가 저절로 조화를 이루는 경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이치입니다. ​ 어리석은 제 소견으로는, 태초에 인간이 태어날 때 모두가 식욕이나 색욕을 지니고 있어 뿌리나 덩굴처럼 온통 악습으로 얽혀 있기 마련인데, 어떻게 저절로 평화로운 세상이 될 수 있겠습니까? 공자께서 항상 말씀하시길 "요순시대는 희희호호(熙熙皞皞)하였다." 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것을 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