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이 없다>
조선시대의 쾌남아 임제林悌의 이야기다.
잔칫집에 갔다가 술이 취했다.
신을 신고 문을 나서는데 하인이 곁에서 한마디한다.
"나의리! 신발을 짝짝이로 신으셨습니다요.
왼발은 가죽신이고 오른발엔 나막신인 걸입소."
술 취한 나으리는 끄떡도 않고 말 위로 훌쩍 올라탄다.
"야, 이눔아!
길 왼편에서 보는 자는 저이가 가죽신을 신었구나 할 테구,
길 오른편에서 본 자는 저이가 나막신을 신었군 할 테니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이냐! 어서 가자."
막인즉 옳다. 말 탄 사람의 신발은 한쪽만 보인다. 짝짝이 신을 신었을 줄은 누구도 짐작 못한다.
저 본 것만 가지고 반대쪽도 그러려니 여긴다.
걸어갈 때야 우습지만 말만 타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짝짝이 신발도 중간에 말이 놓이고 보면 알 수가 없게 된다.
우리의 판단은 항상 이 대목에서 문제가 생긴다.
...........
중간에 서서 보면 짝짝이 신발이 제대로 보인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한눈에 잡힌다.
곁에서 보면 반만보이고, 반만 봐서는 일을 그르친다.
그런데 그 '중간'이란 위치가 참 알기가 어렵다.
다 지금 제가 서 있는 곳이 중간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은 뭐라 해도 저만은 옳게 보고 똑바로 본다고 여긴다.
그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알았을 때는 이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난 뒤다.
........
섣부른 단정과 외골수의 독선, 나 아니면 안되고, 제 생각만 옳다는 과신이 불화를 낳고 불행을 부른다.
중간은 어디인가? 짝짝이 신발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 이명과 코골기에 현혹되지 않을 위치,
이가 생겨나는 바로 그 지점은 어디인가?
조변석개朝變夕改 하는 세상과 사람들 틈에서 어떤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좌표는 어디다 마련할 것인가?
그것은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만 할 수 있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 중간은 어디에 있나?
출처: 스승의 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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