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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독서HAZA365>/책속글귀-2015년

<책속글귀- 유식의 즐거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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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때와 장소를 가리는 것이 중요하다

다언하익: 多言下益


말을 많이 하면 이익보다는 시비거리만 생긴다는 뜻이다.

사람을 다른 동물과 비교해 본다면,

육체적으로는 크게 강자(强者)가 될 요소를 갖고 있지 못하다.

다른 짐승들이 가진 발톱, 이빨, 뿔, 날개, 어느 것도 없다.

그러나 사람은 다른 동물들이 갖지 못한 말을 갖고 있다.

이 말을 통해서 사람들 사이에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


사람만이 지혜(智慧)를 교환할 수도 있고, 축척(蓄積)할 수도 있고, 계승(繼承)할 수도 있다.

한 개인의 정신적인 능력은, 옛날 사람들에 비해서 엄청나게 확장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여러 사람들의 정신적인 능력을 교환하고 축적하여

후세에 영원히 계승되기 때문에 인류(人類)의 문화(文化)는 쉬지 않고 발전해 올 수 있었다.

인류문화 발전의 가장 큰 공신(功臣)은 바로 말이다.

글이란 말을 표기(表記)하는 부호(符號)이고,

책이란 글을 통해서 말을 표기하여 실어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 근본은 말이다.


말이 존재하지 않는 인류사회(人類社會)를 한 번 상상(想像)해 보시라.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말의 고마움을 알고서, 말을 아름답게 깨끗하게 우아(優雅)하게 적절하게 써야 하겠다.

이 좋은 말을 가지고 남을 헐뜯거나 모함(謀陷)하거나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세상을 혼란하게 하는 데 써서는 안되겠다.


옛날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자금(子禽)이란 사람이 그 스승인 묵자(墨子)에게 물었다.

"선생님,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유익합니까?"

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맹꽁이나 개구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혀가 닳을 정도로 울고,

파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윙윙거린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그 소리를 귀찮게 생각하여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그러나 새벽의 닭을 보게나, 시간 맞추어 몇 번 울면 천하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서 반가와하면서 잠에서 깨어나 하루의 설계(設計)를 하지 않던가?

말이 많은 것이 어찌 유익하겠는가, 말을 때에 맞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말을 때에 맞게 하는 것은 정말 옳은 일이지만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때에 맞게 하려고 계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말을 실천이 따를 때 그 가치(價値)가 살아나는 것이다.


공자(孔子)는 '군자(君子)는 말을 천천히 하려고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하려고 한다'는 말을 남겼다.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은 자기의 잘못한 말 한 마디가  자기자신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온 나라 국민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신중(愼重)히 해야 한다.

말을 많이 한다고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적절하게 때에 맞게 해야만 한다.


 



 


 



귀에 대고 조용히 말하라.

부이세어:附耳細語


남의 장단점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의미로 쓰인다.

황희 정승이 벼슬길에 오르기 전의 일이다.

어느 날 친구 집으로 가는 길에 들판을 지나다 잠시 쉬게 되었다.

들판에서는 농부들이 소를 몰며 논을 갈고 있었는데 황희는 그것을 보고 농부에게 말을 걸었다.

"노인장, 그 두 마리의 소 중에서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하오?"

그러나 농부는 황희에게 가까이 다가와 옷소매를 잡아당기고 소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더니 귓속말로 속삭였다고 한다.

"누런 소가 검은 소보다는 훨씬 일을 잘 합니다."

그런데 노인장, 어느 소가 일을 잘하던 그것이 무슨 큰 비밀이라고 예까지 와서 귓속말을 하십니까?"

이 말을 들은 농부는,

"젊은 선비, 모르는 소리하지 마시요.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자기를 욕하고 흉을 보면 기분을 상하게 되는 것이요."

농부의 말을 들은 황희는 얼굴이 화끈해 옴을 느꼈다.

비록 그 소들이 사람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한다 해도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는 입장에서 잘한다 못한다 하고 흉보는 일은 나쁘다는 교훈이었다.

"저 노인장은 비록 농사를 짓고 있으나 학덕이 높은 선비인 것같구나!

 오늘 나는 저 노인장에게서 아주 값진 교혼을 얻었으니 평생 잊지 말아야지."

황희는 자기가 부리는 짐승에게 까지 세심한 배려를 하는 노인장에게 깊은 감명을 받고

크게 깨달은 바를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학도 훗날 백성의 아버지로서,

뛰어난 명 재상으로서, 조선의 새 역사를 창조하는데 기둥이 되었다고 한다.




계란에도 뼈가 있다.

계란유골:鷄卵有骨


운수가 나쁜 사람의 일은 모처럼 좋은 기회가 와도 무엇하나 뜻대로 되는 일이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조선(朝鮮) 세종(世宗)임금 때 황희(黃喜)라는 정승 한 분이 있었는데 천성이 청렴(淸廉)하다보니

가세(家勢)또한 청빈하기 그지 없었다.


하루는 세종대왕이 그 청빈함이 사실인지 탐문하여 확인하고자 기별없이 황정승 댁으로 행차하게 되었다.

어가(御駕:임금의 수레)가 들이닥쳤을 때 황정승 댁에는 부인과 따님 둘이 있었는데,

예법(禮法)에 따르면 세 여인이 동시에 나와 차례로 인사를 올려야 할 것이나

이상하게도 황정승 부인이 먼저 나와 인사하고 들어가자 한참 있어 맏딸이 나오고

맏딸이 들어가자 또 한참 있어 둘째 딸이 나오는 것이었다.


세종대왕이 하도 이상하여 그 연유를 알아 보았더니 세 여인 모두 예복 하나를 번갈아 입고 나오느라고 그랬던 것이다.

"오! 짐이 듣던 대로 조금도 차이없이 청빈하도다!"

​궁궐로 돌아온 세종대왕은 어떻게 하면 황정승의 형편이 펼 수 있을까 곰곰히 궁리하다

묘안을 생각해 내고 황희정승을 조용히 불렀다.

"짐이 보아하니 경(卿)의 가세가 극빈(極貧)한지라 경을 돕고자 하니 경의 의향은 어떤고?"

그러나 그 말을 곱게 받아드릴 황희가 아니었다.

"전하! 신에게 하해(河海)와 같이 생각해 주시는 그 은총 고마웁기 그지 없사오나

청빈함이 오히려 마음 편하거늘 그 말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그러자 세종대왕은 허허 웃으면서

"아니로다, 가세가 그렇게 청빈하고서야 어찌 나라 일에 힘을 다할 수가 있겠는고?

짐이 생각한 묘안은 결코 백성을 괴롭게 하지 않을 것이니 마음을 놓아라!" 하고 말했다. 

"전하! 그러면 대체 무슨 수라도 있나이까?" 

"이제, 장날 두 날을 정하여 한양의 남, 서, 동 세 대문에 사람을 보내어 지켜 섰다가

팔러 들어오는 쓸만한 물건은 모두 경이 차지하도록 하리로다!"

그 말을 들은 황희 정승은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이라고 펄쩍 뛰었다. 

"전하! 모두 다 따르겠사오나 오직 이 일만은 따를 수가 없겠사오니 그만 거두옵소서."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황정승과 더 말해야 쓸데없음을 깨달은 세종대왕은

 "그럼, 이 일에 대해서는 더 말을 말라,"고 말하고서 그 첫 장날이 되자

궁중의 궁문지기 수십명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돈한꾸러미씩 주어 새벽부터 저녁까지

물건 팔러 들어오는 장사치들의 반반한 물건을 택해 사서 황정승택에 가져 가도록 명했다.


그런데 그 날따라 꼭두새벽부터 비바람이 기승을 부리며 저녁 늦도록 도무지 그칠 줄을 몰랐다.

그리하여 그날은 장날이 폐장이 되고 말았다.

세 곳 궁문지기들은 그만 낙담실망하여 막 궁궐로 돌아가려 했다.

바로 그때 동대문께로 수염발이 하얀 시골노인 한 사람이 계란을 한 꾸러미를 안고 서울 장거리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저, 노인장! 그 계란은 팔 것이옵니까?"

"예, 급히 팔아 요긴히 쓰려고 이렇게 급히 오는 길이웨다."

궁문지기들은 두말없이 그 계란을 달라는 값대로 사가지고 황정승댁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리오. 그 달걀들은 몽땅 곯아빠진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세종대왕은 못내 탄식해 마지 않았다. 

"안되겠구나, 짐이 황희 정승을 갈별히 생각하여 그런 묘안을 내었건만 하필이면 그 계란마저 곯아빠진 유골이라니....."

세종대왕은 그 다음 장날 계획을 깨끗이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세종임금으로서도 어찌 알 수가 있었으랴!

그날 곯아빠진 썩은 계란을 가지고 뒤늦게 장에 들어선 시골노인이 바로 변장한 황희 정승 자신이었다는 것을.....

아무튼 이로부터 항간에는 계란에 유골이란 속담이 널리 퍼지게 되었으니

원래는 '곯다'의 음을 그대로 따서 '골'자를 쓴 것인데,

그 뒤로는 '골'을 뼈 골(骨)로 보아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것으로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유식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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