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랄라 심리카페>
!우리는 가끔 자신에게 일어나는 현상들을 이해하지 못할때가 있다.
나는 왜이렇까? 나만 이런것일까? 나에게 일어나는 심리현상에 대해 궁금증이 발생한다.
주위에 같은 증상을 나타내는 사람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려 해도 제각각이므로 속시원히 이유를 알길이 없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례를 전문가의 견해로 풀어준다면, 내가 왜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는지를 알게된다. 자신의 고민에 대한 해답을 알고 스스로 자각한다면, 자신을 이해하거나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다. 왜 이런 마음이 들고 행동하는지를 알게 되면, 고치려고 노력하게되고 자신을 다스리는데 도움을 받을수 있다.
저자의 전문적인 지식과 다양한 사람들의 고민거리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었다.
그중 몇가지를 공유해볼까 한다.
1장/ '나'자신을 알라
나는 왜 늘 비슷한 사람을 만날까요?
-오만 가지 보상 심리가 꿈틀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무의식에는 이전에 가지려 했으나 결국 가지지 못한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깔려 있습니다.
아쉬움과 그리움이란 감정 밑에는 약이 오를 때 느끼는 감정인 모멸감이 꿈틀대기 때문입니다. 이 감정은 독성 감정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그 독을 중화시키는 행동을 취해서 멘붕을 막으려 합니다.
연애를 할 때마다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과거에 풀지 못했던 마음의 응어리들을 현재의 사랑에서 찾음으로써 과거에 이루지 못한 의존 욕구도 채우고 설욕도 하고 동시에 속죄도 하고 싶은, 실로 오만 가지 보상심리가 꿈틀 대고 있는 것입니다.
연애를 하든, 공부를 하든, 비즈니스를 하든, 내 마음속 음지에 꿈틀대고 있는 콤플렉스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합니다.
그래야 무의식의 힘에 무기력하게 휩싸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통장과 지갑을 계속 확인해야 안심합니다.
-의존 욕구와 독립 욕구가 갈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강박증이 나타났다는 것은 자신이 의존과 변화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래서 고통스럽긴 해도 두 마리 토끼 중 한마리를 선택하기 전에 잠시 가져야 하는 의미 있는 휴식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선택은 어 좋은 것을 고르는 것보다 버릴 것을 고르는 것이 보다 쉽습니다.
상실을 접하면 판단력은 한층 더 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균형 잡힌 안전한 관계냐, 아니면 더 큰 균형으로 나아가기 위한 일시 불안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어떤 결정이 과연 내게 만족을 줄지 잘 따져 보시기 바랍니다.
혼자 있을 때 자꾸 혼잣말을 하고 있는 내가 무섭습니다.
-아기의 옹알이처럼 혼잣말은 내 감정을 읽는 비밀 통로입니다.
한편, 당연한 말이지만, 말실수는 무조건 조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혼잣말의 원리를 이해한다면 무심결에 튀어나온 말실수들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언(失言)또한 자신의 속마음을 스스로에게 얘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혼잣말과 달라 주변 사람이 있을 때 무심결에 튀어나오는 심한 말들은 자기를 지키기 위해 타인을 착취하는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타인보다 우월하다는 걸 확인해야 자신의 자존감을 유지한다는 식으로 빠질 수 있으니까요.
흔히 이런 사람들의 내면은 굉장히 엄격한 잣대를 스스로에게 들이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잣대가 너무 강해 주체가 안 되면 무고한 타인에게 그 잣대를 양도함으로써 자신의 그 잣대로부터 살아남게 됩니다.
따라서 자신의 잣대를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하향 조정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관대하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의 흠을 잡을 일도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메아리를 밀쳐 내는 대신 친숙해지려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아무 화장실이나 가지 못합니다.
-수줍은 '방광증후군', 내 안의 의존심부터 걷어 내야 합니다.
내안의 의존심을 발견하려는 태도가 수줍은 '방광증후군'을 극복하는 데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무의식 속에서 겁먹고 수줍어하는 아이를 발견하는 것이 회복의 첫 걸음입니다. 화장실이야말로 말 그대로 '작가 자기 볼 일 보기도 바쁜 곳'입니다. 성인이 된 당신은 이제 당신 주변을 서성이며 놀리려는 친구도 없고 함부로 할 사람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조롱을 겁내는 이유는 타인의 반응으로 자신을 확인하려는 의존심 때문입니다.
바라니까 겁이 나는 것입니다. 남을 향한 의존심을 버리면 남이 겁나지 않습니다.
참고로, 대인공포증을 앓는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타인이 자신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 때문 꽤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실은 대인공포증을 가진 이들이야말로 타인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타인을 조롱이나 일삼는 나쁜 사람으로 간주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대인공포증에 빠진 사람이야말로 가장 남에게 적대적이며 비판적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선입견이 심합니다.
-선입견은 내면이 성장하면서 겪는 성장통입니다.
내게 영향을 줬던 과거의 사람이 지금 내 옆에 있는 현재의 사람과 다르다는 걸 느끼고 받아들이는 일은 인격이 성숙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콩깍지가 쓰인 듯 지나치게 좋았다가 낭패를 보거나, 반대로 상대의 의도를 오판해 미워했다가 나중에 그게 아니었음을 알고 때늦은 후회를 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는 점차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마음의 착시현상은 내면이 성장하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일종의 성장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장/ '사랑'도 사람이 된다.
외롭다고 애인을 자꾸 바꾸는 것, 괜찮나요?
-내면의 굶주림을 채우려 이성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외로워서 연애를 하는 것만큼 최악의 실수는 없습닏. 외로움은 결코 연애로 해소될 수 없는 자신의 증상이자 심리적 결핍입니다. 때로는 결핍이 관계로도 치유될 수는 있으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치료적인 관계에서만 가능합니다.
만성적인 외로움이 사랑하는 관계에서 해소되기 힘든 이유가 바로 이런 점 때문입니다.
상대가 치료적인 태도로 나를 맞아 줄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초반 몇 개월 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지치게 되고 결국 나가떨어지고 맙니다. 상대 남성 또한 사랑에 빠졌으니 그녀에게 많은 걸 바라고 원하는 상태에 빠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연애를 한다면, 사랑과 외로움은 별개라는 명재를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외로움은 증폭됩니다.
잊을 만하면 연락하는 남자, 사랑인가요 미련인가요?
-잊었다고 단정 짓는 것부터가 틀렸습니다.
이사람 저사람 자주 연락하고 챙기는 것을 뜻하는 '어장관리'입니다. 어장관리 유형을 알아 두면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건지 유추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의무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특히 조심해야 할 부류는 이성을 많이 사귀는 것을 자신의 성공 수단 혹은 액세서리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불안하니까 관리한다'부류가 있습니다.
참고로, 잘 거절하지 못하거나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심리를 이해하려면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자존심은 남에게 굽힞 않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을 뜻합니다.
이에 비해 자존감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즉 자존심에는 남이라는 외부의 기준이 변수로 작용합니다. 남에게 굽히지 않으려면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교를 통한 상대적인 품위가 자존심인 것입니다. 결국 자손심에는 타자(他者)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자존감은 타자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따라 거절을 잘 하지 못하는 심리는 자존심은 센데 자존감이 약한 경우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결혼까지 한 첫사랑을 도저히 못 잊겠어요.
-사랑이라기보다는 멘토이니, 너무 당황하지 마세요.
힘들 때 과거의 사랑이 떠오르는 건 그 사람을 정말로 사랑했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기저에는 자신의 심리적 성장에 반드시 필요했던 그(녀)의 속성을 떠올려 봄으로써 현재의 문제와 불안을 헤쳐나갈 수 있는 언동력을 얻고자 하는 심리가 깔려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힘들 때 내가 멘토로 꼽는 사람, 예컷대 존경하는 스님이나 목사님 혹은 선생님을 떠올리면 지금의 고난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보다 적절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
미천한 제 경험상, 보고 싶어도 참는 것이 낫습니다. 용기를 내서 전화를 걸어 만나는 데 성공했다 칩시다. 만약 여전히 매력 있고 가슴이 설렐 정도로 호감이 간다면, 또 다른 난국에 빠져 혼란이 가중될 것이 뻔합니다. 허나 대부분의 경우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이는 것처럼 미치도록 아름다운 분륜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전 사실 이렇게 될까 더 겁납니다. 첫사랑의 기억 속에서 듬직하기만 했던 그는 지친 샐러리맨이 되었거나 수다쟁이 아줌마처럼 변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행여나 누가 볼까 두려워 남의 눈치를 보는 그에게서 전에 없던 비굴함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미 내 마음의 일부가 된 과거의 '그'마저 망가져 자칫 멘붕의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실망이 아닌 절망 수준의 재앙을 맛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이 양육 문제로 충고를 하면 아내가 화만 냅니다.
-가족의 울타리에서는 모두가 어린아이일 뿐입니다.
충고는 상대방보다 내가 더 잘났다는 무언의 암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그 내용이 옳다 할지라도 서럽고 아니꼬운 느낌을 주기 십상입니다.
게다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우린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도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전제로 깔려 있는 관계에서 상대에게 원하는 건 십중팔구 옳고 그름을 따져 주는 충고가 아니라 공감어린 위로입니다.
부인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맞장구쳐야 할 판에 옳고 그름을 따지고 앉았으니 불화가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주 가끔은 '태도'가 곧 '내용'일 수 있다는 점을 아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른이든 아이든, 생물학적인 나이를 믿지 말기 바랍니다.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는 죄다 어린아이니까요.
남편의 바람기,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상대에게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면 나를 가꿀 때입니다.
이 과정에서 아내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남편의 행동에서 비롯된 배신감과 모멸감입니다.
또한 남편의 외도와 자신의 존재 가치는 절대 무관하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합니다.
자존감이 낮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외도하는 법입니다.
더구나 철면피과가 아니라 스스로 잘못을 뉘우칠 정도의 양심이 있는 남자라면 오히려 남성성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남편의 외도를 접하면, 힘들기는 하겠지만, 불같이 화를 내는 대신 "좋더냐?라며 별 거 아닌 듯 넘어가면서 팅겨 주는 편이 낫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독립하는 것입니다.
보란 듯이 하고 싶은 것 하고 멋지게 다니시길 권합니다.
적은 돈이라도 수입을 만들어 최소한의 경제권을 반드시 획득해야 합니다.
나만의 일을 가지고 사회 활동을 하며 오히려 남편을 등한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억울하고 약 오르던 감정이 어느새 녹아 "아이쿠, 내가 요즘 바빠서 남편을 잘 못 챙겨 주는데, 그 여자 누구인지 몰라도 나 대신 잘 챙겨 줘서 참 고맙네"하고 너스레를 떨 정도까지 되어야 합니다.
상대가 바람을 피웠을 때 화가 나고 약이 오르는 이유는 바로 '왜 내게 없는 게 저 사람에겐 있는 거지?'라는 감정 때문입니다. 이 감정이 바로 시기심입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거나 나보다 많이 가졌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내가 못 하는 걸 하고 있는 걸 보고 있노라면 화가 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기심 때문에 나는 화는 잘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시기심은 일거수일투족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지만 좀처럼 쉽게 인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린 풍습과 관습을 빌어 상대를 비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청증과 의부증이 바로 그것입니다.
시기심의 본성은 파괴입니다. 그리고 시기심이 결혼 생활을 파괴한다면 그 유일한 종착지는 바로 이혼입니다. 시기심에서 비롯된 의처증과 의부증은 마치 연가시처럼 우릴 '이혼'이란 물웅덩이로 몰고 갑니다.
한 가지만 기억합시다. 의처증이나 의부증이 전해 주는 메시지가 있다면, 그건 행복의 대부분을 상대방에게 그만 의존하고 이제는 나 스스로를 가꾸라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여왕이고 남편이 나의 수많은 몸종 중 비리비리한 한 명에 불과하다면 이렇게 애가 타거나 화가 나진 않을 것입니다.
계급의 바리케이드가 시기심을 억제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정리하겠습니다.
'상대가 다른 이성을 만난다.' ≠ '나는 매력 없는 사람이다.(혹은 그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4장/ '직장'은 직장일 뿐
뒷담화, 동참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뒷담화의 내용이 아니라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세요
뒷담화를 늘어놓는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지 않으면서 나의 신념에도 손상이 가지 않게 하는 대처 요령이 있다면, 그건 바로 상대방의 느낌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오, 네가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같은 식의 멘트가 유용합니다.
지각과 느낌이 지배하는 공간에서는 선악의 잣대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러니 적어도 감정의 영역에서만큼은 안심하고 반응해도 절대 나의 가치관에 위배되지 않습니다.
낙하산에게 밀린 뒤로 왠지 모를 불안이 엄습합니다.
-세상에는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습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선악의 잣대 역시 재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나 내가 너무 견고하고 곧은 잣대를 나 스스로에게 들이밀로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바보요, 한 번이라도 잘못하면 죄인이라는 의식이 내면에서 꿈틀대는 한 우린 타인의 시선과 피해 의식으로부터 좀처럼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과 나의 시선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며 남을 향한 분노는 이내 죄책감으로 이어지게 되어 급기야는 피해 의식으로 빠지게 만듭니다.
이럴 때 우린 스스로에게 너그럽고 관대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적용하는 선악의 잣대가 너무 곧기만 하면 자칫 그토록 미워했던 사람과 동일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과 사랑 중에서 어느 쪽을 먼저 선택해야 하나요?
-일의 본질은 사랑을 깨닫게 하는 도구입니다.
일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에 대한 정답은 아마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 갈등을 부추기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바로 지나친 완벽주의일 것입니다.
완벽주의는 철저히 감정을 배제하게 만듭니다. 그러다 보면 비록 업무 능력은 뛰어나더라도 감정이 중요한 사랑에는 서툴기 십상이조. 게다가 이들은 두 가지 중요한 일이 동시에 눈앞에 펼쳐지면 직관보다 논리로 우선순위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안벽주의는 둘 줄 어느 하나가 완성이 되어야 빌소 그다음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합니다.
중요한 동시에 진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완벽주의 안에서는 무엇이든 순서대로 진행해야 합니다.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되는 것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순서대로 일을 풀어 나가야 긴장 또한 풀려 마음이 편해지지 때문입니다.
사랑과 일에 관한 딜레마는 여전히 어려운 숙제입니다. 하지만 우린 철학자 칼릴 지브란의 말에서 그 힌트를 얻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서 <예언자>에서 그는 말했습니다. "일의 본질은 다름 아닌 사랑을 깨닫게 하는 도구"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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