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달과 6펜스>는 프랑스의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의 삶을
모델로 재구성하여 소설로 만들었다.
"달과 6펜스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세계를 가리킨다.
또는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암시하기도 한다.
둘 다 둥글고 은빛으로 빛난다. 하지만 둘의 성질은 전혀 다르다.
달은 흔히 상상의 세계나 광적인 열정을 상징해 왔다.
<6펜스>란 영국에서 가장 낮은 단위로 유통되었던 은화(銀貨)의 값이다.
이 은화의 빛은 둔중하며 감촉은 차갑고 단단하다. 그 가치는 하찮다.
달이 영혼과 관능의 세계, 또는 본원적 감성의 삶에 대한 지향을 암시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그리고 천박한 세속적 가치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사람을 문명과 인습에 묶어두는 견고한 타성적 욕망을 암시한다.
<달과 6펜스>는 한 중년의 사내가 달빛 세계의 마력에 끌려
6펜스의 세계를 탈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나레이터는 그가 문명과는 멀리 떨어진 원시의 섬에서 낙원의 비전을 보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p309
소설속의 스트릭랜드는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를 떠나 파리로 와버린다.
그 이유는 속시원히 알수 없지만 예술에 대한 갈증과 하고 싶은 그림을 그리기 위함이라 보여진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키거나 행해야 할 도리나 규범이라는 것이 있지만
스트릭랜드의 행동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을수 있겠다.
결혼후 의무와 책임감으로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수 없는 우리의 갈증을 대변해 주는 것일까?
자신의 자유로운 영혼으로 삶에 충실하였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천재는 다르게 생각하고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간다.
스트릭랜드의 천재적인 그림을 그 시대에서 알아보는 이는 드물다.
그런 그는 자신이 도움받은 것을 그림으로 대신 값기도 했다.
천재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했던가.
소설속 주인공인 스트릭랜드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삶과 다르게 살아간다.
옳고 그른 것을 떠나 그의 삶에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보게 된다.
그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말의 표현력은 아주 부족하며 사교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팔리기 위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그림그리기이며,
육체적 관능만을 추구하는 여자에겐 무관심한
세속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자기만의 영혼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의 삶이 들여다 보며 기이하기도 하지만 가슴이 뛰고 자유로운 그의 삶을 동경하게 된다.
그에게는 껍데기인 육체에도 목숨도 아무런 가치가 없는것 같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할 뿐이다.라고 말하는 그는
돈을 벌어 그림을 그릴수 있는 재료가 생기면
바로 돈버는 일을 그만두고 하고 싶은 그림을 그리며 살아간다.
그의 삶에 우리의 잣대를 들이대며 옳고 그름을 말할수 있을까?
진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면 자신의 일에 미칠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용기(?)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우리의 천재성을 발견할수 있을까?
또 그 일에 미칠수 있을까?
스트릭랜드의 삶이 일상에서 문득문득 떠오른다.
서머싯 몸의 글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면서 아주 흥미롭고 재미 있었다.
책속으로
세상은 참 매정해.
우리는 이유도 모르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몰라.
그러니 겸손하게 살아야지.
조용하게 사는 게 아름답다는 걸 알아야 해.
운명의 신의 눈에 띄지 않게 얌전하게 살아야지.
그리고 소박하고 무식한 사람들의 사랑을 구해야 하는 거야.
그런 사람들의 무지가 우리네 지식을 다 합친 것보다 나아.
구석진 데서 사는 삶이나마 그냥 만족하면서 조용하게,
그 사람들처럼 양순하게 살아가야 한단 말이야.
그게 살아가는 지혜야.
-p184
!체념하듯 하는 이야기지만 이 말속에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지만 살면서 그것에 대한 물음을 던져야 하겠다.
그리고 사는동안 늘 겸손한 마음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언젠가 겸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겸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이 자만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자신을 낮추고 낮은자리에 처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소박하고 무식한 사람에게 겸손이란 것이 어울릴까?
나에게 겸손이란 어떤것일까? 사람이 처한 위치와 환경이 다르듯 그에 맞게 겸손한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닿게 되었다.
자신의 자리에서 배우는 자세로 생활한다면 그것이 겸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많이 알지 못하고 지위가 높지 않더라도 소박하고 양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배움의 지혜가 있다 여겨질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홀로이다.
각자가 일종의 구리 탑에 갇혀 신호로써만 다른 이들과 교신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신호들이 공통된 의미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 뜻은 모호하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우리는 마음속에 품은 소중한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고 안타까이 애쓰지만 다른 이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힘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나란히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마치 이국 땅에 사는 사람들처럼 그 나라 말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온갖 아름답고 심오한 생각을 말하고 싶어도 기초 회하책의 진부한 문장으로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사람들과 똑같다.
-p211
!우리는 언어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알아간다.
하지만 느낌을 표현하기에 언어의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있다.
자연에서 얻는 아름다움을 말로 표현할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인간관계속에서도 자신을 표현하는 것의 으뜸이 언어일 것이다.
그런만큼 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소통에서 이해를 위한 수단일수도 있고,
오해로 받아들여질수도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중요하게 다가온다.
다양한 단어선택으로 어휘력이 풍부할수록 자신의 생각을 다양하게 표현할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사정을 봐준 셈이죠. 예술가들에 대해서는 늘 이해가 있는 편이었으니까.
우리 핏속에 바로 그런 기질이 있어서 말입니다
우리 핏속에 바로 그런 기질이 있어서 말입니다.
한데 고작 두어 달밖에는 눌러 있지 못했어요.
물감이랑 캔버스를 살 만한 돈을 손에 쥐자, 그만두겠다고 하지 뭡니까.
그런데 그 사이에 그곳이 마음에 들었는지 오지(奧地)로 들어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 뒤로도 이따금씩은 보았어요.
두어달에 한 번씩은 파페에테에 나와서 잠시 머물렀으니까.
하지만 어디선가 돈을 구하면 또 사라져버렸어요.
한 번은 내게 와서 이백 프랑만 융통해 달라고 하더군요.
보니 일 주일은 굶은 것같아 차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돈을 되돌려 받을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죠. 그런데 말이에요.
일 년쯤 뒤에, 이 사람이 다시 찾아오지 않았겠습니까.
그림을 하나 들고 왔어요. 빌려간 돈 얘기는 꺼내지도 않고 한다는 말이
<이건 노인네 농장을 그린 건데, 당신 주려고 일부러 그린 거요> 하지 않겠습니까.
그림을 봤지요. 뭐라고 말해 주어야 좋을지 모르겠더군요.
-p247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하기 위해 최소한의 돈만 생기면 머뭇거리지 않고
돈버는 일을 그만두고 그림을 그린다. 이 대목에서 자유로운 삶이 느껴진다.
우리는 늘 이런 삶을 꿈꾸지만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
하고 싶은 일에 모든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삶이 윤리를 떠나 멋지게 다가오는 것은
나만이 느끼는 것일까?
도움을 받은것을 나름의 방법으로 되갚곤 한다.
천재의 작품은 돈으로 환산해도 엄청나지만 작품을 알아보는 삶에게는 돈이상의 것이리라.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마법의 세계에 들어선 것만 같았다.
거대한 원시림과 나무들 밑으로 벌거벗은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 순간 그는 사방의 벽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사릴을 깨달았다.
[제길, 내가 더위를 먹었나]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뭔가 희미한 움직임이 있어 돌아보니 아타가 바닥에 누워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이제 그는 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온통 야릇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 그림들엔 이상하게도 그를 감동시키는 무엇이 있었다.
방바닥에서 천정에 이르기까지 사방의 벽이 기이하고 정교하게 구성된 그림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이 기이하고 신비로웠다. 그는 숨이 막혔다. 이해할 수도, 분석할 수ㄷ 없는 감정이 그를 가득 채웠다.
창세(創世)의 순간을 목격할때 느낄 법한 기쁨과 외경을 느꼈다고 할까.
무섭고도 관능적이고 열정적인 것, 그러면서 또한 공폿러운 어떤것, 그를 두렵게 만드는 어떤 것이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감추어진 자연의 심연을 파헤치고 들어가, 아름답고도 무서운 비밀을 보고 만 사람의 작품이었다.
그것은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신성한 것을 알아버린 이의 작품이었다.
거기에는 원시적인 무엇, 무서운 어떤 것이 있었다.
인간 세계의 것이 아니었다. 악마의 마법이 어렴풋이 연상되었다.
그것은 아름답고도 음란했다.
[맙소사, 이건 천재다]
이 말이 입에서 절로 튀어나왔다.
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몰랐다.
-p293
!한권의 책중에서 가장 전율을 받은 부분이었다.
나병에 걸려 1년동안 눈이 안보이는 상태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그림으로 자신의 모든것을 쏟아부은 스트릭랜드를 표현한 것이다.
스트릭랜드의 마지막인 것이다.
그는 목숨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며,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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