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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책소개-2016년

독서노트-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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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독서를 통해 자극받기를 원한다면
<죽음의 수용소> 만한 것이 있을까?
도끼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삶의 의미!
죽음의 수용소 안에서의 생활을 들여다 보며 그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생사를 결정할 만큼 중요한 사항이다.
순간순간 한계를 느끼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살아야만 하는의미를 찾는 것이
과연 쉬운일일까 생각해 본다.
그와 동시에​ 인간의 의지와 희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느끼게 된다.


인간이 나약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강한 존재이기도하다.
빅터 프랭클은 그가 남긴 기록과 로고테라피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찾기를 도와주고 있다.

인간 도살장이라 불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상상을 넘어서는 상황들이 펼쳐진다.
인간이기에 너무도 잔혹하다.
반대로 너무도 잔혹한 상황이지만 인간이기에 살아남을 수 있다.
삶의 의미를 찾는다면 말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우리의 삶에 던져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존엄하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잔혹함의 극치를 보게 되기도 한다.
육체적인 학대와 욕설보다 자신에 대한 모멸감을 느꼈을때 더욱 분노하게 된다.
존엄성을 인류의 평화와 행복에 사용되어야 함의 절실히 느낀다.





삶의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참혹한 지경에 빠져 고통받고 울부짖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비규환을 생각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처참함에 몸서리쳐졌다.
생각만으로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지경이다.
어쩌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이런 상황에서 삶이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빅터 플랭크는 '자기"를 알아가고 인식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 삶의 질문에 답할수 있다는 말이다.
삶의 공허감이 밀려오는 것을 매우기 위한 기본이 될 것이다.

각자 삶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시기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다를 것이다.
 
삶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제는 좀 더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공허감으로 위태로운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왜 살아야만 하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물음에 답해야 할 때이다.




자신의 행복에 대해 자각해야 한다.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잔혹하고 끔찍한 죽음의 수용소를 통해 
현재의 나에게로 눈을 돌려본다.
지금 처한 상황에 감사해야 함과 온몸으로 행복을 느끼며 살아야 함을 감지한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언제 행복할 것인가?
지금 삶의 의미 찾기, 행복이 바로 옆에 와 있는것 자각하기
이것을 늦춘다면 언제 가능하단 말인가?
스스로에게 자문하며 답하는 시간을 가지고,
행복이 보내는 신호에 답해야 할 때이다.


끝으로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독서하며 행복이 가까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는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독서하며 행복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고 독서바이러스 전파에 나섰다.

​물론 행복은 모두에게 같은 모습으로 찾아오지는 않는다.
각자가 행복을 발견하는 것과 느끼는 방법은 다르다.
하지만 스스로 행복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책을 읽는 과정은 ​자신과의 대화이다.
자신을 만나며 삶의 의미를 찾아 다지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것을 늦추지 않기 바란다.


책속으로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롭터 더욱 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원하는 대로 확실하게 행동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얘기하건대 언젠가는!- 정말로 성공이 찾아온 것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p10


"왜 살아야 하는 지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딘다."
-니체


​"샤워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들은 우리가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는 이제 벌거벗은 몸뚱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심지어는 털 한 오라기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글자 그대로 우리 자신의 벌거벗은 실존뿐이었다.
그 동안의 삶과 현재를 연결시켜 주는 물건 중 과연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안경과 벨트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벨트는 나중에 빵 한 조각과 바꾸어 먹고 말았다." -p43


만약 어떤 사람이 인간을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 사실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p48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해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젤르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과제들, 즉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일방적인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포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 우리에게 던져준 과제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바로 이것이
개개인마다 다른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
어떤 사람도, 어떤 운명도, 그와는 다른 사람, 그와는 다른 운명과 비교할 수 없다.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는 경우는 하나도 없으며, 각각으 상황은 서로 다른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
때로는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이 그에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행동에 들어갈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반면에 어떤 때에는 더 생각할 시간을 갖고,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때로는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가야할 때도 있다.
각각의 상황들은 각각 그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갖는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비롯된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단 하나만 있는 법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그 시련을 자신의 과제,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p138



삶의 의미
"삶에서 주치게 되는 각각이 상황이 한 인간에게는 도전이며, 그것이 그가 해결해야할 문제를 제시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이 바뀔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존재의 본질로 보고 있다."​ -p181


로고테라피에서 이렇게 책임감을 강조한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로고테라피의 행동강령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인생을 두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p182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로고테라피'​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얘기하겠다.
로고스logos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로고테라피'혹은 다른 학자들에 의해 '밴 제3정신의학파'로 불리는 이 이론은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나가는 인간의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로고테라피 이론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으로 보고 있다.
내가 로고테라피를 프로이트 학파가 중점을 두고 있는 쾌락의 원칙이나, 아드리안 학파에서 '우월하려는 욕구'로 불리는 권력에의 추구와 대비시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신분석과 로고테라피

정신분석:정신분석을 하는 동안 환자는 침대에 누워서, 의사에게 때로는 하기 거북한 말을 해야 합니다.
로고테라피: 로고테라피를 받는 동안 환자는 똑바로 앉아서 의사로부터 때로는 듣기 거북한 말을 들어야 합니다.

로고테라피는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로고테라피는 이렇게 의미에 중점을 둔 정신치료법이다.)
말하지만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다.​
로고테라피는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데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하는 악순환 형성과 송환기재를  약화시킨다.
그렇게 해서 정신질환 환자에게 전형적인 자기집중증상이 발생하고 심화되는 것을 막는다.

실제로 로고테라피에서는 환자가 삶의 의미와 직접 대면하게 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이렇게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우치도록 만드는 것이 정신병을 극복할 수 있는 환자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커다른 도움이 된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

인간이 의미를 찾고자 하는 마음은 그 사람의 삶에서 근본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이지
본증적인 욕구를 2차적​으로 합리화시키기 위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 의미는 유일하고 개별적인 것으로 반드시 그 사람이 실현시켜야 하고, 또 그 사람만이 실현시킬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 자신의 의지를 충족시킨다는 의의를 갖게 된다.


실존적 좌절

이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의지도 좌절을 당할 수 있다.
이것을 로고테라피에서는 '신존적 좌절'이락 한다.
여기서 '신존적'이라는 단어는 다음의 세 가지 의미로 쓰일수 있다.
1) 존재 그자체, 즉 인간 특유의 존재방식
2) 존재의 의미
3) 각 개인의 삶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찾아내려는 노력, 즉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


누제닉 노이로제

누제닉 노이로제는 욕구와 본능의 갈등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인 문제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 원인 중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의 좌절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그것에 대한 절망도 실존적 고민이지 정신질환은 아니다.
의사는 화자의 실존적 위기를 통해 그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로고테라피는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 주는 것을 그 과제로 삼고 있다.


​정신의 역동성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마음의 평온을 가져오기보다는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면의 긴장은 정신건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 취악의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수감자 중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그에게 도전장을 던지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야만 그 동안 숨어 있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일깨울 수 있다.​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마음의 안정 혹은 생물학에서 말하는 '항상성, 즉 긴장이 없는 상태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 나는 정신건강에 대해 이것처럼 위험천만한 오해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말하자면 한쪽 극에는 실현되어야 할 이미가, 그리고 다른 극에는 그 의미를 실현시켜야 할 인간이 있는 자기장 안이 실존적 역동성이다.

이것이 정상적인 상황에서만 유효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신경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더 효력이 있다.
낡은 아치를 튼츤하게 할 때, 건축가는 오히려 아치에 얹히는 하중을 늘린다.
그래야만 아치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들이 서로 잘 밀착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환자의 정신건강을 증진시키려는 심리요법가는 삶의 의미를 갖도록 지도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마음에 어느 정도 긴장을 유도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삶의 의미를 찾도록 하는 것이 환자에게 유익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얘기했다.​
 


나의 관심은 '주인의 목소리'를 그저 흉내내기만 하는 앵무새를 키우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희망의 횃불을 독립적이고, 독창적이고,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영혼에게 전달하는 데에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이렇게 주장한 적이 있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굶주림에 시달리도록 해보자. 배고픔이라는 절박한 압박이 점점 커짐에 따라 각 개인의 차이는 모호해지고, 그 대신 채워지지 않은 욕구를 표현하는 단 하나의 목소리만 나타나게 된다."
감사하게도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강제수용소 안에서 일어난 일을 몰랐다.
그의 환자는 빅토리아 풍으로 호화롭게 디자인된 침상에 누워 있었지 아우슈비츠의 오물더미 위에 누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말과는 달리 강제수용소에서 '개인적인 차이'가 모호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 차이점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사람들은 가면을 벗고, 돼지와 성자의 두 부류로 나뉘어졌다.(.....)
여러분은 우리가 굳이 '성자'에 대해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저 '훌륭한'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소주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소수의 반열에 합류하려는 도전의지를 본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지금 아주 좋지 않은 상태에 있고, 우리 각자가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더욱 더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경계심을 갖자. 두 가지 측면에서의 경계심을.
아우슈비츠 이후로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히로시마 이후로 우리는 무엇이 위험한지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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