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조르바는
책을 한무더기 쌓아 놓고 불을 확 싸질러 버리라 한다.
인간은 짐승이오. 짐승은 책같은 걸 읽지 않소.
삶의 브레이크를 풀어버리고 살아가라 한다.
춤으로 표현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여자와 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결혼에 대해 정식하게 말하면 2번 비양심적으로 치면 천번, 2천번, 3천번쯤 된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조르바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
조르바는 몸으로 부딪히며 사물을 매번 처음보는것처럼 감동하며 살아간다.
자유로운 삶을 말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광부로 살아가며 책을 읽지않고 소위 무식하리만큼 툭박지지만 가끔 던지는 한마디는 책벌레로 살아가는 우리네 생각을 넘어서는 경우가 있다.
지식인들보다 짐승처럼 산다는 조르바는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것일까?
책을 읽으며 보낸 오랜 시간보다 조르바와의 몇달이 더 배울것이 많은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걸까?
조르바는 '두목, 당신의 젊소'.라는 말로 가능성과 희망을 말해주곤 한다.
삶은 행동이고 브레이크잡지 않고 시도하라고 한다.
투박하지만 산투르(악기)를 키고 노래하고 춤추며 삶을 즐길줄 안다.
그리고 현재를 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런 조르바에게 빠지지 않을 힘은 없어보인다.
조르바의 어록을 만나러 책속으로 들어가본다.
자유라는게 뭔지 알겠지요?
금화를 약탈하는데 정열을 쏟고 있다가 갑자기 그 정열에 손을 들고 애써 모은 금화를 공중으로 던져 버리다니....
다른 정열,보다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히기 위해 쏟아왔던 정열을 버리는것, 글나 그것 역시 일종의 노예근성이 아닐까?
이상이나 종중이나 하느님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는 것은? 따르는 전형이 고상하면 고상할수록 우리가 묶은 노예의 사슬이 길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좀 더 넓은 경기장에서 찧고 까불다가 그 사실을 벗어나 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자유라고 부르는 건 무엇일까? -p39
조르바는 시도해보라고 한다. 브레이크를 풀어버리고 신나게 살아가라 한다.
그래봤자 손해보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인생과 맺은 계약에 시한 조건이 없다는 걸 확인하려고 나는 가장 위험한 경사 길에서 브레이크를 풀어봅니다. 인생이란, 가파른 경사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지요. 잘난 놈들은 모두 자기 브레이크를 씁니다. 그러나 (두목, 이따금 내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가를 당신에게 보여 주는 대목이겠는데)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기계가 선로를 이탈하는 걸 우리 기술자들은 <꽈당>이라고 한답니다. 내가 꽈당 하는 걸 조심한다면 천만의 말씀이지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달으며 신명 꼴리는 대로 합니다. 부딪쳐 작살이 난다면 그뿐이죠. 그래 봐야 손해 갈 게 있을까요? 없어요. 천천히 가면 거기 안 가나요? 무론 가죠. 기왕 갈 바에는 화끊하게 가자 이겁니다." -p215
자유란 어떤 것일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수 있는것? 우리는 자유로울수 있는데도 스스로를 쇠줄에 묶여 있다고 포기하지 않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
또 스스로가 말하는 자유란 경기장안이란 제한된 공간에서 한걸음 더가보고 덜가보고의 차이를 자유라고 믿고 있는것은 아닌지. 진정한 자유란 어떤것을 말하는가 생각하게 만든다.
당신과 함께 갈 수도 있어요. 나는 자유로우니까.
조르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은 자르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를 거요." 내가 오기를 부렸다.
조르바의 말이 정통으로 내 상처를 건드려 놓았기 때문이다.
"두목,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
모든 걸 도박에다 걸아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좋은 머리가 있으니까 잘은 헤나가겠지요.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에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멜 뿐이지......
이잡것이! 줄을 놓쳐 버리면 머리라는 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합니다. 그러면 끝나는 거지. 그러나 인간이 이 줄을 자르지 않을 바에야 살맛이 뭐 나겠어요? 노란 카밀레 맛이지. 멀건 카밀레 차 말이오. 럼주 같은 맛이 아니오.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p429
책벌레라 불리우는 두목은 인생의 목적을 가진 세부류에 대해 말한다.
"조르바, 내 말이 틀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소위, 살고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돈 벌고 명성을 얻는 걸 자기 생의 목표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또 한 부류는 자기 삶을 사는게 안라 인류의 삶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그걸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지요.
이 사람들은 인간은 결국 하나라고 생각하고 인간을 가르치려 하고, 사랑과 선행을 독려하지요.
마지막 부류는 전 우주의 삶을 목표로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나무나 별이나 모두 한 목숨인데 단지 아주 지독한 싸움에 휘말려 들었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요. 글쎄, 무슨 싸움일까요?..... 물질을 정신으로 바꾸는 싸움이지요." -p398
카잔차키스는 모순되는 반대개념에서 하나의 조화를 도출하려한다.
영혼과 육체
정신과 물질
성스러운것과 속된다.
사색과 행동
내적인것과 초월적인것.
결국 카잔차키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육체와 영혼은 하나라는 것을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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