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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1부, 효.제.자) -정약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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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1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인의예지는 실천에서 발현된다


효.제.자

 

오전(五典) 오교(五敎: 아버지는 의롭고 어머니는 어여삐 여겨주고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손하고 자식은 효도함-지은이)를 요약하면 효(孝)와 제(弟)와 자(慈)이다. 군신 부부 장유 붕우는 들어 있지 않은데, 들어 있지 않다고 해서 등한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효를 하게 되면 반드시 충(忠)하게 되고, 제를 하면 반드시 공(恭)하게 되며, 힘쓰지 않아도 부부는 화합하게 되고, 친구들 사이에 신의를 지킬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공자의 제자인 유자(有子)가[논어] 에서 자를 빼고 효제만을 이야기한 것은 자는 새나 짐승도 행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가 중여서[효경(孝經)]이라는 책을 만든 것도 효만 하고 제는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효 하나만 제대로 하게 되면 모든 착한 일은 저절로 행해진다는 뜻에서다.

부부유별이란 각자가 그 짝을 배필로 삼고 서로 남의 배필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부가 별(別)한 후에야 부자(父子)가 친(親)하게 되는 것이니, 창부(娼婦)와 가까이해서 얻은 아들은 그 아비를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연유다.

부부 사이에서도 서로 공경하기를 손님 대접하듯 한다고 하는데 부자간에는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경전 가운데 부부유별의 증거가 셀 수 없이 많으니 그것을 모아보도록 하여라-지은이).

천시(天時)가 있고 인시(人時)가 있기 때문에 자(子) 축(丑) 인(寅)의 정월(正月)이 있는 것인데, 다만 축이 정월이 되는 것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또 7월의 시의 서문에서 말하기를, 주공(周公)이 지은 것이라 했는데(성왕 成王때 지음-지은이), 4월 5월 10월 등의 시에 나오는 달은 하나라 달력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또 거기서 말한 일지일(一芝日), 이지일(二之日)이라는 것은 해가 궤도를 한바퀴 돌아 다시 동지(冬至)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자월(子月)을 일지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日)을 따라 궤도를 돌기 때문에 (日)이라 하는 것이지, 월(月)과 혼동하여 일(日)이라 하는 것이 아니다.

[서경]의 [소고(召誥]에 보이는 낙읍(洛邑)을 경영한 역사(役事)도 바로 중춘(仲春)이었다. 만약 중춘이 축월(丑月)이라 한다면 날씨가 춥고 얼어붙어 토목공사를 시작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소아(小雅)]나 [대아(大雅)]에 실려 있는 모든 시들이 모두 하나라 달력과 들어맞으니, 자월을 정월로 삼는 것은 주나라 말엽에 이루어진 것이라라.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것은 행동과 일로써 이를 실천한 후에야 비로소 그 본뜻을 찾을 수 있으며, 측은(惻隱)이나 수오(羞惡)하는 마음도 안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理)를 말하는 사람*이 인의예지를 각각 낱개로 떼어놓고 이것들이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다고 하는데 이건 틀린 것이다.

 

마음속에 있는 것은 다 측은이나 수오의 근본일 뿐이니 이것을 인의예지라고 불러서는 안된다(옛날 명례방 明禮坊에서 강의를 받을 때 이 설 說을 들었는데 주자 이전의 해석이다-지은이)

 

퇴계는 오로지 심성(心性)을 주체로 삼았기 때문에 이발(理發)과 기발(氣發)을 주장했고(도심 道心이란 이발이고 인심 人心은 기발이며 사단과 칠정 또한 그러하다-지은이),

 

율곡은 도(道)와 기(器)*를 통론했기 때문에 기발은 있어도 이발은 없다 하였다. 두 현인이 주장한 바가 각각 다르니 말이 같지 않아도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람으로 선배 되는 분 가운데 기(氣)를 성(性)으로 인정하였다고 퇴계를 배척한 것은 지나친 일이다.

*여기서 이(理)를 말하는 사람이란 바로 주자를 가리킨다.

 

주자는 [四序集註]에서 인.의.예.지를 모두 '이'로 해석하여, 이른바 주자학 즉 성리학(性理學)을 수립하였으며, 이후 성리학은 동양 중세의 모든 학술의 근본적 주소(主潮)가 되었던 것이다.

 

다산의 경학사상은 바로 이점을 반대하고 비판함으로써 시작되는데, 담리(談理) 설리(設理)를 비판하여 인.의.예.지란 실천에서 오는 것으로 본 것이다.

 

이 사상이야말로 과거 전통적인 유학사상을 떠나서 실학사상의 요체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지은이주에서 밝힌 것처럼 명례방, 곧 오늘의 명동 근방에서 권철신 권일신(權日身)등 성호 이익의 제자들이 강의를 하였을 때 다산은 형 약전 약종(若種)등과 함께 들었으며,

 

후일 이들은 모두 서학(西學)에 감염된 사람이라 하여 신유년(1801)에 권씨 형제와 형 약종은 죽고 다산과 약전은 귀양을 가게 된다.

 

*도와 기[주역]에서는 "형이상자(形而上者)를 도라 하고(謂之道) 형이하자(形而下者)를 기라 한다[謂之器]"고 하여 이성(理性)은 '도'로 형질(形質)은 '기'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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