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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1부, 절조를 지키는 일) -정약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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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1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절조를 지키는일

 

​答淵兒

1816년 5월 3일


보내준 편지 자세히 보았다. 천하에는 두가지 큰 기준이 있는데 옳고 그름의 기준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다.

 

이 두가지 큰 기준에서 네단계의 큰 등급이 나온다. 옳음을 고수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둘째는 옳음을 고수하고도 해를 입는 경우다. 세번째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음이요, 마지막 가장 낮은 단계는 그름을 추종하고 해를 보는 경우다.

너는 내게 필천(篳泉) 홍의호(洪義浩)*에게 편지를 해서 항복을 빌고, 또 강준흠(姜浚欽)*과 이기경(李基慶)*에게 꼬리치며 동정을 받도록 애결해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은 앞서 말한 세번째 등급을 택하는 일이다. 그러나 마침내는 네번째 등급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 명약관화한데 무엇 때문에 내가 그 짓을 해야겠느냐.

조장령(趙掌令)의 대계(臺啓)는 내게 불행한 것이었다. 하루 사이에 나에 대한 계는 정지시켜버리고 그들의 죄를 밝혔다(장령 조장한趙掌漢은 갑술년 봄에 이기경이 다산에 관해 상소하는 것을 정지시키고, 이기경이 권유 倦裕의 조리르 비호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올렸다-지은이).

 

이 일로 그들의 분노를 촉발시키는 일을 어찌 면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 이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역시 고즈넉이 받아들일 뿐이지 애결한다고 무슨 보탬이 되겠느냐.

강준흠이 작년에 나의 일로 올린 상소는 그에게 있어 이미 쏘아버린 화살인지라 지금부터는 죽는 날까지 입을 다물지 않고 나에 대해 계속 욕하게 될 것이다.

 

이제 내가 애걸한다고 해서 그가 나에 대한 공격을 늦추고 자기 잘못을 후회하는 태도를 취하겠느냐? 이기경 역시 강준흠과 한통속인데, 강준흠을 배반하고 나에게 너그럽게 대할 리가 없다.

 

그런데 그들에게 애걸한들 모슨 도움이 되겠느냐? 강준흠 이기경이 다시 뜻을 얻어 요직을 차지한다면 반드시 나를 죽이고 말 것이다.

 

죽이려 한다 해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 오직 고즈넉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물며 해배(解配)의 관문(關門)을 막는 사소한 일을 가지고 절조를 잃어버려서야 되겠느냐.

 

비록 내가 절조를 지키는 사람은 아니지라도 세번째 등급도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으므로, 네번째 등급으로 떨어지는 것만은 면하려는 것이다.

 

만일 내가 애걸한다면 세 사람이 함께 모여 웃으며 말할 것이다. "저 작자는 참으로 간사한 사람이다. 지금은 애처로운 소리로 우리르 속이지만 다시 올라가게 되면 해치려는 마음으로 언젠가는 우리르 반드시 멸족시킬 것이니, 아아! 두려운지고."

 

그러면서 겉으로는 풀어주어야 한다고 빈말을 하고 뒷구멍으로는 빗장을 걸어 위기에 처하면 돌멩이라도 던질 것이니, 바야흐로 나는 독수리에게 잡힌 새 꼴이 되어 네번째 등급으로 떨잊게 될 것이 아니겠느냐. 나는 꼭두각시가 아닌데 너는 무엇 때문에 나를 그들의 장단에 춤추게 하려느냐.

 

필천 호의호와는 원래 털끝만큼의 원한도 없는 사이인데 갑이년(甲寅年:1794)이후로 까닭없이 내 몸에 허물을 뒤집어씌웠다.

 

그러다가 을묘년(乙卯年:1795)봄에 이르러 원태(元台)*가 스스로 잘못 시기하였음을 알기에 명확하게 설명해주자 지난날의 구설수는 물이 흘러가고 구름이 걷히듯 죄다 씻겨버렸다.

 

하지만 신유년(辛酉年:1801) 이래 편지 한장 왕래가 없었으니 그 사람이 먼저 편지를 보내야 옳겠느냐, 내가 먼저 해야 옳겠느냐?

 

그 사람은 내게 안부편지 한장 보내지 않으면서 오히려 나보고 편지가 없다고 허물하니, 이는 자신의 기세를 세워 나를 지렁이처럼 업신여기는 처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그런데 너는 누가 먼저 편지를 보내는 것이 옳은가 생각해보지도 않고 고개를 조아리며 그 사람 하는 소리에만 예 예 하면서 지나왔으니, 너 또한 부귀영화에 현혹되어 부형을 업신여기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느냐?

 

그는 내가 더러운 폐족이라 해서 먼저 편지를 보내지 않는데 내가 이제 머리를 치며올리고 얼굴을 우러르며 먼저 간청하는 편지를 보내야 한다니 천하에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느냐?

 

내가 귀양이 풀려 돌아가느냐 못 돌아가느냐 하는 일은 참으로 큰일은 큰일이나, 죽고 사는 일에 비하면 극히 잗다란 일이다.

 

사람이란 때로 물고기를 버리고 웅장(熊掌)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만 귀양이 풀려 집에 돌아가느냐 못 돌아가느냐 정도의 잗다란 일에 잽싸게 다른 사람에게 꼬리를 흔들며 애걸하고 산다면,

 

만약 나라의 외침(外侵)이 있어 난리가 터질 때 임금을 배반하고 적군에 투항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느냐?

 

내가 살아서 고향 땅을 밟는 것도 운명이고, 고향 땅을 밟지 못하는 것도 운명일 것이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다하지 않고 천명만을 기다리는 것 또한 이치에 합당하지 않지만, 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이미 다 했으니 이러고도 내가 끝내 돌아가지 못한다면 이것 또한 운명일 뿐이다.

 

강씨 집안의 그 사람이 어찌 나를 돌아가지 못하게 하겠느냐? 마음을 크게 먹고 걱정 말고 세월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할지니 다시는 이러쿵저러쿵하지 말거라.

 

 

*홍의호: 영조 34-순조 26(1758~182). 자는 양중(養仲), 호는 담녕(澹寧). 다산의 육촌처남으로 예조판서를 지냈다.

*강준흠: 영조 44(1743)-? 자는 백원(白源), 호는 삼명(三溟), 1794년 정시문과에 급제, 1917년 사간을 지냈다.

*이가경 : 영조32~순조19(1956~1819). 자는 휴길(休吉), 호는 척암(瘠葊). 1789년 식년문과에 급제, 1791년 진산사건(珍山事件)이 일어나자 채제공의 미온적인 태도를 공격하다가 경원에 유배, 이후 수차에 걸쳐 유배생활을 하였으며, 다산 일파를 몰락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원태: 다산의 육천처남 홍인호(紅仁浩, 1753~99), 홍의호의 형으로, 자가원서(元瑞)인데 원서대감(台)이라는 존칭으로 '원태'라고 불렀다

*맹자(孟子) 고자(古字)상 편에 나오는 말로 더 좋은 것을 택한다는 뜻.

 

해설

이 편지는 큰아들이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면서 경전을 연구하고 인사(人事)를 살펴 깨달은 바를 가지고, 즉 천리(千里)와 인사를 바탕으로 큰아들을 준절히 타이르고 있다.

 

이 편지를 본 큰아들은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을 것이라 짐작되며, 지금 이 글을 읽는 우리들 또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다산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깐깐한 선비정신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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