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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1부, 사대부의 기상이란) -정약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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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1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사대부의 기상이란

​​答淵兒

1816년 6월 4일


 

옛날부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는 예는 부모상을 당했을 때만 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형과 동생 중에 한 사람은 출타했을지라도 한 사람은 집에 있었으면서 상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곡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고,

 

망령된 말로 이 아비를 위협하려 달려들고 권세가들 집에 고개를 숙이라고 졸라대고 있으니, 너희들은 어째서 이다지 한점의 양심도 없느냐?

 

인간이 귀중하다는 것은 오로지 한점의 양심이 있어 그것 때문에 군자다운 행실을 할 수 있어서다.

 

저 북지왕(北地王) 침(諶)* 같은 자도 나름대로 의리를 가지고 살았는데, 너희들 심중에서 사대부다운 기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구나.

 

다만 화려한 권력가의 집안이나 진수성찬으로 호의호식하며 사는 집안을 흠모하고, 더구나 이 아비는 다시는 돌봐줄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해서 별별 위협적인 수단을 동원해 차마 해서는 안될 일을 요구하고 있으니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남들이 이 아비를 짐승처럼 여기고 있는데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비굴한 짓을 하라고 보채며, 그들의 거짓웃음과 쌀쌀맞은 이야기들을 내게 권하느냐.

 

그 권력자들이 벌떼처럼 다시 들고일어나 오랜 감정을 풀어보려고 나를 추자도나 흑산도로 쫓아보낸다 해도 나는 머리칼 하나 까딱 않겠다.

이기경 등이 채제공(蔡濟恭)*을 떠받드는 의중을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다. 서울과 경상도의 남인 사대부들이 모두 채제공을 부모처럼 사모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그런 마음을 불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채제공을 공격하는 무리들로서는 끝내 남인들을 통합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짓거리를 하는 것이니, 그 뜻을 알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침: 침은 북지왕에 봉해진 유침(劉諶)이다. 유비의 손자로 나라가 망할 때 자결했다.

 

*채제공: 숙종 46~정조 23(1720~99).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 1791년 좌의정으로 있으면서 진산사건이 일어나자 공서파(攻西派)의 배척을 받아 파직되었다가 복직되고, 1793년 영의정에 올라 명재상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해설

다산의 두 아들이 아버지의 귀양살이를 풀어내고자 당로자인 이기경 등에게 접근하여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비굴하게 행동하는 것을 책망하는 한편, 이기경 등의 농락을 경계하는 글이다.

 

사대부의 기상은 양심을 지키는 데 있는데, 이것을 굽히라고 할 때 다산은 머리털 하나 까딱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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