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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예와 인정) -정약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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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둘째형님께서는 깊이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上仲氏

 


예와 인정

 

학기(學箕:자는 희열 希說임-지은이)* 가 그의 아들을 집 아이들에게 의탁하여 글을 배우도록 하였는데,

 

그 아이의 얼굴 모습이 준수하여 형수씨가 보고서 학초(學樵)의 후사로 세우고 싶어했습니다.

 

무장(武牂)과 문장(文牂) 두 아이들도 큰 욕심이 생겨 그를 끌어다가 당질(堂姪)로 삼고 싶어서 학기와 서로 의논하였더라니,

 

학기가 말하기를 "현산(玆山)과 다산(茶山)의 뜻이 데려가고 싶으시다면 나는 당연히 바치겠다"고 하였답니다.

 

 

두 아이들이 다산으로 편지를 보내왔기에 답하기를 "일로 보아서는 매우 좋으나 예(禮)로 보아서는 매우 어긋난다. 예를 어길 수는 없다"라고 하니,

 

두 아이들은 "예의 뜻이 이미 그러하면 마땅히 계획을 파하렵니다"라고 했습니다.

 

백씨(伯氏)*께서는 편지를 주시어 "내가 이런 말을 듣고 마음으로 무척 그르게 여겼는데, 그대의 말이 이와 같으니 정말로 나의 뜻과 합치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형수께서 편지를 보내어 "서방님, 나를 살려주시오. 서방님, 나를 불쌍히 여기시오. 나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어찌하여 나에게 차마 그렇게 하십니까?

 

현산은 아들이 있으나 나는 아들이 없습니다. 나야 비록 아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청상과부인 며느리는 아들이 없으니, 청상의 애절한 슬픔에 예가 무슨 소용이겠소? 예에는 없다 하더라도나는 그를 데려오겠소"라고 하였습니다.

 

천마디 만마디 말이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흐느끼는듯 하소연하는 듯하여 읽자니 눈물이 흘러내리고 답변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답하기를 "예에 비록 어긋난다 하더라도 일로 보면 매우 좋습니다. 저는 차마 저지하지 못하겠으니 그냥 보고 있겠습니다. 현산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그 처분에 전적으로 따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몸져누운 제 아내의 편지에, "한마디 말이 떨어지자마자 환희가 우레처럼 울리고 비참한 구름과 처연한 서리가 변하여 따뜻한 봄이 될 것입니다. 다시는 예를 말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인정을 살피십시오.

 

만약 다시 금지시킨다면 시어머니와 며느리 두 사람이 한 노끈에 같이 목을 맬 것입니다. 어떻게 다시 예를 언급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일에 있어서 감히 흑백(黑白)을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급히 두통의 편지를 쓰셔서 하나는 무장에게 보내고 하나는 형수께 보내어 속히 결정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삼가 예를 살펴보니 무릇 조부를 제사 지내는 선비(곧 이묘 二廟가 있는 선비-지은이)는 모두 입후(立後)하였습니다.

 

한유(韓儒)들은 계별대종(繼別大宗)이라야 입후할 수 있다 하였는데, 이는 한유들의 해석일 뿐입니다.

 

평소 예를 배우면서 저 역시 오직 공자나 왕손(王孫)의 대종(大宗)만이 입후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금년 여름과 가을 사이에 [상기별](喪期別:[상례사전(喪禮四箋)] 제4함-지은이) 을 저술하면서 고례(古禮)를 조사해보았더니 본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무릇 제사가 이묘에 미치고 장자(長子)를 위해 참최복(斬衰服)을 입는 자는 모두 입후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버지를 계승하는 사람은 형제의 아들을 데려오고, 할아버지를 계승하는 사람은 형제의 아들을 데려오되 없는 경우는 사촌형제의 아들을 데려오니, 증조나 고조를 계승하는 사람도 법은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일반 백성의 종(宗)은 5세(世)면 묘(廟)에서 옮깁니다.따라서 5세가 지나면 조종(朝宗)이 바뀌기 때문에 5세를 계승하는 사람은 아들이 없더라도 십촌형제의아들을 아들로 삼을 수 없습니다.

 

오직 계별지종(繼別之宗)만이 비록 백세(百世)에 이르더라도 별자(別子)의 후예는 모두 데려다 후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고법(古法)입니다.

 

만약 서자(庶子)로서 아버지를 계승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비록 왕자(王子)나 공자라 해도 입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관숙(管叔)*에게 후사가 없어 나라가 없어진 것이[사기]에 나옵니다.

(만약 죄 때문에 제除하여졌다면 채중 蔡仲*이 수봉 受封될 이치가 없음-지은이).

 

한나라 문제(文帝)와 경제(景界)의 아들들도 모두 후사가 없으면 나라가 없어졌으니 이는 고법 중에서도 더욱 지엄한 것입니다.

 

이같이 한 뒤에야 소후부(所後父)를 위해 참최복을 입어도 명분이 있게 되고, 자신의 부모에게 강복(降服)하여도 명분이 서는 것입니다.

 

지금 학초는 아버지를 계승하지도 못하고 죽었으니, 만약 같은 어머니에서 나온 아우가 있었다면 법으로는 마땅히 아우가 대를 이어야 하는 것이요, 학초를 위해서 입후하는 일은 온당하지 않습니다.

 

서제(庶弟)는 비록 동복(同腹)은 아니지만 옛날의 경(經)이나 지금의 법에 모두 적출(嫡出)의 아들과 털끝만큼도 차이가 없는데 어떻게 학초를 위해서 입후할 수 있겠습니까?

 

학초에게 비록 친형제의 아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입후하는 것이 부당한데, 더구나 아득히 먼 족자(族子)에 있어서는 어떠하겠습니까?

-비록 그렇다고는 하나 지금 일이 형편이 이미 어찌할 수 없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고경(古經)만을 굳게 지켜 화기(和氣)를 잃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나라 풍속에는 양자법(養字法)이 있으니 이는 비록 성씨가 다르더라도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대전(大典)*에도 "양부모(養父母)]를 위해서 삼년복을 입는다"라고 하였습니다.

 

국법이 이와 같은데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것을 따르는 것이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또 지금은 문호가 무척 쇠미한데, 이러한 준골(俊骨)을 얻어다가 서로 의지도록 하는 데 무슨 불가함이 있겠습니까? 깊이 생각해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학기: 1773~1835. 다산의 족질(族姪)로 초명은 기상(箕祥).

 

*백씨: 맏현 정약현(丁若鉉,1751~1821)을 가리킴.

 

*관숙: 중국 주나라 때 문왕(文王)의 셋째아들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주공(周公)에게 평정되어죽었다.

 

*채중: 중국 주나라 때 제후로 숙도(叔度)의 아들. 이른은 호(胡).

 

*대전: [대전통편(大典通編]. 정조의 명으로 1785년에 완성된 법전으로 6권.

 

*상서고훈:다산이 그 제자 이청으로 하여금 편집하게 하고 뒤에 다시 정리한 책으로 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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