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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2부, 소릉의 박학) -정약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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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2부

두 아들에게 주는 가훈

 

소릉의 박학


 

소릉은 구경(九經)을 막힘없이 술술 외웠으며, 백가서(百家書)에도 두루 관통하여 빠트림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시험해보려고 흔히 볼 수 없는 글에서 한 글자 반 구절을 따다가 갑자기 묻자, 공은 그 글의 전문(全文)을 외워 10여행(行)을 그치지 않고 술술 내려가니 시험하던 사람이 도리어 어이없어하였다.

갑인년(1794) 겨울에 도감당상(都監堂上)이 되었을 때 '개운(開運)' 등 여덟 글자의 휘호를 올리기로 의논하였는데, [금등(金燈)] 의 뜻*이 모두 빠져 있어 임금이 휘호를 고치고 싶어했으나 적당한 이유로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공이 아뢰기를 "개운은 석진(石晉)*의 연호(年號)입니다"라고 해서 드디어 고치기로 의논을 정하였다. 그리고 "모름지기 독서인을 등용해야 한다"는 비유의 성교(聖敎)를 내렸다.

을묘년(1795)봄에 공조판서(工曹判書)에 제수하였고 또 인정문(仁政門)에서 전좌(轉座)한 때 특별히 나를 불러 전교(傳敎)를 받아쓰도록 하였으니, 이는 대개 개운에 대하여 올린 답변이 임금의 뜻에 크게 부합하였기 때문이다.

공은 나보다 20세 위였으나 국가의 큰일을 함께 논하다가 충의(忠義)에 감격한 뜻이 맞으면 훌쩍 일어나 절을 하곤 하였다.

 

만년에는 오사 이정운과 서로 잘 지냈다. 들 뜨는 밤이면 서로 모여서 손수 거문고를 격절하게 타기도 하였다. 뜰 앞에는 오동나무 한그루와 파초 한떨기가 있어 맑은 그림자만 너울거려 한점 진토(塵土)의 기운이 없었으니 그야말로 당시 최고의 풍류였다.

 

 

 

*금등의 뜻: [금등]이란 [서경(書經)]의 편명으로, 주나라 무왕에게 병이 나자 그 아우인 주공(周公)이 왕실이 편안치 못하고 은민(殷民)이 굴복하지 않아 근본이 흔들리기 쉽다 하여 세 왕(태왕 왕계 문왕)에게 무왕의 명을 자기가 대신 받아 죽게 하고 무왕은 살려달라고 축원한 것을 사관(史官)이 기록하여 금궤 속에 감추어두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영조가 사도세자의 사건에 대한 사연을 적어 정조에게 물려준 것을 말한다. 영조는 동혜(桐兮)로 시작되는 28자를 친히 써서 사도세자의 신판(神板)밑에 넣어두었다 한다.

 

*석진: 오대(五代)의 후진(後晉)을 말함. 석경당(石敬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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