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1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거가사본]을 편찬하라
寄兩兒
주자(朱子)가 말하길
"화합하여 잘 지내는 것(化順)은 집안을 질서있게 하는[齊家] 근본이요, 부지런하고 검소한 것은 집안을 다스리는[治家] 근본이요, 독서는 집안을 일으키는 근본이요, 천리에 따르는 것은 집안을 지켜나가는 [保家] 근본이다" 했으니, 이것은 이른바 네가지 근본이다.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내게 옛사람의 격언을 기록해달라기에 객지인 이곳에 책도 없고 해서 이 네가지를 편목으로 네댓권의 책 가운데 명언과 지론(至論)을 뽑아 편집하여 책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너무 비현실적인 소리라 여겨 꼬깃꼬깃 구겨서 버리고 말았다. 이런 천박한 세상을 비웃고 말 일이지만 다만 그 책이 없어진 것이 애석할 뿐이다.
너희들이 이런 편목에 의거해 정자나 주자의 책, [성리대전(性理大全)] 이나 [퇴계언행록] [율곡집] [송명신록(宋名臣錄)] [설령(設鈴)]* [작비암일찬] [완위여편(宛委餘篇]* 및 우리나라 여러 현인들의 기술(記述) 중에서 자료를 모아 편집한 후에 차례를 잡아 서너권을 만든다면 좋은 책 하나가 될 것이다.
효(孝) 제(弟) 자(慈), 부화부순(夫和婦順), 목친척(睦親戚), 어비복(御婢僕) 등에서 올바른 행실은 마땅히 제가(齊家) 의 근본에 넣고,
밭 갈고 길쌈하는 이야기나 입고 먹는 일에서 경계될 만한 교훈, 가축 기르는 법이나 전원 가꾸는 여러 이야기는 마땅히 치가(治家) 의 근본에 넣고,
뜻을 세우는 일, 공부하는 일, 나쁜 일을 버리고 좋은 일을 따르는 것,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일, 책을 간수하는 일, 책을 베끼는 일, 책 읽기를 좋아하는 일, 책을 아끼는 일에 관계된 이야기는 마땅히 기가(起家) 의 근본에 넣을 것이며,
음덕을 쌓고 성내는 일을 절제하는 것, 분수에 만족하는 일, 곤궁함에 처해서도 느긋한 것, 일을 처리하는 것, 사물에 응대하는것, 하늘이 부여한 운명을 즐거워하는 것, 자신이 본분을 아는 것 등은 물론, 사욕을 막고 천리(天理)를 다르는 말들은 마땅히 보가(保家) 의 근본에 넣어야 할 것이다.
이를 합하여 '거가사본(居家四本)'이라 칭하고 책상 위에 놓아두고 항상 읽는다면 어찌 심신에 크게 유익하지 않겠느냐? 너희들은 부디 힘쓰도록 하여라.
*설령: 자잘한 이야기를 모은 책. 소설(小說)이면서 정설(定說)에는 합하지 않는 내용이다. 전집.후집 각 6책이며, 청나라 때 오진방(吳震方)의 편이다.
*안위여편: 중국 청나라 때 조인호(趙仁虎)의 산방(山房) 이름이 완위산방(宛委山房)으로 그의 문집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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