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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1부, [주서여패]라는 책을 만들도록)-정약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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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1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주서여패]라는 책을 만들도록

 

​​寄兩兒


지난해[고려사]에서 긴요한 말들을 뽑아 책을 만들라고 말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이 일은 너희들에게 급한 일이 아닌것 같구나.

 

이제 한권의 좋은 책이 될 수 있는 체재를 보내니 이 체재에 의거해 [주자전서(朱子全書)]가운데서 취택하여 책을 만들어보거라.

 

뒷날 인편에 부치면 내가 잘되었는지 안되었는지 감정해보겠다.

 

책이 완성된 후에는 좋은 종이에 깨끗이 적고, 내가 지은 서문을 앞에 실어 항상 책상 위에 놓아두고 아침저녁으로 암송하도록 하여라.

 

 

 

 

책 이름은 '주서여패(朱書余佩)'라 하도록 하자.

편목(篇目)은 12조로 하는데 1. 입지(立志) 2.혁구습(革舊習) 3. 수방심(收放心) 4. 검용의(檢容儀) 5. 독서 6. 돈효우(敦孝友) 7. 거가(居家) 8. 목족(睦族) 9. 접인(接人) 10. 처세(處世) 11. 숭절검(崇節儉) 12. 원이단(遠異端)으로 하여라.

지금은 너희들의 힘이 모자라 많은 책 중에서 널리 채록하기가 힘들 것이니 [주자서(朱子書)] 한책에서만 골라내 각 편목마다 12조씩 책을 만들어라.

 

목족과 같은 부분은 편목을 채우기가 힘들면 [사서집주(四書集注)]에서 보태고 그래도 부족하면 [소학(小學)]에서 보충하되, 그럴 때는 항상 '주자왈(朱子曰)'이라는 세자를 써넣어 표시하도록 해라.

(가령 [소학]중에서 뽑아 쓸 때 [소학]의 장공예 張公藝라는 분의 일을 쓰려고 하면 너희는 이렇게 써라. '朱子曰 張公藝云云'-지은이).

 

[주자서]는 모든 것이 순숙(純熟)하고 혼후(渾厚)해서 처음 배우는 사람은 더러 싫증을 내기 쉽다. 너희는 모든 힘을 기울여 그 날카롭고 심각하며 기탁하여 놀랄 만한 어구들을 뽑아 이를 처음 접해 아직 배우는 데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 좋은 자극이 될 수 있도록 하여라. 순숙하고 혼후한 것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자.

조(條)마다 6,7줄이 넘지 않도록 하여라(120자를 한계선으로 함-지은이) 더러 색다른 깨우침이 될 만한 빼어난 어구들이 나올 때는 한줄이나 한두 구절이라도 좋다. 잠(箴) 명(銘) 송(頌) 같은 글에서 뽑을 만한 것이 있으면 뽑아도 된다.

혁구습 같은 조목에는 눕기를 좋아하는 것, 농담 잘하는 것, 성질내는 것, 바둑이나 장기에 미치는 것, 권모술수 쓰는 것, 속이는 것 등이 있을 것이다.

 

이는 율곡 선생이 지은 [격몽요결(擊蒙要訣)]* 의 예(例)를 바꾼 것이다(율곡은 성인이 되겠다고 스스로 기약해야 뜻을 세웠다고 하며, 그 뜻을 세워야 학문을 하게 된다고 했음-지은이).

목족과 같은 부분에 12조가 다 차지 않으면 화린(和隣) 같은 데서 따다 보태도 되는데, 그럴 때는 그 편목 아래에 '화린부(和隣附)'라는 석자를 넣어주는 것이 좋다.

 

120자로 마감하면 부득불 본문을 줄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머리 부분이나 끝부분을 줄이면 된다. 줄인 부분에서 또 구절을 줄이게 되면 본래의 뜻을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처세에 해당하는 것은 사람 사귀는 일, 출처(出處), 진퇴(進退), 응사(應事), 접물(接物)등인데, 그것을 뽑을 때는 자신의 일에 비추어 너희들이 꼭 지니고 살았으면 하는 것을 주로 하고, 영달한 사람들한테 필요한 행위규범 같은 것은 생략해도 괜찮다.

 

[주자전서]에 이르기를 "큰 바위를 뽑아내려면 반드시 뿌리째 뽑아야 한다. 바위의 표면만 약간 깎아낸다면 무슨 일이 이루어지겠느냐"(제1권 15장-지은이)라고 했다면 이것은 반드시 혁구습에 넣어야 한다.

 

 

"학문을 하는 것은 꼭 물 위로 배를 저어 올라가는 일과 같다. 물이 평탄한 곳에서는 그대로 가도 괜찮지만, 세찬 여울의 급류를 만나면 사공은 잠시도 삿대를 느슨하게 잡아서는 안된다. 또한 힘을 주어 한발짝도 늦추어서는 안되고 조금이라도 물러나면 배는 올라가지 못한다." (앞장의 아래 조목-지은이)라고 하였는데 이조항은 마땅히 입지 편에 넣아야 한다.

저(這)라는 글자는 '이것(此)'이라는 뜻이고 나(那)라는 글자는 '저것(彼)'이라는 뜻이고 임지(恁地)라는 것은 '이러이러하다'는 뜻이다. 다른 곳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 있으면 편지로 묻도록 하거라(글을 뽑아내서 책을 만드는 방법은 한 조목을 뽑으면 그것으로 미루어 나머지 세가지도 짐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지은이).

 

[주자전서] 가운데는 기굴(奇堀)하고 돌올(突兀)하고 참담(慘憺)하고 맹렬하며, 놀라서 공포를 느끼게 하고 희열하게 하는 말들이 부지기수다. 혹 12편목에 해당되지 않아 뽑으려 해도 넣을 곳이 없고 버리기에는 너무나 색다르고 중요해서 결정하기 어려운 것이 있거든, 둘째를 시켜서 따로 뽑아 몇편으로 분류한 다음 이름을 붙여 책 뒤에 붙이도록 하거라.

 

이 책을 2월 보름께 보내온다면 내 마음은 너무 기뻐 벌떡 일어나 춤이라도 출 것 같다. 너희들이 이 아비를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급히 서둘러 착수하기 바란다.

 

*격몽요걸: 율곡 이이(李珥)가 지은 초학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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