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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독서HAZA365>/책속글귀-2018년

도덕경 제16장, 완전한 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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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제16장, 완전한 비움

 


완전한 비움에 이르십시오.

참된 고요를 지키십시오.

온갖 것 어울려 생겨날 때

나는 그들의 되돌아감을 눈여겨봅니다.

온갖 것 무성하게 뻗어 가나

결국 모두 그 뿌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 뿌리로 돌아감은 고요를 찾음입니다.

이를 일러 제 명을 찾아감이라 합니다.

제 명을 찾아감이 영원한 것입니다.

영원한 것을 아는 것이 밝아짐입니다.

영원한 것을 알지 못하면 미밍으로 재난을 당합니다.

영원한 것을 알면 너그러워집니다.

너그러워지면 공평해집니다.

공평해지면 왕같이 됩니다.

왕같이 되면 하늘같이 됩니다.

하늘같이 되면 도같이 됩니다.

도같이 되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몸이 다하는 날까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헛된 욕심과 잡생각을 모두 비우고 조용히 앉아 우주 만성의 생겨남을 관조하면 모든 것이 결국 그들의 뿌리로 돌아감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생성과 변화의 세계에서 모든 것의 뿌리, 만물의 근원, 도 道로 돌아가서 참된 고요를 찾는 것이 곧 우주 만성의 본래적 '운명'에 귀의함이라고 한다.

이렇게 무엇이든 생겨났으면 그 근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반복적 과정은 우주의 영원한 법칙, 영원한 진리다.

이 영원한 실재의 구조와 흐름을 꿰뚫어보는 것이 '밝아짐(illumaination, enlightenment)' 이다.

 

이와 비슷한 가르침은 다른 종교에서도 발견되는 데 예를 들어 불교의 묵조선默照禪에서는 모든 일상적인 생각을 비우고 고요히 앉아 우주의 실상, '참된 그러함 眞如(suchness)'을 관조하라고 한다.

그렇게 하여 얻는 꿰뚫어 봄이 반야지 般若智니 각 覺이니 오悟니 깨침이니 하는 것이다.

신유학에서도 오랫동안'정좌 靜坐'하고 '사물의 이치를 궁구格物致知'하면 어느날 아침 홀연히 '밝아짐 明'에 이른다고 한다.

 

 

눈코 뜰 사이 없이 부산하게 돌아가는 현대 생활에서 언제 이렇게 한가하게 앉아 우주의 흐름이니 사물의 실상이니 영원한 진리니 따지고 있을 시간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근본적인 진리에 입각하지 않고 엄범덤벙 살아가면 아무리 설치고 부산하게 일을 늘어놓아도 그것은 결국 "미망으로 재난을 당하는" 결과밖에 가져오지 못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시간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라 삶을 삶답게 하고 일상의 허망한 생각과 무거운 짐에서 해방되는 참자유를 누리려면 어쩔 수 없이 영원한 진리를 궁구하는 데 전념하는 일밖에 딴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영원한 진리를 알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된다는 것일까? 우선 너그러워진다고 한다.

옹고집이나 돈단은 무지나 단견이나 편견에서 나온다. 사물의 영원한 실체를 꿰뚫어보게 된다면 자연히 옹고집이나 독단은 눈 녹듯 라라지고 쓸데없이 다투거나 조그만 일로 안달복달할 일이 없어진다. 통이 큰 사람, 여유 있는 사람, 융통성 있는 사람이 된다.

[莊子장자]에 나오는 '조삼모사 朝三暮四'이야기에서 보듯이 아침에 세 개 주고 저녁에 네 개 주나 아침에 네 개 주고 저녁에 세 개 주나 결국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 원숭이들은 어느 한쪽에 사활이 달린 것처럼 안달복달하며 자기들의 고집을 관철시키려 하지만, 그것을 아는 저공 狙公은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거기에 구애되지 않는 여유를 보일 수 있다.

 

 

이렇게 '영원의 시각'에서 사물을 봄으로써 융통성, 포용성, 활달함을 갖게 되면 사私가 없어지고 공 公적인 인간, 공평 무사 公平無私한 인간이 된다.

여기서 공 公은 공작 公爵 같은 인물, 그 정도의 위치에서 사람을 다스리는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인물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아무튼 이렇게 되면 계속해서 왕 같은 사람, 하늘 같은 사람, 도와 같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도 道와 하나되므로 작은 '나'라는 것이 없어진 무사 無私, 무아 無我의 사람, 큰 '나'로 새로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육신적인 죽음이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비록 몸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영원한 나는 없어지지 않으므로, 그야말로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경지, "죽어도 살겠고" 의 경지에 이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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