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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독서HAZA365>/책속글귀-2018년

​​숨 좀 쉬어요 -이동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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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의 경전인 우파니샤드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활짝 핀 꽃나무 향기가 멀리서 불어오듯이 복업(福業), 즉 선행의 향기도 멀리서 불어온다."

중국의 역경에는 또 이러한 구절이 있습니다.
"군자가 집에 있으면서도 그 말하는 바가 옳으면 천리 밖에서도 거기에 응하게 된다.

(君子, 居其室, 出其言善則 千里之外 應之)"
바로 이러한 향기, 천리 밖에서도 사람들이 맡을 수 있는 향기를 진정한 향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쓸데없이 "북~북~"하며 가죽피리를 부는 것과는 차원이 틀린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덕행의 향기, 좋은 책에서 느껴지는 사람의 향기, 오래된 수양으로 저절로 주위를 감복시키는 인격의 향기, 수양과 인격이 담겨 있어 시인을 직접 옆으로 만나는 듯한 몇 줄의 멋있는 싯귀, 그 속에서 느껴지는 향기, 이처럼 보이지도 않으면서 느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향기가 진정한 향기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 아침 아카시아꽃나무 옆을 자동차로 지나면서 냄새를 잘 맡지 못하기 때문에 아카시아 꽃을 두려워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진정한 향기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진정한 향기는 굳이 창문을 닫고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두려운 것은 요즈음 그러한 향기가 점점 없어져가고 있다는 점이며, 우리 주위에서 그러한 향기를 기대하기가 갈수록 어렵다는 점입니다. 코로 맡는 향기가 아니라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향기가 다시 주위를 진동할 때에, 그 때는, 창문을 연다고 더 잘 느껴지는 것도 아니지만 자동차의 창문을 더 활짝 열텐데...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잊을까 걱정돼 이 책 저 책 뽑아 놓고서
흩어진 걸 도로 다 정리하자니,

해가 문득 서산으로 기울어지고,
가람엔 숲 그림자 흔들리누나,

막대 짚고 뜨락으로 내려가서
고개 들고 구름재를 바라보니,

아득히 밥 짓는 연기 피어오르고,
으스스 산과 벌은 차가웁구나.

농삿집 가을걷이 가까워지니,
방앗간 우물터에 기쁜 빛 돌아.

갈가마귀 날아드니 절기 익어가고,
해오라비 우뚝 선 모습 훤칠쿠나.

그런데 내 인생은 홀로 무얼 하는 건지
숙원이 오래도록 풀리질 않네.

이 회포를 니에게 얘기할거나.
고요한 밤. 거문고만 둥둥 탄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 '저녁 산보(晚步)'

 

 

 





뜰 앞의 두 그루 매화나무

가을되니 다투어 시드네

산골짜기는 아직 울창해서
좁은 땅을 다투는 듯 한데

뛰어난 충채 보존키 어려운 것은
온갖 나무들의 제멋대로 때문이라.

바람과 설 호되게 몰아치면
꼿꼿하든 약하든 무슨 차이 있으랴

저마다 꽃답고 향기로운 때
사람이 귀한 것 알아주어야

- 퇴계 이황, 가을의 회포 








여름 햇살은
얼굴에 샘을 파지만
가을 햇살은
손수건으로 닦는다.

텃밭 고추도
핏빛으로 익히고
설익은 그리움
시루떡처럼 찐다.

땀 흘린 숲을
황홀하게 염색하고
덕 익은 사랑도
사과처럼 익게 한다.

-박인걸,가을햇살





아버지 지게에 얹혀오는 신선한 바람이
슬며시 사립문 여는 어스름 저녁.
빛가림 서늘한 담벼락 등대고 돌아서니
서운한 것도 없는데 그냥 서러워지는 마음

보잘것없는 나의 뜰에도 정녕,
풍성한 가을은 오고 있는 것인가.

-종영, 초가을 풍경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나를 위한 삶이기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으니
이제는 텅 빈
나의 문에 이르기 위해
롤로 나를 따르는
내 그림자에게 길을 물어
진정한 나의 존재
만나야 하리

-김내식, 그림자에게 길을 묻다





동녁 울밑에 심은 국화를 따다가
고개를 들어 남산을 조용히 바라보니
해질 무렵 먼 산은 진정 아름다워라
저물어 뭇새들도 깃 찾아 돌아오고
이 여기에 삶의 진정한 뜻이 있으니
굳이 말로서 표현하기가 어렵구나

-도연명




​숨 좀 쉬어요  -이동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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