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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작가/워킹작가의 일상생각2022년

시(詩) 보며 느끼며-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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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초야에 묻혀 사는 것도 도가 있으니,

맑은 시대가 아니면

초야에 묻혀 살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

 

정약용 「청시야초당기」

민음사 인생 일력

 

 


 

시(詩) 보며 느끼며

출세의 기회가 있거나 권력이 주어지는데 사양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스스로 사양하고 초야에 머물 수 있는 이가 드물다 하겠다. 나아가 세상이 맑아야 초야에서 편안하게 살수 있다. 세상이 하 수상하다면 초야에 묻혀서 살기가 힘들 것이다.

세상 밖으로 나가 도움을 주어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자신의 안위보다 대의에 동참해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와 맑은 시대를 만나야 초당에 묻혀 유유자적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면 도에 어긋나지 않는다 하겠다.

-by 워킹 작가

 

 

 

번역

 

청시야초당기

병진년(1796, 정조 20) 봄 내가 휴가를 받아 하담(荷潭)의 선영에 가서 성묘를 하고 돌아올 적에 우담(愚潭) 가에 사는 족부(族父) 해좌옹(海左翁)1)을 찾아뵈었다.

공이 새로 초당을 지었는데, 마루 앞에 복숭아와 오얏 등 여러 꽃나무와 만향(蔓香, 만생하는 향나무인 듯함), 괴이한 소나무 10여 그루와 괴석(怪石) 10여 개를 심어 놓았으며, 마루 위에는 묵화(墨畵)와 행서(行書)가 걸려 있었다.

공은 검은 두건에 흰 옷을 입고 조용히 이 가운데에 앉아 있었는데, 바라보면 마치 선인(仙人)이나 처사(處士)와 같았다.

 

이윽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한 ‘청시야초당(淸時野草堂)’이다. 나는 좋은 세상에 초야에서 노년을 보내려고 한다. 이것이 나의 뜻이니, 그대는 부디 이것을 기록해 달라.”

 

내가 삼가 생각해 보건대, 군자는 좋은 세상을 만나면 반드시 나아가 조정에서 벼슬을 하니, 군자가 초야에 있다면 이는 어쩌다 만난 행운일 뿐이다.

다행히 명성이 조정에 알려지지 않고 종적이 도시에 이르지 않았으면 그래도 초야에 은거할 수 있다.

그러나 공처럼 문권(文權)을 잡은 관각(館閣)2)에 임명되고 또 전형(銓衡)의 권세3)을 제수받고서도 물러나 초야로 돌아갈 수 있는 경우는 천하에 드문 일이다.

또 군자가 초야로 물러나는 경우는 임금의 대우가 정성스럽지 못하거나 자신이 스스로 높은 절개를 힘써 명성을 취하려고 해서 벼슬에 나가려 하지 않는 경우이니, 이러한 이유라면 초야에 은거할 만하다.

그러나 공의 경우는 임금이 높이고 총애하는 것이 공명정대(公明正大)하신 지극한 뜻에서 나왔고, 공도 벼슬을 제수하는 성지(聖旨)가 내려오면 명을 듣자마자 즉시 조정에 달려가서 병을 핑계로 겸손히 사양하여 스스로를 높인 적이 없었다.

이와 같은데도 공은 물러나 초야에 은거할 수 있었으니, 이야말로 보통 사람이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이 처신하는 것과 세상일을 처리하는 것은 모두 마음에 스스로 터득한 것이 있어서이니,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초야에 은거하는 것에도 방법이 있으니, 좋은 세상이 아니면 비록 초야에 은거하고자 해도 뜻을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초야에 은거하고자 하는 자는 좋은 세상을 만나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내게도 소내[苕川, 정약용의 고향 마을]의 들에 은거하려는 생각이 있는데 이처럼 좋은 세상을 만나면 도모하려고 한다고 말씀드리자, 공이 “좋다.”라고 하셨다.

[네이버 지식백과] 청시야초당기 [淸時野草堂記] (여유당전서 - 시문집 (산문) 14권, 김창효, 박석무, 송재소, 임형택, 성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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