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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독서HAZA365>/책소개,독서HAZA-2022년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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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지음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한번 만나보자. ​사랑은 참으로 어렵고 미묘하고 복잡하다.

사랑도 기술이라면 지식과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맞다. 오십쯤 되어보니 사랑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사랑의 기술은 사랑의 이론과 사랑의 실천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중 사랑의 이론이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사랑의 대상에는 사랑,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사랑의 대상(형제, 모성애, 성애, 자기애, 신에 대한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의 실천은 짧은 분량이지만 생각의 여지가 많다. 얇고 가벼운 책을 생각보다 오랜시간 붙들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기분좋은 말처럼 기분좋은 시간을 가진것 같다. 사랑의 실천은 활동이다. 이 활동은 내적인 활동을 말한다. 이는 겸손과 객관성이라는 이성을 요구한다. 평생 훈련을 통해 만들어야한다.

 

 

​책속글귀

(책내용을 나름정리한 것입니다)

 

​'사랑은 기술인가?' 라는 부분을 들여다 본다.

사랑은 배울 필요가 없다는 태도의 배경

1. 사랑은 '사랑받는'것으로만 생각한다.

사랑받기 위해 자신의 지위와 능력을 앞세우는 남자들의 사랑과 몸을 가꾸고 옷치장을 하여 매력을 발산하는 여자들이 있다.

남여가 공용으로 매력을 발산하는 것은 유쾌한 태도와 흥미있는 대화, 유능하고 겸손하여 둥글둥글하게 처신하는것이라 한다. 사랑스럽다는 표현은 인기와 성적 매력을 포함한다.

 

2.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가정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데 사랑하고 사랑받을 올바른 대상의 발견이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옛날식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결혼이 성사된 후에야 사랑이 시작된다는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3. 사랑을 '하게 되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하고 '있는'상태, 즉 사랑에 '머물러'있는 상태를 혼동하는 것이다.

사랑의 경험은 성적인 매력과 성적 결합에 의해 더욱 촉진된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의 경험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두 사람이 친숙해 질수록 서로 대립하고 실명, 권태가 생기며 신비의 감정도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사랑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실패의 원인을 가려내고 사랑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로 삶의 기술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기술'이라고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기술 습득과정은 둘로 나뉜다.

1. 이론의 습득 2. 이론의 실천

이론적 지식의 결과와 실천의 기술이 합치되어야 한다. 모든 기술 숙달의 본질이다.

 

사랑의 이론

미리 포스팅해 두었기에 링크 걸어둡니다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https://blog.naver.com/hyosic00/222861901204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책속글귀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지 결코 ...

blog.naver.com

 

 
 
 

 

 

 

 

 

 

 

 

사랑의 실천

기술의 실천

 

-훈련

문제는 어느 특정한 기술의 실천을 위한 훈련(매일 일정한 시간 동안 연습하는 것을 말한다)의 문제만이 아니고 전 생애를 통한 훈련의 문제라는데에 있다.

현대인은 일을 떠나서는 자기 훈련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현대인은 일하지 않을 때는 게을러지거나 빈둥거리고 싶어하고, 더 좋은 말을 쓴다면 '긴장을 푹고'싶어한다. 게으름에 대한 소망은 주로 규격화된 생활에 대한 반발이다.

게다가 권위주의와의 싸움에서 현대인은 스스로 부여된 합리적 훈련만이 아니고 불합리한 권위에 의해 강요된 훈련도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훈련이 없으면 생활은 파괴되고 혼란이 생기며 중심을 잃게 된다.

 

-정신집중

자기훈련보다도 정신 집중은 우리 문화에 더울 드물다. 한번에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당신은 그림, 술, 지식 등 모든 것을 삼키려고 하고 심킬 준비가 되어 있는 큰 입을 가진 소비자다. 이런 정신 집중의 결핍은 우리가 홀로 있기가 어렵다는 데에서 명백히 나타난다.

​​

-인내

빠른 결과를 바란다면 기술을 결코 배우지 못한다. 그러나 현대인에게는 훈련과 정신 집중과 마찬가지로 인내도 어렵다.

현대인은 일을 신속히 하지 못할 때에는 무엇(즉 시간)을 잃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얻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 시간을 허비하는 것 이외에는,

-지대한 관심

이 기술이 매우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견습광은 이것을 배우지 않을 것이다. 이 조건은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기술에 있어서도 필요하다. 그러나 다른 기술의 경우와는 다르게 사란의 기술에 있어서는 명장과 아마추어와의 비중이 아마추어 쪽으로 훨씬 기우는 것 같다.

기술 자체를 배우기 시작하기 전에 다른 많은 일을 배워야 한다. (때로는 서로 관계없는 것들) 목공을 배우는 자는 나무를 깎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피아노 연주를 배우는 자는 음계(音階)연습부터 시작한다. 활을 쏘는 기술을 배우는 자는 호흡 연습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떤 기술에 숙달하려면 생활 전체를 이 기술에 바치거나 적어도 이 기술과 관계되어 있어야 한다.

사랑의 기술에 있어서 이 말은 이 기술에 있어 명장이 되려는 사람은 생활의 모든 부문을 통해 훈련, 정신 집중, 인내를 실행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훈련을 하는가?

본질적인 훈련은 외부로부터 부과된 규칙처럼 실행되어서는 안 되고 자신의 의지의 표현으로써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훈련을 즐겁게 여기며 훈련을 그만 두면 결국 실패하게 될 행동에 천천히 익숙해지는 것이다.

훈련을 고통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고통스러운 훈련만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서양의 훈련에 대한 개념의 불행한 한 측면이다. 동양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인간에게 (인간의 심신에)좋은 것은, 비록 처음에는 약간의 저항을 극복해야 하지만, 역시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정신을 집중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현재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금 무엇인가 하고 있으면서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생각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자신에 민갑하지'못하면 정신 집중을 익힐 수 없다. 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면의 소리는 왜 내가 불안하고 우울하고 조바심하는가를 말해 줄 것이다.

 

사랑의 실천

 

'자이도취(나르시스즘)'를 '극복하는 것'이다. 자아 도취적 방향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만을 현실로써 경험하는 것이다.

자아 도취의 정반대는 객관성이다. 이것은 사람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이고, 이러한 객관적인 상(像)을 자신의 욕망과 공포에 의해 형성된 상(像)과 분리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모든 형태의 정신병은 객관적일 수 없다는 점에서 극단적으로 무능한 것을 보여 준다.

객관적으로 사고하는 기능은 '이성(理性)'이다. 이성이 배후에 있는 감정적 태도는 겸손한 태도이다.

객관적인 것, 즉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는 것은 겸손한 태도를 갖게 될 때, 어린애 처럼 갖고 있는 전지전능(全知全能(의 꿈으로부터 벗어났을 때만이 가능하다.

사랑은 자아 도취의 상대적 결여에 의존하는 것이므로 사랑은 겸손, 객관성, 이성의 발달을 요구한다.

우리는 전 생애를 이러한 목적에 바쳐야 한다. 겸손과 객관성은, 사랑이 그런 것처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나는 자아 도취적으로 왜곡된 어떤 사람과 그의 행도에 대한 '나의 상(像)과, 나의 흥미나 욕구, 공포와는 관계없이 존재하는 그 사람의 실체와의 차이점을 파악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객관성과 이성의 능력을 획득했따면 사랑의 기술은 반쯤은 달성한 것이다.

사랑의 실천에 불가결한 분명한 태도는 '활동'이다. 활동은 어떠한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활동, 즉 자신의 힘을 생산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은 활동이다. 내면적 게으름을 피하기 위해 하루 종일 자신의 눈과 귀로 느끼고 사고하는 것은 사랑의 실천에 불가결한 조건이다. 

사랑의 기술에 대한 논의는 이 장(章)에서 기술된 특성과 태도를 획득하고 발달시키는 개인적 영역에만 국한시킬 수 없다. 이러한 논의는 사회적 영역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사랑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의 태도를 의미한다는 것이 사랑의 성격적 특징이라면, 사랑은 우리의 가족과 친구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작업, 사업, 직업을 통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도 존재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기자신을 위한 사랑과 타인을 위한 사랑 사이에는 ‘분업’이 없다.

오히려 타인을 사랑하는 조건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조건이된다.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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