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자서전>
카잔차키스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깜짝 놀랄만한 비유와 글솜씨에 머리를 한대 심하게 얻어맞은 기분이다.
호메롯, 베르그송, 니체, 조르바, 붓다를 좋아하고, 여행과 꿈을 사랑한 카잔차키스!
그의 글은 나를 신세계로 안내하기에 충분했다.
카잔차키스의 어록들을 남겨본다.
세 가지의 영혼, 세 가지의 기도
첫째, 나는 당신이 손에 쥔 활이올시다. 주님이여,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둘째, 나를 너무 세게 당기지 마소서. 주님이여. 나는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셋째, 나를 힘껏 당겨 주소서. 주님이여. 내가 부러진들 모슨 상관이겠나이까?
프롤로그 중에서
시각(視角),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지성- 나는 내 연장들을 거둔다. 밤이 되었고, 하루의 일은 끝났다. 나는 두더지처럼 내 집으로, 땅으로 돌아간다. 지쳤거나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피곤하지 않다. 하지만 날이 저물었다.
해는 졌고 언덕들은 희미하다. 내 마음은 산맥에는 아직 산꼭대기에 빛이 조금 남았지만 성스러운 밤이 감돌고 있으니, 밤은 대지로부터 솟아 나오고,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빛은 항복하지 않겠따고 다짐했지만, 구원이 없음을 안다. 빛은 항복하지 않겠지만, 숨을 거두어야 하리라.
.....
그러나 이제 하루의 일이 끝났으니, 나는 연장들을 거두어들인다. 다른 흙덩이들이 와서 투쟁을 계속하게 하라. 죽음을 면하지 못할 우리 인간은 불멸한 존재를 위한 일꾼의 물일 따름이다.
우리들의 피는 산호여서, 심연의 위에다 섬을 만든다.
신은 우리들이 깎아 낸다. 신에게 견고함을 부여하여 무너지지 않도록, 그리하여 내가 무너지지 않게끔 신이 견고함을 부여하도록, 나 또한 작고 붉은 벽돌을, 피 한 방울을 내놓았다. 나는 내 임무를 다했다.
잘 있거라!
.....
그러나 마음은 저항한다.
돌멩이와 풀을 움켜잡으며 마음은 애원한다.
<잠시만 더 머물게 하라!>
나는 마음을 설득하여, 서슴없이 <그러마>라고 양보하도록 타이른다. 우리들은 매를 맞고 눈물을 흘리는 노예가 아니라, 배물리 먹고 마셔서 이제는 아쉬운 바가 없는 왕처럼 이땅을 떠나야 한다. 그러나 마음은 아직도 가슴속에서 발버둥을 치며 소리지란다. <잠시만 더 머물게 하라!>
남아서 나는 마지막으로 빛을 언뜻 쳐다보는데, 그 빛 또한 인간의마음처럼 저항하고 발버둥친다. 구름이 하늘을 두덮었고, 따뜻한 가랑비가 내 입술을 적시며, 대지는 향기롭다. 감미롭게 유혹하는 목소리가 흙에서 솟아 나온다 <오서 오라....오라....오라....>
.....
장군이여, 전투가 끝나 가니 나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나는 여기서 이렇게 싸웠노라. 나는 부상을 당해 쓰러졌고 용기를 잃었지만 싸움터를 버리지는 않았다. 비록 겁이 나서 이빨이 덜덜 떨리기는 했지만, 나는 피를 감추기 위해 빨간 수건을 이마에 질끈 동여매고는 공격을하러 달려갔다.
나는 피와 땀과 눈물로 빚은 작은 한 덩이 흙만 남을 때까지 내갈까마귀 영혼의 소중한 깃털을 하나씩 하나씩 뽑으리라, 나는 짐을 벗기 위해 당신에게 내 투쟁의 이야기를 하겠노라. 나는 짐을 벗기 위해 ㅁ덕과 수치와 진실을 던져 버리겠다.
내 영혼은 당신의 작품인<폭풍 같은 톨레도 칼>을 닮아서, 노란 번갯불과 위압적인 검은 구름을 허리에 차고, 빛과 어둠에 대항해서 필사적으로 물러설 줄 모르는 싸움을 벌인다. 당신의 내 영혼을 보고, 칼날 같은 눈으로 살펴보고, 심판을 내리리라.
<실패한 곳으로 돌아가고, 성공한 곳은 떠나라>는 엄숙한 크레타의격언을 당신은 아는가?
만일 실패했다면, 나는 목숨이 단 1시간밖에 남지 않았더라도 공격을 하러 돌아갈라. 성공을 거두었다면, 나는 땅을 갈라 열어서 당신에게로 라 그 옆에 누우리라.
그러니 장군이여, 내 말을 듣고 심판하라, 내 삶의 얘기를 듣고, 할아버지시여, 만일 내가 당신과 함께 싸웠으며, 만일 내가 다쳐 쓰러졌으며, 남들이 내 고통을 알지 못하게 숨겼으며, 만일 적으로부터 내가 한 번도 도망친 적이 없었음을 알겠다면.....
나에게 축복을 내리소서!
<손이 닿지 않는 것을 잡아라!>
<작는 것이 두렵지 않으세요?>
<신은 위대하지>
<나는 신에게 희망을 걸어>
<이성이여, 조용하라, 우리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현실은 바꿀 수가 없을 터이니 현실을 보는 눈을 바꾸자>
<아이의 마음과, 눈과 귀는 기적이다.
그것들을 만족할 줄 모르고 세상을 집어삼켜 한없는 욕구를 채운다.>
<세계는 빨강, 초록, 노랑 깃털이 달린 새이다.
아이는 이 새를 찾아내어 잡으려고 무척이나 헤맨다.>
"귀를 기울여 내 마지막 지시를 들어라. 얘들아, 소와, 양과 당나귀- 심승들을 잘 돌보거라. 짐승들도 인간이고, 우리들처럼 영혼을 가지고 있지만, 가죽을 쓰고 말을 못 할 뿐이니까 어리석은 판단을 하지 마라. 그들도 옛날에는 인간들이었으니까 배불리 먹이거라. 그리고 올리브와 포도나무를 잘 돌보아라. 열매를 얻고 싶으면 거름과 물을 주고 가꾸어야 하느니라. 나무들도 옛날에는 인간이었는데, 너무 오래전이라 그런 줄 모르고 살아갈 뿐이란다. 하지만 인간은 기억을 하니, 그래서 인간이 아니겠느냐...."
<아버지 포도가 다 없어졌어요.>
<시끄럽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가라 땅을 버리고 걸어라!>
<싫어요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당신은 불가능한 걸 요구해요.>
<우린 평화와 안정을 찾았으니, 여기 눌러 붙어 살겠어요!>
<흙을 떠나고 일어서서 더 훌륭하게 되어라.>
<우린 싫어요! 우린 그럴 능력이 없어요.>
<너희들은 능력이 없지만, 나에게는 있다, 일어서라!>
<나는 어디로 가나요? 나는 정상에 이르렀고, 그 너머는 나락입니다.>
<그 너무에서는 내가 기다린다. 일어서라!>
<여기가 내 고치 속이랍니다.>
<나는 애벌레처럼 이 속에 스스로 갇혀 삽니다. 나는 나비가 될 날을 기다리죠.>
이 벽화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내 영혼이 현재 느끼고 있던 걱정과 희망이 그대로 담긴 그림의 의미를 나는 그날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수많은 물고기가 꼬리를 들고 장난치며 즐겁게 물속에서 돌아다니는데, 한가운데서 날치 한 마리가 갑자기 작은 지느러미를 펼치고는 공기를 마시려고 바다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노예적인 물고기에 비하면 날치의 본성은 너무나 컸고, 평생 물속에서 살기에는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그것은 갑자기 숙명을 뛰어넘고, 자유로운 공기가 숨 쉬고, 견딜 수 있는 한 짤막한 순간이나마 새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충분했으니, 짤막한 한순간은 곧 영원이었다.
나는 수천년 전에 지은 궁전 벽화에서 본 물고기가 나 자신의 영혼이기라도 한 듯 굉장한 흥분과 우애를 느끼며 쳐다보았다. [필연성을 초월하여 자유를 숨 쉬려고 뛰어오르는 물고기, 이것은 크레타의 성스러운 물고기이다]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ICHTHYS 그리스도는 똑같은 대상을 추구하느라고 인간의 숙명을 초월하여 신과, 그러니까 완전한 자유와 결합하려 하지 않았던가? 투쟁하는 모든 영혼은 울타리를 부숴 버리려는 똑같은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가? 자유를 위해 싸우고 죽은 영혼을 나타내는 이러한 상징의 탄생이 크레타에서 처음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기뻤다.
날아가는 물고기- 투쟁하는 불굴의 인간 영혼을 보라!
-p632
위대한 순교자 니체
어느날 생트주느비에브 도서관에서 독서에 몰두했던 나에게 한 소녀가 다가왔다.
그녀는 어떤 남자의 사진이 실린 책을 손에 들었는데, 밑에 적힌 이름이 보이지 않게끔 손으로 가린 채였다.
허리를 굽히고 경이에 찬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그녀는 사진을 가리켰다.
'이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머리를 저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하지만 이건 당신이에요. 아주똑같아요! 이마와 짙은 눈썹, 푹 들어간 눈을 봐요.
이 사람은 큼직한 콧수염이 축 늘어졌는데 당신은 수염이 없다는 점만 달라요.'
나는 깜짝 놀라서 사진을 보았다.
'그럼 이 사람이 누구죠?' 이름을 보려고 소녀의 손을 밀어내려 하며 내가 물었다.
'보면 몰라요? 이 사람 처음 보세요? 니체에요!'
니체라니! 얘기는 들었지만 나는 아직 그가 쓴 책을 한 권도 읽은 적이 없었다.
[비극의 탄생]이나[차라투스트라]도 안읽어 봤어요? 영원회귀나 초인에 대해서도요?
'하나도 못 읽었어요, 하나도' 나는 창피함을 느끼며 대답했다.
'잠깐 기다려요!'라고 소리치더니 그녀는 잽싸게 달아났다.
잠시 후에 그녀는 '차리투스트라'를 가지고 돌아왔다.
'여기 보세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에게 두뇌가 있기나 한지,
그리고 그 두뇌가 굶주렸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당신의 두뇌를 위한 견실하고 용맹한 양식이에요!'
그것은 내 삶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들 가운데 하나였다.
미지의 대학생이 끼어들었던 덕택에 내 운명은 생트주느비에브도서관에서 기습을 당했다.
그곳에서는 온통 피투성이의 모습으로, 위대하고 격렬한 투사인 그리스도의 적이 나를 기다렸다.(......)
-p436
나를 가장 감동시켰던 것은, 오 위대한 순교자여, 그대의 거룩하고 비극적인 삶이었다.
질병은 그대의 위대한 적이며 또한 가장 위대한 친구이고, 죽을 때까지 그대에게 변함없이 충실했던 유일자(唯一者)였다.
그것은 절대로 그대가 마음을 놓거나, 제자리에 머물게 내버려 두지 않았고,
여기라면 편하니까 더 가지 않겠다는 말을 하도록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그대는 불꽃이어서 활활 타오르고, 꺼져서는 잿더미만 남기며 떠났다.
그렇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나는 안다.
불꽃처럼 지칠 줄 모르고
나는 타올라 소모된다.
무엇이나 내가 닿으면 빛이 되고
무엇이나 내가 떠나면 숯이 된다.
분명히 나는 불꽃이니라.
-p438
해가 진다.
오, 불타는 내 마음이여,
너는 이제 목마르지 않으리.
대기는 신선하니,
미지의 입에서 흘러오는 숨결 느껴지고
벅찬 차가움이 오누나......
대기는 낯설고 순수하다.
이 밤은 나에게 심술궃고 유혹적인
눈길을 던지지 않았던가?
오, 용감한 내 마음이여, 힘세어라!
이유는 묻지 마라.
내 삶의 마지막 밤!
해가 진다.
-p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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