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밀 자유론>
처음 자유론을 접했을때 집중해서 읽지 못했다.
그저 눈으로 글자를 읽어 남는것이 없었다.
두번 세번을 접하고서야 좋은책임을 알아보게 된다.
책은 반복해서 읽음으로 이해하지 못한부분과 놓친 부분을 다시 만나게 된다.
좋은책을 다시 만난 기쁨과 감사함을 함께 맛보고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말로 표현하기전에 틀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입을 다물어 버리기 일수다.
진정한 자유로움은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행동하는것인데도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지는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다.
내면적 의식, 내가 좋아하는 것을 추구함, 나와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모임을 갖는것 이런것들이 자유의 기본영역이라고 한다.
자기의 생각을 토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다.
책을 읽고 몇자 끄적이는 것도 자유로운 행동이라 하겠다.
타인의 눈에 엉망이고, 쓰레기 길이라 여겨져도 나의 자유로운 행동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누리는 것이리라.
자유론을 통해 생각을 나누고 다름도 인정하며 토론할줄 알고 글쓰기를 할수 있는 능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방해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발전을 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개별성과 독창성을 존중하고 개발함으로써 남다른 창의력도 생겨날것이라 보여진다.
개별성, 독창성을 길러야한다.
소수의 천재들은 소금같은 존재라 한다. 그만큼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인물일 것이다.
소중한것은 흔히 공기나 물로 표현되었는데 소금이라 표현한 존 스튜어트 밀의 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들이 재능을 펼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그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따르는 것은 현명해 보인다.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이것은 어떤 한 사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나머지 사람 전부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만큼이나 용납될 수 없는것"
-존 스튜어트 밀
자유의 기본 원칙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한, 각자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존 스튜어트 밀의 명언은 엑기스이다.
나의 기억력은 돌아서면 또 잊어버리기에 책속의 글귀들을 남겨보려한다.
제1장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개하자면, 전폭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측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하나의 항목에 집중하는 것이 전체적인 생각을 한꺼번에 펼치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생각의 자유이다.
이 생각의 자유와 말하고 쓰는 자유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둘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유의 기본영역을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것 ,마음속에 새기며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생각은 자유다 하지만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수 있겠다.
좀더 다양한 생각을 하기 위해 읽고 생각을 나누고 또 정리하며 쓰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제2장
생각과 토론의 자유
인간 지성의 본질에 비추어볼 때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지혜를 얻을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틀린 것은 고치고 부족한 것은 보충하는 일을 의심쩍어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오히려 이를 습관화하는 것이 우리의 판단에 대한 믿음을 튼튼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자기 생각에 적어도 명확하게 맞설 수 있는 모든 의견들에 대해 소상하게 잘 파악하고 이런저런 반박에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힐 수 있는 사람- 즉 자신에 대한 반대의견이나 듣기 싫은 소리를 피하기보다 그것을 자청해 나서고,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될 수 있는 수많은 비판을 봉쇄하지 않는사람-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다른 어떤 사람이나 다중(多衆)보다도 자신이 판단에 대해 더 자신감을 가질 만하다.
-p49
!자신의 생각을 모으고 확인하기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타인의 의견도 들어보고 틀린것은 고쳐나가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같은 책을 읽으며 또는 같은 주제에 대해 서로 토론하며 보충하고 고쳐나가는 습관이 우리의 판단력을 도와주게 된다.
제3장
개별성: 행복한 삶을 위한 중요한 요소
인간은 개인에 따라 서로 다른 것들을 획일적으로 묶어두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잘 가꾸고 발전시킴으로써 더욱 고귀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창작물이 그것을 만든 사람의 성격을 반영하듯이, 인류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한껏 자부심을 느낄 정도로 인간이 발전하게 되면, 우리 삶도 풍요로워지고 다양해지며 활력이 넘칠 것이다.
고귀한 생각과 고결한 감정을 더욱 북돋워주게 되고,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는 연대의 끈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각자의 개별성이 발전하는 것과 비례해서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더욱 가치 있는 존재가 되며, 또 그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도 더욱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자기 존재에 대해 더욱 충만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각 개인이 이처럼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면 개인들이 모인 사회 역시 더욱 의미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인간의 본성 가운데 어떤 강력한 것이 다른 요소들의 발전을 저해하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적절하게 억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억압은 충분히 의미 있는 결과를 낳는다. 인간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그렇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기질을 억제하면 자기 발전의 수단을 잃게 되지만, 그것은 주로 다른 사람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희생시킴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자기 발전의 수단을 잃은 사람도, 이기적 요소를 억제하는 대신 자기 내면의 사회적 요소 social part를 더욱 발전시킴으로써, 그에 못지않은 것을 새로 얻게 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엄격한 정의의 규칙을 따르다보면 타인의 이익을 목표로 삼는 감정과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나 타인의 이익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일인데 단순히 그들의 불쾌한 마음 때문에 제지를 받는다면,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발전하지 못하고, 그런 제지를 거부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성격의 일단만을 키우게 된다.
자꾸 묵종(默從)하는 버릇이 들면 성격 자체가 단조롭고 둔감해진다.
사람들이 자기 성향대로 마음껏 살기 위해서는 각자 다른 삶을 사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
어느 시대든 이런 의미의 자유가 허용디는 것과 비례해서 후대에 그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아무리 악명 높은 폭정이라 하더라도 각자의 개별성이 발휘될 여지가 남아 있는 한 아직 최악의 상태는 아니라고 볼수 있다. 이에 반해 개별성을 짓밟는 체제는 그 이름이 무엇이든, 그리고 그것이 신의 뜻을 따른다거나 인간이 만든 율법을 집행한다거나 하는 등 어떤 명분을 내세우든, 최악의 독재체제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깢 개별성이 발전과 같은 것이고, 오직 개별성을 잘 키워야만 인간이 높은 수준의 발전에 이르게 되거나 또는 이를 수 있다고 강조했으니, 이제 이쯤에서 내가 주장하는 바를 정리할까 한다.
우리 삶에서 각자를 인간이 이를 수 있는 최선의 상태에 최대한 가깝게 끌어올리는 것 이상으로 더 중요하거나 더 좋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반대로 이를 가로막는 것 이상 더 나쁜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이런 주장도 이 문제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더 깊이 깨달을 필요가 있는 사람을 설득시키지는 못한다. 그래서 자유를열망하지 않고 자유의 향기에 자신을 맡기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발전된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 유익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자유를 향유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음으로써 자신들도 지적측면에서 무언가 이득을 얻게 되리라는 사실을 더욱 자세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첫째, 나는 그들이 이런 사람들에게 무언가 배울 것이 있으리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어느 누구도 독창성이 우리 삶에서 대한히 중요한 요소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우리 삶에서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고 한때 진리였던 것이 이제 더 이상 진리가 되지못하는 때를 간파하는 사람마 소중한 것은 아니다.
남이 하지 않는 관례를 처음 만들고, 더욱 발전된 행동과 더 수준 높은 취향과 감각을 선보이는 사람도 필요하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모든 측면에서 이미 완벽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도 이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많은 사람 가운데서도 극히 일부만이 새로운 실험을 주도할 뿐이다.
사람들이 그 새 길을 따라간다면 사회전체가 한 단계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이들 소수야말로 세상의 소금과 같은 존재이다.
이들이 없으면 우리 삶은 정체(停滯)를 면치 못한 것이다.
이들은 전에 없던 새로운 좋은 것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좋은 것을 잘 유지.발전시키기도 한다.
새로 해야할 것이 없다면 인간의 지성은 더 이상 필요가 없을까? 옛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잊어버리고, 그런 일을 인간이 아니라 짐승처럼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까? 최고의 이론과 관례라는 것들도 너무 쉽게 도식적인 것으로 전락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끊임없이 샘솟는 독창성으로 기존의 이론과 관례가 그렇고 그런 그습으로 굳어머리는 것을 방지해주는 사람들이 없다면, 그런 죽어버린 전통은 새롭게 부각되는 것들이 가하는 최소한의 충격에도 버티지 못한다. 비잔틴 제국이 보여주듯이 문명자체가 죽어버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
천재는 언제나 소수일 수밖에 없다. 이는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언제나 변함없는 진리이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살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청재는 오직 자유의 공기 속에서만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다.
천재는 오직 자유의 공기 속에서만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다. 천재는 그 속성상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개인적이기 때문에, 강제하지 않으면 사회가 각 개인이 자기 기분대로 살아가지 못하게 쳐놓은 작은 그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어려워한다.(.....)
이론상으로는 아무도 천재의 중요성과 그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 문제에 무관심하다.
제4장
사회가 개인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한계
설득과 확신을 통해서만 자기중심적 덕목을 배양해야 한다.
사람은 서로 도와가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며, 나쁜 것을 피하고 좋은 것을 취하도록 서로 격려한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높은 능력과 감정과 목표가 현명하게, 그리고 품위를 유한 채 고상한 목표와 계획을 점점 더 지향하도록 서로 자극을 주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나이가 충분히 든 사람이 스스로 자기 인생을 위해 선택한 일을 하지 말라고 말할 자격은 없다.
누구보다도 본인이 자기를 가장 아끼는 법이다.
아주 긴말한 인간적 관계가 아니라면, 타인에게 가지는 관심이라는 것은 당사자가 자기에게 가지는 관심에 비하면 보잘것 없다. 그리고 사회가 그 사람 개인에게 가지는 관심이라는 것은(그 사람이 타인에게 하는 행동에 대한 관심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지엽적이고, 한마디로 말하면 간접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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