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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진보 -황견 엮음
초가집이
가을바람에 부서지다
-두보
팔월 가을 하늘 높은데
바람 성난 듯 울부짖더니,
우리 집 지붕 위의
세 겹 이엉 말아 올려 버렸네.
띠집 지붕 날려 가 너머
강가 언덕에 흩어져.
높은 것은 큰 나무 숲의
가지 끝에 걸리고
낮은 것은 바람에 휘돌며
못가 웅덩이에 빠지네.
남촌의 뭇아이들
내 늙고 힘없음 업신여겨.
뻔뻔스럽게도 내가 보는 데서
도둑질해 대네.
보란 듯이 띠 이엉 안고
대나무 숲 속으로 사라져 버려도,
입술 타고 입 안 말라
고함조차 지를 수 없고,
돌아와 지팡이에 기대니
한숨 절로 나네.
얼마 안 되어 바람 멎어
하늘의 구름 검게 변하더니,
가을 하늘 컴컴하게
저녁에 어둬워지네
베로 만든 이불 오래되어
차갑기 쇠와 같은데,
장난꾸러기 녀석들 잠버릇 고약여
걷어차 속은 다 찢어졌네.
잠자리마다 집이 새어
마른 곳이라곤 없는데,
빗발은 삼대같이
멎을 줄 모르네.
난리를 겪은 뒤로는
잠마저 적어졌으니,
기나긴 밤을 비에 젖은 채
어이 지새운단 말인가?
어이하면, 천 칸 만 칸짜리
너를 집을 구하여,
크게 천하의 궁핍한 선비들 덮어
함께 웃는 낯 지을까.
비바람에도 산처럼
끄떡없을 테니.
아아,
어느 때나 눈 앞에
우뚝한 이 집 나타나리?
내 움막 유독 부서지고
얼어 죽어도 그만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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