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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아방강역고]에 대하여) -정약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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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둘째형님께서는 깊이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上仲氏


 

[아방강역고]에 대하여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10권이야말로 10년 동안 비축했던 것을 하루아침에 쏟아놓은 것입니다.

 

삼한(三韓)을 중국 사책(史冊)에서는 모두 변진(弁辰)이라 하였고 변한(弁韓)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선비들은 혹 평안도를 변한이라고도 하고 혹 경기를 그곳에 해당시키기도 하였으며 혹 전라도가 해당된다고도 하였습니다.

 

근래 처음으로 조사해보았더니 변진이란 가야(迦耶)였습니다. 김해(金海)의 수로왕(首露王)은 변진의 총왕(總王)이었으며, 포상팔국(浦上八國:함안 咸安 고성 固城 칠원 漆原 등임-지은이) 및 함창(咸昌) 고령(高靈) 성주(星州)등은 변진의 12국(國)이었습니다.

 

변진의 자취가 이처럼 분명한데도 우리나라 선비들은 지금까지 어둡기만 합니다. 우연히 버려진 종이를 검사했더니, 오직 한구암(漢久庵)*이 "변진은 아마 수로왕이 일어났던 곳일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현도(玄莵)는 셋이 있습니다. 한무제(韓武帝) 때의 함흥(咸興)을 현도로 삼았고, 소제(昭帝)때는 지금의 홍경 지역으로 현도를 옮겼고, 그뒤 또 지금의 요동 지역으로 옮겼습니다.

 

이들 사적(事蹟)이 모두 등나무나 칡덩굴처럼 이리저리 얽히고설겼으니 이보다 앞선 우리나라의 역사란 어떠했는지 알 만합니다.

 

마땅히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三國史記)]를 가져다가 1통을 개작하여 태사공(太史公)이 [사기(史記)]를 지어 그랬던 것처럼 이름있는 산에 감추어두어야 하는 것인데, 나 자신 살날이 오래 남지 않았으니 이 점이 슬플 뿐입니다.

 

만약 십수년 전에만 이러한 식견이 있었더라도, 한차례 우리 선대왕(先大王:정조)께 아뢰어 대대적으로 서국(書局)을 열고 사(史)와 지(志)를 편찬함으로써 천고의 비루함을 깨끗이 씻어내고 천세의 모범이 될 책으로 기이 남기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정지흡(丁志翕)의 시에 "꽃 피자 바람 불고, 달 뜨자 구름 끼네"라고 하였습니다.

 

천하의 일이 서로 어긋나 들어맞지 않는 것이 모두 이런 식이니, 아, 또 어지하면 좋습니까?

 

이 열권의 책만은 우리나라에서 결코 업신여길 수 없는 것인데 그 시비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조차 전혀 찾을 길이 없으니 끝내는 이대로 티끌로 돌아가고 말 것만 같습니다.

 

분명히 이럴 줄을 알면서도 오히려 다시 고달프게 애를 쓰며 그만두지 못하고 있으니 또한 미혹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점차로 하던 일을 거둬들여 정리하고 이제는 마음공부에 힘쓰고 싶습니다. 더구나 병풍(屛風)은 이미 뿌리가 깊어졌고 입가에는 항상 침이 흐르고 왼쪽 다리는 늘 마비증세가 옵니다.

 

머리 위에는 언제나 두미협(斗尾峽)* 얼음 위에서 잉어 낚는 늙은이의 솜털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또 혀가 굳어 말이 어긋나 스스로 살날이 길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한결같이 바깥일에만 마음이 치달리니, 이는 주자(朱子)께서도 만년에 뉘우쳤던 바였습니다.

 

어째 두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고요히 앉아 마음을 맑게 하고자 하다보면 세간의 잡념이 천갈래 만갈래로 어지럽게 일어나 무엇하나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으니, 마음공부로는 저술보다 나은게 없다는 것을 다시 느낍니다. 이 때문에 문득 그만두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구암: 구암은 한백겸(韓百謙, 1552~1615)의 호로, 자는 명길(鳴吉), 본관은 청주(淸州),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를 저술하여 실학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두미협:한강 상류의 강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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