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둘째형님께서는 깊이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上仲氏
[성호사설]과 [성호질서]
성웅(聖雄: 성호 星湖 이익 李瀷의 다른 호칭)의 저작은 거의 1백권에 가깝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보면 우리들이 천지의 웅대함과 일월의 광명함을 알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이 선생님의 힘이었습니다.
그분의 저작을 산정(刪定)하여 책으로 만들 책임이 저에게 있는데도 이 몸은 이미 돌아갈 기약이 없고 후량(後梁)은 서로 연락하려고도 하지 않으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지금 생각으로는 [사설(僿說] *을 임의로 산정하여 발췌한다면 아마 [무성(茂盛)]*과 서로 같게 될 것인데, 한줄에 20자짜리 10행으로 7,8책을 넘지 않는 선에서 끝마칠 것 같습니다.
[질서(疾書]* 또한 반드시 그런 정도일 것입니다. 지난번 [주역]을 주석할 때 [주역질서(周易疾書]를 가져다 보았더니 역시 채록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 많았는데, 만약 가려 뽑아 기록한다면 3,4장(張) 정도는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경서(經書)에 대해서도 반드시 이보다 열배 분량은 나올 것입니다. 다만 예식(禮式)에 대한 부분은 지나치게 간소한 결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요즘의 풍속에도 위배되고 고례(古禮)에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들이 수두룩합니다.
이 책이 만약 널리 유포되어 식자(識字)의 눈에 들어간다면 대단히 미안할 텐데 이를 장차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연전에 중상(仲常)*에게 편지를 보내 그 가정(家庭)의 저작들을 수습할 방도에 대해 언급하였으나 답서를 받지 못했고, 또 창명(滄溟)*에게도 편지를 했지만 답서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용렬함이 이런 정도니 다시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중상은 갑자기 죽었고(금년 봄에 풍병으로 갑자기 죽었음-지은이) 창명은 아직 정계(停啓)되지 못했으니, 그들이 어떻게 가마솥 그을음 주제에 세발솥 그을음을 탓할 수 있겠습니까? 대체로 가련한 인간들입니다.
*사설: [성호사설(星湖僿說)]을 말하며, 성호가 평생 수시로 지은 글을 모아 편집한 책으로 30권 30책이다.
*무성:신빙성이 없다는 뜻으로 [서경]의 편명. [맹자]에 "나는 [무성]편에서 두세가지 정도만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질서: [성호질서(星湖疾書)]. 성호 이익의 경전연구에 관한 저술.
*중상: 권철신(權哲身) 후손 중 한 사람의 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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