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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1부,둘째형님을 회상하며) -정약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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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1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둘째형님을 회상하며

 

​​​ 寄兩兒

1816년 6월 17일


 

6월 초엿샛날은 바로 어지신 둘째형님(정약전)께서 세상을 떠나신 날이다.

 

슬프도다! 어지신 이께서 이처럼 곤궁하게 세상을 떠나시다니 원통한 그분의 죽음 앞에 나무나 돌멩이도 눈물 흘릴 일인데 무슨 일을 더 하랴!

 

왜롭기 짝이 없는 이 세상에서 다만 손암 선생만이 나의 지기(知己)였는데 이제는 그분마저 잃고 말았구나.

 

지금부터는 학문을 연구하여 비록 얻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누구에게 상의를 해보겠느냐.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는 지기가 없다면 이미 죽은 목숨보다 못한 것이다.

 

네 어미가 나를 제대로 알아주랴, 자식이 이 아비를 제대로 알아주랴, 형제나 집안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랴, 나를 알아주는 분이 죽었으니 또한 슬프지 않겠는가?

 

경서에 관한 240책의 내 저서를 새로 장정하여 책상 위에 보관해놓았는데 이제 그것을 불사르지 않을 수 없겠구나.

 

율정(栗亭)*에서 헤어진 것이 이렇게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구나. 더욱더 슬프디 슬픈 일은 그같은 큰 그릇, 큰 덕망, 심오한 학문과 정밀한 지식을 두루 갖춘 어른을 너희들이 알아모시지 않았고 너무 이상만 높은 분, 낡은 사상가로만 여겨 한가닥 흠모의 뜻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아들이나 조카들이 이 모양인데 남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이것이 가장 슬픈 일이지, 다른 것은 애통한 바가 없다.

 

 

요즘 세상에 고을 사또가 서울로 영전했다가 다시 그 고울로 돌아오면 고을 백성들이 길을 막으며 거부한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귀양살이하는 사람이 다른 섬으로 옮겨가려는데 본디 있던 곳의 사람들이 길을 막으며 더 있어달라고 했다는 말은 우리 형님 말고는 들은 적이 없다.

 

집안에 형님같이 큰 덕망을 갖춘 분이 계셨으나 자식이나 조카들이 알아주질 않았으니 참으로 원통한 일이로다.

 

돌아가신 선왕(정조)께서 신하들의 인품을 일일이 파악하시고 우리 형제에 대해 말씀하기를 "아무개는 형이 아우보다 낫다"라고 하셨다. 슬프도다. 우리 임금님만은 형님을 알아주셨느나라.

 

 

 

*율정: 전남 나주읍 북쪽에 있는 주막거리. 다산은 강진으로, 형 약전은 흑산도로 귀양살이 가는 것에 이곳에서 생시 마지막으로 이별했다. 율정은 현재 동신대학에서 삼도면으로 가는 도중의 '밤남정'이라는 마을이다. 행정구역으로는 대호동 지역.

 

해설

1801년 다산 형제가 함께 귀양길을 떠나 둘재형인 약전은 흑산도로, 다산은 강진으로 가다가 률정점(栗亭店)에서 이별했다.

 

약전은 흑산도에 들어가 살면서 섬사람들의 인심을 얻고 [현산어보]를 지었다. 이 편지는 1816년 흑산도 우이보(牛耳堡)에서 귀양 살던 약전 형님의 부음(訃音)을 듣고 애통함을 자기 집에 전한 편지다.

 

정약전과 다신은 신유교옥이 일어나자 처음에는 완도군 신지도와 경상도 장기에서 귀양 살다가 다시 서울에 잡혀 올라와서 조사를 받고 약전은 흑산도로 다산은 강진으로 이배(移配)되었다.

 

이 글을 좀더 음미하려면 다산이 읊은 [율정별(栗亭別)]이라는 시와 [선중씨묘지명(先中氏墓誌銘]을 참고하면 좋다. 이들 시와 산문은 각각 졸역[애정양]과 [다산산문선(茶山散文選](창비)에 번역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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