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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목민심서[6부]호전(戶典) 6조-3. 환곡의 장부[穀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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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부
호전(戶典) 6조

3. 환곡의 장부[穀簿]

 

 

환곡(還穀)은 사창(社倉)이 변한 것으로,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줬다가 추수기에 거둬들이는 조적(糶糴)도 아니면서 백성의 뼈를 깎는 병폐가 디었으니 백성이 죽고 나라가 망하는 일이 바로 눈앞에 닥쳤다.



[주례(周禮)]에 대체로 곡식을 봄에 나눠주고 가을에 거두었다고 하였으니, 일찍이 환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나라와 위나라의 제도에서는 창고에 비축하는 것이 대부분 조적에 속하는 것으로, 혹 풍년에 곡식을 구입하여 저장했다가 흉년에 판매함으로써 곡식 가격을 안정시키는 상평(常平)의 법을 쓰고, 혹 조세 대신 특산물을 내게 하여 다른 지방에서 파는 균수(均輸)의 법을 섰으니 모두 환곡의 자취는 없다.

수나라의 장손평(長孫平)이 홍수나 가뭄에 대비하여 곡식을 저장하는 의창(義倉)의 법을 만들었고 주자가 그것을 다듬어서 시행하며 이름을 사창(社倉)이라고 하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환곡을 사창의 유법(遺法)이라고 하지만, 사창은 곡식을 저장하고 나눠주는 일을 모두 마을 사람들이 직접 하고 관리는 관여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백성을 위하는 참된 마음이며 오늘의 환곡의 법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

오늘날 환곡의 폐단을 논하는 사대부들은 기껏해야 "가을에 정미한 쌀을 말에 넘치게 받고, 봄에는 거친 쌀을 나눠주되 말에 부족하게 하니 백성에게는 몹시 억울한 일이다"라고 할 뿐이다.

아전이 포탈한 것을 말할 때는 아전이 밤에 창고 문을 열고 곡식섬을 짊어지고 자기 집으로 져나른다는 정도로 여길 따름이다.

그러므로 수령이 몰래 창고를 엿보는 일이 많다.
아, 한심한 일이 아니냐.

8도 중에서 삼남의 아전이 더욱 교활하고 역대 이래로 오늘날이 가장 심하니 이같은 흉악함을 누가 알겠는가.

한톨의 곡식도 받은 적이 없는데도 해마다 한 집에서 10섬을 거저 바친다.
한심하구나, 백성이 비록 잠시나마 목숨을 부지하고자 한들 그나마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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