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워킹작가/마음속 글귀-2018년

끄적끄적-곡식의 혼령, 허수아비

728x90

 

 허수아비

밀짚모자에 누더기 티,
헐렁헐렁한 바지에
검은 장화
멋쟁이 허수아비

이글거리는 태양에 맞서
미소 짓다
비가 퍼붓기 시작하면
온몸으로 몸을 적신다.

갈대처럼 이리저리 춤추고 싶지만
주인의 용의주도한 계산 아래
꼿꼿하게만 서 있다.

밀짚모자 사이로
다듬지 않은 머리카락은
삐죽이 튀어나와도
뻣뻣한 손을 들어 올릴 수 없다.

매일 똑같은 패션이지만
투정 부리지 않고 지겨워 않는다.

너른 들판에서 허수아비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보인다.

희한하다.
모습 자체로
보는 이에게 힘을 준다.

"버텨라 "
"별것 아니다."

의식 없는 몸뚱이를 보며
힘을 얻는다.

허수아비는 상냥하게 웃어온다.
빛나는 둥근 얼굴에 우스광스런 미소.


어쩌면 허수아비는 방금 벼를 주렁주렁 달고 있던
곡식의 혼령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by 독(讀)한 여자 장인옥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