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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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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치 이 세상을 맨 처음 보기라도 한 것처럼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세상은 아름다웠으며, 이 세상은 오색찬란하였으며, 이 세상은 기기묘묘하고 수수께끼 같았다.

여기에는 파랑이 있었고, 여기에는 노랑이 있었고, 여기에는 초록이 있었으며, 하늘이 흘러가고 있었고, 강이 흐르고 있었으며, 숲이 우뚝 솟아 있었고, 산이 우뚝 솟아 있었다.

삼라만상이 아름다웠으며, 삼라만상이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었고 요술 같았다.

그 한가운데에서 깨달음을 얻은 각자(覺者) 싯다르타는 자기 자신에게로 나아가는 도중에 있었다.

이 모든 것, 이 모든 노랑과 파랑, 강과 숲이 맨 처음으로 눈을 통하여 싯다르타의 내면 속에 파고들었으니, 이 모든 것은 이제 더 이상 마야의 요술도 아니었고, 이제 더 이상 마야의 배일도 아니었으며, 이제 더 이상 무의미하고 우연한 현상계(現象界)의 다양성도 아니었다.

다양성을 무시하고 통일성을 추구하며 깊이 사색하는 바라문에게는 무의미하고 우연한 현상계라는 것은 경멸스러웠다.

파랑은 파랑이고 강은 강이었으며, 비록 싯다르타의 내면에 있는 파랑과 강물 속에, 하나이자 신적인 것이 숨어 있다 할지라도, 여기에 노랑, 여기에 파랑, 저기에 하늘, 저기에 숲, 그리고 여기에 싯다르타가 있다는 그 사실이야말로 바로 신적인 것의 본성이요 의의였던 것이다.

의의와 본질은 사물들의 배후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들 속에, 삼라만상 속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얼마나 무감각하고 우둔하였던가!? 급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그는 생각하였다. <어떤 사람이 어떤 글을 읽고 그 뜻을 알고자 할 때, 그 사람은 기호들과 철자들을 무시하지 않으며 그것들을 착각이나 우연, 또는 무가치한 껍데기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그 사람은 철자 하나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 글을 읽으며, 그 글을 연구하고 그 글을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이라는 책과 나 자신의 본질이라는 책을 읽고자 하였던 나는 어떠하였는가.

나는 내가 미리 추측한 뜻에 짜맞우는 일을 하기 위하여, 기호들과 철자들을 무사해 버렸으며, 이 현상계를 착각이라 일컬었으며, 나의 눈과 혀를 우연하고 무가치한 현상이라고 일컬었다.

아니, 이런 일은 지나가 버렸으며 나는 미몽에서 깨어났다. 난 정말로 미몽에서 깨어났으며, 오늘에야 비로소 다시 태어난 것이다>

 

......

 


자기를 빙 둘러싼 주위의 세계가 녹아 없어져 자신으로부터 떠나가 버리고,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홀로 외롭게 서 있던 이 순간으로부터, 냉기와 절망의 이 순간으로부터 벗어나, 예전보다 자아를 더욱 단단하게 응집시킨채, 싯다르타는 불쑥 일어났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깨달음의 마지막 전율, 탄생의 마지막 경련이었다>고 느꼈다. 이윽고 그는 다시 발걸음을 떼더니, 신속하고 성급하게 걷기 시작하였다. 이제 더 이상 집으로 가는 것도, 이제 더이상 아버지에게 가는 것도, 이제 더 이상 되돌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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