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운 말 한마디... -유안진
나는 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그 이유는 많은 말을 하고 난 뒤일수록
더욱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다.
많은 말이 얼마나 사람을 탈진하게 하고
얼마나 외롭게 하고 텅 비게 하는가?
나는 침묵하는 연습으로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내 안에 설익은 생각을 담아두고
설익은 느낌도 붙잡아 두면서
때를 기다려 무르익는 연습을 하고 싶다.
다 익은 생각이나 느낌 일지라도
더욱 지긋이 채워 두면서
향기로운 포도주로
발효되기를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침묵하는 연습,
비록 내 안에 슬픔이건 기쁨이건..
더러는 억울하게 오해받는 때에라도
해명도 변명조차도 하지 않고
무시해버리며 묵묵하고 싶어진다.
그럴 용기도 배짱도 지니고 살고 싶다.

나를 위로하는 날 -이해인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조금은 계면쩍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거울 앞에 설 때가 있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
활짝 웃어주는 마음
남에게 주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네

남편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 독서노트,독서HAZA365> > 독서노트-2021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민의사 이시형 박사의) 위로 (0) | 2021.12.07 |
---|---|
정신분석에로의 초대(프로이트의 생애) -이무석 (0) | 2021.12.06 |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을 위한 뇌 과학- 가토 도시노리 지음 (0) | 2021.11.05 |
일하지 않는 개미-하세가와 에이스케 지음 (0) | 2021.10.17 |
동물의 건축술-KBS(동물의 건축술) 제작팀 지음 (0) | 2021.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