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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독서HAZA365>/책소개,독서HAZA-2021년

시(詩)가 있는 하루-침묵, 위로 그리고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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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말 한마디... -유안진

나는 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그 이유는 많은 말을 하고 난 뒤일수록

더욱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다.

많은 말이 얼마나 사람을 탈진하게 하고

얼마나 외롭게 하고 텅 비게 하는가?

나는 침묵하는 연습으로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내 안에 설익은 생각을 담아두고

설익은 느낌도 붙잡아 두면서

때를 기다려 무르익는 연습을 하고 싶다.

다 익은 생각이나 느낌 일지라도

더욱 지긋이 채워 두면서

향기로운 포도주로

발효되기를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침묵하는 연습,

비록 내 안에 슬픔이건 기쁨이건..

더러는 억울하게 오해받는 때에라도

해명도 변명조차도 하지 않고

무시해버리며 묵묵하고 싶어진다.

그럴 용기도 배짱도 지니고 살고 싶다.

 

 

나를 위로하는 날 -이해인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조금은 계면쩍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거울 앞에 설 때가 있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

활짝 웃어주는 마음

남에게 주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네

 

 

남편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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