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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4부, 선비가 농업을 경영하는 방법) -정약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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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4​부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말

윤종문*에게 당부한다

 

爲尹輪卿贈言

 


 

선비가 농업을 경영하는 방법

 

태사공(太史公)은 "늘 가난하고 천하면서 인의(仁義)를 말하기를 좋아한다면 역시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하였다.

 

공장의 문하에서는 재리(財利)에 대한 이야기를 부끄럽게 여겼으나 자공(子貢)*은 재산을 늘렸다.

 

지금 소보(巢父)나 허유(許由)*의 절개도 없으면서 누추한 오막살이에 몸을 감추고 명아주나 비름으로 배를 채우며, 부모와 처자식을 얼고 헐벗고 굶주리게 하고 벗이 찾아와도 술 한잔 권할 수 없으며,

 

명절 무렵에도 처마 끝에 걸려 있어야 할 고기는 보이지 않고 유독 공사(公私)의 빚 독촉하는 사람들만 대문을 두드리며 꾸짖고 있으니, 이는 천하에 가장 졸렬한 짓으로 지혜로운 선비는 하지 않을 일이다.

 

반면 종아리를 드러내고 흙탕물 속에 들어가 8개의 발이 있는 쎄레를 잡고 소를 꾸짖으며 멍에를 밀고 거머리가 온몸을 빨아 상하지 않는 곳이 없게 되면, 이것이야말로 남자의 곤경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열손가락이 파잎처럼 부드러운 사람이야 아무리 자신의 힘으로 하려고 한들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돈궤짝을 들고 포구에 나가 먼 섬에서 오는 배를 기다려 무지한 어민들과 입이 닳도록 싸우며 몇푼의 이익을 남기려 하고 남의 것을 깎아 자기의 이익을 더하려고 근거없는 소리로 남을 속이고 눈을 부라리며 억울함이 쌓여 성난 것처럼 행동하는 것 또한 세상에서 지극히 졸렬한 짓이다.

 

아니면 이잣돈을 놓아 사방 이웃들의 고혈을 빠는 짓을 하면서 어쩌다가 기한을 어기면 약하고 불상한 백성들을 잡아다가 나무에 매달아놓고는 수염도 뽑고 종아리를 두들기면, 온고을에서 범과 이리라고 호칭하며 가까운 일가들도 원수처럼 미워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돈을 산처럼 얻는다 해도, 한 세대도 보존할 수 없게 된다.

 

반드시 그 자손들 중에 미치광이의 광증이 있거나 술을 좋아하거나 여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나와 그 재산을 뒤엎기 때문이다. 하늘의 법망(法網)은 넓고 넓어서 성긴 듯하여도 빠뜨리지 않으니 매우 두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생계수단으로는 원포와 목축만한 것이 없다. 그리고 연목이나 못을 파서 물고기도 길러야 한다.

 

문전의 가장 비옥한 밭을 10여두둑으로 구획하여 사방을 반듯하고 똑바르게 만들고 사계절 내내 채소를 심어 집에서 먹을 분량을 공급해야 한다.

 

집 뒤꼍의 공한지에는 진귀하고 맛좋은 과일나무를 많이 심고, 그 가운데에는 조그마한 정자를 세워 맑은 운치가 풍기도록 하고 겸하여 도둑을 지키는 데 이용하여라.

 

그리고 먹고 남은 여분은 비온 뒤마다 바랜 잎은 따내고 먼저 익은 것을 가려서 저자에 내다 팔고, 혹 월등하게 크거나 탐스러운 것이 있으면 각별히 편지를 써서 가까운 벗이나 이웃 노인에게 보내어 진귀하고 색다른 것을 맛보게 한다면 이것도 후한 뜻이리라.

 

또 흙을 잘 손질하여 여러가지 약초를 심는데, 제니(薺苨) 자초(紫草) 산서여(山薯蕷) 같은 것을 토질에 따라 구별하여 심고, 인삼만은 유독 쓰이는 방도가 많으니 법에 따라 재배하면 여러 이랑에 많이 심더라도 탈잡히지 않는다.

보리를 심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수익성이 낮다. 나라의 처지에서는 권장해야 하지만 필부(匹夫)가 편히 사는 방도로는 할 만한 것이 못된다.

 

그러므로[월령(月令)]*에서 보리심기를 권장한 것은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동백은 기름을 짜내 부인들의 머리를 꾸미는 데 쓰며, 치자는 약에도 넣고 염료로도 쓰이니 아무리 많아도 못 팔 걱정은 없다.

 

만약 저자에 가까이 사는 사람이라면 복숭아 오얏 매실 살구 능금 등은 모두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니 보리 심을 밭에다가 이런 것들을 심는다면 그 이익이 열배는 될 것이다. 그러니 자세히 헤아려서 할 일이다.

아내가 게으른 것은 가산을 탕진시킬 근본이다. 사경(四更)도 못되어 촛불을 끄고 아침해가 창에 비치도록 이불을 개지 않는 것은 모두 게으른 사람이니, 경계를 주어도 개전(改悛)의 정이 없다면 버려도 괜찮다.

 

뽕나무 4,5백주를 심어 2년마다 곁가지를 쳐주고 얽힌 가지를 풀어주며 잘 자라지 못하는 가지를 깎아주면 몇해 안 가서 키가 담장을 넘게 된다.

 

그 다음 별도로 잠실 4,5칸을 지어서 칸마다 사방으로 통하는 길을 내고 잠상을 7층으로 만들어 누에를 기르되, 항상 우분(牛糞)으로 불을 피워 병을 퇴치하고 서북쪽의 문은 완전히 봉하고 동남쪽만 볕이 들게 해야 한다.

 

목화는 많이 갈 필요 없이 오직 하루갈이 정도에서 그치고 별도로 삼과 모시를 심어, 아내에게 봄과 여름에는 명주를 짜고 가을과 경루에는 베를 짜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부지런히 하면 명주와 베가 궤에 가득 차게 될 것이니, 그리되면 일하는 재미를 갖게 되어 게으른 사람도 저절로 부지런해질 것이다.

 

 

*윤종억:(尹鍾億)자는 윤경(輪卿), 본관은 해남(海南)으로 다산이 귀양 살던 다산초당의 주인인 귤림처사(橘林處士) 윤단(尹漙)의 손자. 다신계(茶信契) 18제자 중 한 사람.

*자공:공자의 제자로 달변가이자 부자였다.

 

*소보.허유: 모두 중국 고대의 고사(高士)로 소보는 요임금이 천하를 맡기려 하였으나 이를 받지 않았으며, 허유는 요임금이 왕위를 불려주려 하였으나 받지 않고 도리어 자신의 귀가 더러워졌다 하여 귀를 찟고 숨었다고 한다.

 

*월령: [예기(禮記)]의 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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