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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4부, 사람과 짐승의 차이) -정약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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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4​부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말

 

윤종문*에게 당부한다

爲尹惠冠贈言

 


 

사람과 짐승의 차이

 

가난한 선비가 생업을 꾸려나갈 방도를 생각하는 것은 사세가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작을 너무 힘들고 장사는 명예가 손상된, 손수 과수원이나 채소밭을 바꾸고 희귀한 과일과 맛좋은 채소를 심는다면 왕융(王戎)*처럼 오얏씨에 구멍을 뚫고 운경(雲卿)처럼 참외를 팔더라도 해될 것이 없을 것이다.

 

좋은 꽃과 기이한 대나무로 군색함을 가리는 것도 지혜로운 생각이다.

 

봄에 비가 갓 개일 적마다 조그만 가래와 큰 보습을 들고 메마른 자갈밭을 파고 거친 잡초를 매거라.

 

그렇게 도랑과 두둑을 정돈하여 종류별로 종자를 뿌리고 모종도 하고 돌아와 짧은 시 수십편을 지어 석호(石湖)*의 유운(遺韻)을 모방하기도하고, 또 형상(刑桑) 등의 뽕나무 수천주를 심고 별도로 3칸 잠실(蠶室)을 지어 7층 잠상(蠶床)을 설치해놓고 아내에게 부지런히 누에를 기르도록 하여라.

 

이렇게 몇해만 하면 식량, 소금, 육장(肉醬) 등의 살림살이로 결코 남편을 번거롭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육경(六經)이나 여러 성현의 글도 모두 읽어야 하나 특히[논어(論語)]만은 종신토록 읽어야 한다.

 

삼례(三禮)에 대해서는 잡복(雜服)의 제도만 알면 이름난 집안의 훌륭한 후손이 될 수 있으며, [주역(周易)]을 읽어 추이(推移) 왕래(往來)의 자취를 살피고 소장(消長) 존망(存亡)이 이치를 증험한다면 천지를 이해하고 우주를 망라힐 수 있을 것이다.

 

또 여력이 있으면 산경(山經) 수지(水志)도 읽어 문견(聞見)을 넓히고, 혹 아내가 손수 빚은 찹쌀술을 권하거든 맛있게 마시고 기분좋게 취하여[이소경(離騷經)] [구가(九歌)]*의 글을 읽으며 울적한 회포를 푼다면 명사(名士)라 칭할 만하다.

번쩍번쩍 빛나는 좋은 의복을 입고 겨울에는 갖옷에 여름에는 발 고운 갈포옷으로 종신토록 넉넉하게 지내면 어떻겠는가? 그것은 비취나 공작, 여우나 너구리, 담비나 오소리 등속도 모두 할 수 있는 것이다.

 

향을 풍기는 진수성찬을 조석마다 먹으며 풍부한 쇠고기 양고기로 종신토록 궁하지 않게 지내면 어떻겠는가? 그것은 호랑이나 표범, 여우나 늑대, 매나 독수리 등속도 모두 할 수 있는 것이다.

 

연지분을 바르고 푸른 물감으로 눈썹을 그린 미인과 함께 고대광실 굽이굽이 돌아들어가는 방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세상을 마친다면 어떻겠는가?

 

아무리 모장(毛嬙)과 여희(麗姬) 같은 미인이라도 물고기는 그를 보면 물속으로 깊이 들어가버린다.* 돼지의 즐거움이라 해서 금곡(金谷)이나 소제(蘇堤)의 호화스러운 놀이*보다 못할 게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독서 한가지 일만은, 위로는 성현을 뒤따라가 짝할 수 있고 아래로는 수많은 백성들을 길이 깨우칠 수 있으며 어두운 면에서는 귀신의 정상(情狀)을 통달하고 밝은 면에서는 왕도(王道)와 패도(覇道)의 정책을 도울 수 있어 짐승과 벌레의 부류에서 초월하여 큰 우주도 지탱할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해야할 본분인 것이다.

맹자는 "대체(大體)를 기르는 사람은 대인(大人)이 되지만 소체(小體)를 기르는 사람은 소인(小人)이 되어 금수에 가까워진다"라고 하였다.

 

만약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는 데에만 뜻을 두고서 편안히 즐기다가 세상을 마치려 한다면 죽어서 시체가 식기도 전에 벌써 이름이 없어질 것이니, 이는 금수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같이 살기를 원할 텐가?

 

*윤종문(尹鐘文):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후손이자 공재(恭齊) 윤두서(尹斗緖)의 현손(玄孫). 다산이 다산초당에서 귀양살이할 때 18제자 중 한 사람이며, 다산의 외척이기도 하다. 자는 혜관(惠冠).

*왕융: 중국 진(晉)나라 때 자사(刺史) 혼(渾)의 아들로 욕심이 많고 인색했다. 집에 종자가 좋은 오얏나무가 있었는데 그것을 팔 때 남들이 그 종자를 얻을까 싶어 씨에 구멍을 내어 팔았다는 고사가 있다.

*운경: 중국 금나라 때 유종익(劉從益)의 자가 '운경'인데 고사는 미상.

 

*석호: 중국 송나라 때 시인 범성대(范成大)의 호. 저서로 [석호시집(石湖詩集]이 있다.

*이소경, 구가: 중국 춘추시대 초(楚)나라 충신 굴원(屈原)이 지은 [초사(楚辭)]의 편명이다.

 

*모장과~들어가버린다: 모장과 여희는 모두 춘추시대의 미인들이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에 "모장 여희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여기는 미인이지만, 고기가 그들을 보면 물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새가 그들을 보면 높이 날아가고 미록(糜鹿)이 그들을 보면 달아나버린다"하였다.

*금곡이나~놀이: 금곡은 진(晉)나라의 큰 부호였던 석숭(石崇)의 별장이 있던 곳이고, 소제는 송나라의 소식(蘇軾)이 항주(杭州) 서호(西湖)에 쌓은 둑으로 경치 좋은 서호에서의 뱃놀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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