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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노트,독서HAZA365>/독서노트-2016년

책속글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상) 비밀노트 中 (by 주부독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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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걸연습
 
우리는 더럽고 다 해어진 옷을 입고, 맨발에 얼굴과 손은 될 수 있는 대로 더럽게 하고서 거리로 나갔다. 그리고 멈춰서서 기다렸다.
외국군 장교가 우리 앞을 지나갈 적마다 우리는 오른손을 들어 인사를 하면서 왼손을 앞으로 내민다. 대부분은 우리를 거뜰떠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가버린다.
 
 
마침내 한 장교가 멈추었다. 그는 우리가 못 알아듣는 말로 뭐라고 지껄였다. 우리에게 질문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대답하지 않고, 한 팔은 위로 쳐들고 다른 한 팔은 앞으로 내민 채 꼼짝 않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주머니를 뒤져서 동전 한 닢과 초콜릿 조각을 우리의 더러운 손 위에 놓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버렸다.
우리는 계속 기다렸다.
 
 
한 부인이 지나간다. 우리는 손을 내민다. 그녀가 말한다.
-가엾은 것들, 난 너희들한테 줄 게 아무 것도 없구나.
 
 
그녀는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우리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다른 부인이 지나가며 사과 두 개를 주었고, 또 다른 부인은 과자를 주었다.
 
 
어떤 부인이 지나갔다. 우리가 손을 내밀자, 그녀는 멈춰서서 말했다.
-구걸하는 게 부끄럽지 않니? 우리집으로 가자, 너희들한테 시킬 일거리가 있어. 나무를 베고, 베란다 청소를 하고, 너희들은 그 정도 일은 충분히 하겠구나. 일을 잘 하면, 내가 수프와 빵을 주마.
 
 
우리는 대답했다.
-우리는 부인을 위해 일하고 싶지 않아요. 부인, 우리는 부인의 수프와 빵을 먹고 싶지 않아요.
배고프지 않거든요.
 
 
그녀가 물었다.
-그런데 왜 구걸을 하지?
-구걸하는 기분이 어떤지 그리고 사람들 반응은 어떤지 관찰하기 위해서에요.
 
 
그녀는 소리지르며 가버렸다.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사과랑 과자, 초콜릿, 동전 등을 길가 풀숲에 던져버렸다.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것은 버릴 도리가 없었다.
 
 
 
출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상) 비밀노트   -아고타 크리스토프 저,  용경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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