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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독서HAZA365>/책속글귀-2017년

문장강화 中 -이태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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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唐)시대의 시인 가도(賈島)의 서경시(敍景詩)다.

이 시의 바깥짝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이 처음에는 '승고((僧敲)가 아니라 '승퇴월하문((僧堆月下門)'이었다.

'승퇴월하문'이 아무리 읊어봐도 마음에 들지 않아 '퇴(堆)로 할까?' 정하지 못한 채, 하루는 노새를 타고 거리로 나갔다. 노새 위에서도 '퇴로 할까? 고로 할까?' 에만 열중하다가 그만 경윤(京尹)행차가 오는 것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부딪쳐버렸다.

가도는 경윤 앞에 끌려 나가게 되었고, 또 '퇴고 할까? 고로할까?' 생각하느라 미쳐 비켜서지 못했다고 변명할 수밖에 없었다. 경윤은 이내 크게 껄껄 웃고 다시 잠깐 생각한 뒤에 "그건 퇴보다 고가 나으리다." 하였다. 경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마침 당대 문호 한퇴지(韓退之)였다.

서로 이름을 알게 된 둘은 그 자리에서 글벗이 되었고, 가도가 '승퇴하문'을 한퇴지의 말대로 '승월하문'으로 정해버린 것은 물론, 이로부터 후인들이 글 고치는 것을 '퇴고'라 일컫게 된 것이다.



 
 
퇴고의 중요성
한때 일필휘지(一筆揮之)니 문불가점(文不加點)이니 해서 단번에 써내버리는 것을 재주로 여겼으나 그것은 결코 경의를 표할 만한 재주도 아니고, 또 단번에 쓰는 것으로 경의를 표할 만한 문장이 나올 수도 없는 것이다.

소동파(蘇東波)가 [적벽부赤壁賦]를 지었을 때 친구가 와 며칠 만에 지었냐고 물으니까
"며칠은 무슨 며칠, 지금 단번에 지었네"하고 말했다.
그러나 동파가 밖으로 나간 뒤에 자리 밑이 불쑥해서 들쳐보니 여러 날을 두고 고치고 고치고 한 초고(草稿)가 한 무더기나 쌓였더란 말이 있다.

고칠수록 좋아지는 것은 글쓰기의 진리다.
이 진리를 버리거나 숨기는 것은 어리석다.

같은 중국 문호라도 구양수(歐陽脩) 같은 이는 퇴고를 공공연하게 자랑삼아 하였다.
초고는 반드시 벽 위에 붙여놓고 방에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읽어보고 고쳤다.

그의 명작 중 하나인 [취옹정기醉翁亭記]의 초안을 쓸 때 첫머리에서 저주(滁州)의 풍광을 묘사하는데, 첩첩이 둘린 산을 여러 가지로 묘사해보다가 괴고 고치어 나중엔 "저주 둘레는 온통 산이다"란 말로 만족했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거니와,

러시아의 문호 도스또예프스키끼가 똘스또이를 부러워한 것도 그의 재주가 아니라,
"그는 얼마나 느긋하게 원고를 쓰고 앉았는가!"
하고 원고료에 급하지 않고 얼마든지 퇴고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을 부러워한 것이다.

러시아어 문장을 가장 아름답게 썼다는 뚜르게네프는 어느 작품이든지 써서 곧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책상 속에 넣어두고 석 달에 한 번씩 꺼내보고 고쳤다고 하며, 고르끼도 체호프와 똘스또이에게서 문장이 거칠다는 비평을 받고부터는 얼마나 퇴고를 심하게 했던지 그의 친구가
"그렇게 자꾸 고치고 줄이다간 '어떤 사람이 태어났다, 사랑했다, 결혼했다, 죽었다' 네 마디밖에 안 남지 않겠나?" 했단 말도 있다.

아무튼 두 번 고친 글은 한 번 고친 글보다 낫고, 세 번 고친 글은 두 번 고친 글보다 나은 것이 진리다.
예나 지금이나 명문장가치고 퇴고에 애쓴 일화가 없는 사람이 없다.



 
퇴고의 기준
어떻게 고칠 것인가? 거기엔 먼저 기준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기준이 확고하지 못하기 때문에 허턱 아름답게, 허턱 굉장하게, 허턱 유창하게 꾸미려 든다.
허턱 아름답고, 허턱 굉장하고, 허턱 유창한 글은, 화장품을 덕지덕지 바르는 것처럼 도리어 미를 상하게 하는 화장이다.

먼저 든든히 지키고 나갈 것은 마음이다. 표현하려는 마음이다.
인물이든, 사건이든 정경이든, 무슨 생각이든, 먼저 내 마음속에 들어왔으니까 나타내고 싶은 것이다. '그 인물, 그 사건, 그 정경, 그 생각은 품은 내 마음'이 여실히 나타났나? 못 나타났나?
문장의 기준은 오직 그 점에 있을 것이다. 문장을 위한 문장은 피 없는 문장이다.

결코 문장 혼자만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이 먼저 아름답게 느낀 것이면, 그 마음만 여실히 나타내어보라.
그 문장이 어찌 아름답지 않고 견딜 것인가?
글을 고친다고 해서 으레 화려하고, 유창하게, 자꾸 문구만 다듬는 것으로 아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문장강화 中      -이태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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