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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독서HAZA365>/책소개,독서HAZA-2022년

<책속으로> 분노에 관련된 미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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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분노에 관련된 미덕들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온유함

분노(憤怒)와 관련된 중용이다.

이 중용에는 명칭이 없고 양 극단 역시 명칭이 없다시피 한 만큼, 우리는 이러한 중용에다 온유함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한다.

비록 온유함은 역시 명칭이 없는 모자람과 가깝기는 하지만 말이다.

 

분노가 지나침은 성마름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 원인은 많고 다양하지만 여기서 느끼는 감정은 분노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화낼 일로, 당연히 화내야 할 사람들에게, 적당한 방법으로, 적당한 만큼, 적당할 때에, 적당한 기간 동안 분노하는 사람은 칭찬받는다.

그런 사람은 온유한 사람일 것이다. 칭찬받는 것은 그의 온유함이기 때문이다. 온유한 사람은 대개 침착하여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의 지시에 따라 당연히 화내야 할 일에 적당한 방법으로, 적당한 기간 동안만 분노하니 말이다.

또한 온유한 사람은 정도에서 벗어나 모자람 쪽으로 더 가 있는 것 같다. 온유한 사람은 복수하기보다는 오히려 용서해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모자람은 일종의 성깔 없음이든 다른 무엇이든 비난받는다. 당연히 화내야 할 일들에 화내지 않는 사람들은 바보 취급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 점은 적당한 방법으로, 적당할 때에, 당연히 화를 내야 할 사람들에게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사람은 감수성이 없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며, 화내지 않는 까닭에 자신을 지킬 능력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자기가 모욕 당해도 참고 견디고, 친구들이 모욕당해도 수수방관(袖手傍觀)하는 것은 노예다운 태도이다.

 

 


 

 

지나침은 앞서 말한 모든 관점에서 나타날 수 있다. 즉 우리는 화내서는 안 될 사람들에게 화내서는 안 될 일로, 적당한 정도 이상으로, 너무 빨리, 너무 오래 화낼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같은 사람에게서 한꺼번에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나쁨은 자신도 파괴하며, 만약 나쁨이 완전하다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반면에 마른 사람들은 너무 빨리 화를 낸다. 그것도 화를 내서는 안 될 사람들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될 일로 지나치게 화를 내지만, 그 화가 빨리 풀리기도 한다. 바로 이것이 그들의 가장 좋은점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화를 억누르지 않고, 성미가 급해서 드러내놓고 분풀이를 하고 난 후에는 화내기를 그만두기 때문이다.

 

 

 


 

 

성깔 사나운 사람들은 지나치게 성말라 무슨 일에나 툭하면 화를 내는데, 그들의 명칭은 거기서 유래한 것이다.

 

 


 

 

 

뚱한 사람들

화가 잘 풀리지 않아 오랫동안 화를 내는데, 그들은 분기를 눌러 참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풀이를 하고 나면 화가 가라앉는데 복수가 고통을 쾌감으로 대치함으로써 그들을 분노에서 구해주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여전히 분노의 무게에 짓눌릴 것이다. 분노가 감추어져 있는 탓에 아무도 그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없고, 자신 안에서 분노를 삭이자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에게도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가장 부담스러운 존재이다.

 


 

우리는 화를 내서는 안 될 일에 너무 지나치게, 너무 오래 화를 내며 복수하거나, 응징하기 전에는 분이 풀리지 않는 사람들을 괴팍스러운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지나침이 온유함에 더 대립되는 것으로 여긴다. 지나침이 더 흔하고(용서보다 복수가 더 인간적이니까), 괴팍스러운 사람들이 더불어 살기 더 힘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찰들로 미루어 우리가 앞서 말한 것이 사실임을 알수 있다.

 

 

 


 

 

 

말하자면 어떻게 누구에게 무엇 때문에 얼마나 오래 화를 내야 하는지, 또는 어디까지가 올바로 행동하는 것이고 어디서 부터가 정도에서 벗어나는 것인지 특정하기란 쉽지 않다.

지나침 쪽으로든 모자람 쪽으로는 정도에서 약간 벗어나는 사람은 비난 받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중용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때로는 온유한 사람이라고 칭찬하는가 하면, 괴팍스러운 사람들을 지도자다운 데가 있다거나 남자답다고도 한다.

 

 


 

 

따라서 정도에서 얼마나 어떻게 벗어나야 비난받게 되는지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것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달려 있고, 그 판단은 우리의 지각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다음은 분명하다.

 

 


 

우리가 당연히 화내야 할 사람들에게, 당연히 화낼 일로, 올바른 방법 등으로 화내게해주는 중용은 칭찬받을 만하지만, 지나침과 모자람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또한 과오의 정도에 따라 조금 비난받거나, 심하게 비난받거나, 아주 심하게 비난받아 마땅하다.

따라서 우리는 분명 중용을 지켜야 한다. 분노에 관련된 마음가짐들에 대해서는 이쯤 해두자.

 

-니코마코스 윤리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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