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사(이순신)는 군중에 있을 때 밤낮으로 엄중히 경계하여 갑옷을 벗은 일이 없었다.
견내량見乃梁에서 적병과 서로 대치하고 있을 무렵,(어느날) 여러 배들은 이미 닻을 내렸고,
밤에 달빛이 매우 밝았다.
통제사는 갑옷을 입은 채로 전고戰鼓를 베고 누웠다가 갑자기 일어나 앉으면서
측근에 있는 사람을 불러 소주를 가져오게 하여 한잔을 마시고는,
여러 장수들을 모두 불러 앞으로 오도록 하고
"오늘 밤에 달이 매우 밝은데, 적병은 간사한 꾀가 많으므로 달이 없을 때도 물론 우리를 습격해 오지만,
달이 밝을 때도 습격해 올 테니 경비를 엄중히 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드디어 호령 신호인 나팔을 불게 하여 여러 배들이 모두 닻을 올리게 하고,
또 척후선斥候船에게 전령傳令했다.
척후 임무를 맡은 군사가 한잠이 들었던 것을 깨워 일으켜서 적병의 습격에 대비하도록 했는데,
한참 만에 척후가 달려와서 적병이 온다고 보고했다.
이때 달은 서쪽 산에 걸려 있고 산 그림자는 바다 속에 거꾸로 비치는데,
바다의 반쪽은 어슴푸레 그늘이 져 있었다.
적군의 배들은 어두침침한 그늘 속에서 수없이 다가와 장차 우리 배에 접근하려 했다.
이에 중군中軍에서 대포를 쏘면서 함성을 지르니 여러 배들도 모두 이에 응했다.
적병은 우리가 대비하고 있는 것을 알고 일제히 조총을 쏘았는데,
소리가 바다 속을 진동하고 총탄이 빗발처럼 물속으로 떨어졌다.
적병이 감히 우리를 침범하지 못하고 물러나 달아나버리니,
여러 장수들이 모두 순신을 신神으로 여겼다.
출처: 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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