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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독서HAZA365>/책속글귀-2016년

책속글귀- 일득록 中(by주부독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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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독서(讀書)

뜻은 배움으로 인하여 확립되고, 이치는 배움으로 말미암아 밝아진다.
독서의 공효에 기대지 않고도, '뜻이 확립되고 이치가 밝아진다'는 말을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날마다 읽을 과정을 정해 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비록 하루 동안 읽는 양이 많지는 않더라도 공부가 누적되어 의미가 푹 배어들면, 한꺼번에 여러 권의 책을 읽고는 곧바로 중단한 채 잊어버리는 사람과는, 그 효과가 몇 곱절은 차이 날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책을 읽을 때마다 반드시 과정을 정해 놓았다.
병이 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과정을 채우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았다.
임금이 된 뒤로도 폐기한 적이 없다.
때로는 저녁에 응접을 한 뒤, 아무리 밤이 깊어도 잠시나마 쉬지 않고, 반드시 촛불을 켜고 책을 가져다 몇 장을 읽어서 일과를 채워야만, 잠자리가 편안해진다.


새로 벼슬길에 나온 근신에게 하교하였다.
"그대들은 요즘 무슨 책을 읽는가?"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지 않는 것이지 못하는 게 아니다. 공무로 비록 여가가 적기는 하겠지만, 하루 한 편의 글을 읽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과정을 세워 날마다 규칙적으로 읽는다면, 일 년이면 몇 질의 경적 經籍을 읽을 수 있고, 쉬지 않고 몇 년 동안 꾸준히 읽는다면 칠서 七書를 두루 읽을 수 있다.
지금 별도로 책 읽는 날짜를 구하려 한다면, 책을 읽을 수 있는 때가 없을 것이다.
선비라면서 경서經書를 송독誦讀 하여 익히지 못하면, 선비다운 선비가 될 수 없다."



나는 일찍부터 초록하는 공부를 가장 좋아하여, 직접 써서 편 編을 이룬 것이 수십 권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효과를 얻는게 많으니, 범범히 읽어 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는 젊어서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하여, 바쁘고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날마다 정해 놓은 분량을 채웠는데, 읽은 경經. 사史. 자子. 집集을 대략만 계산해 보아도 그 수가 매우 많다. 그래서 독서기를 만들고자, 사부 四部로 분류한 다음 책마다 밑에 편찬자와 의례義例를 상세하게 기록하였으며, 끝에는 어느 해에 읽었다는 것과 나의 평설을 덧붙여서 하나의 책을 만들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책을 음미하고 품평한 것을 사람들이 모두 두루 볼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나 또한 한적한 시간에 한가로이 뒤적여 보면 평생의 공부가 또렷이 눈에 들어와, 반드시 경계하고 반성할 곳이 많아질 것이다.


글을 곱씹어 보고 깊이 음미하는 것은 다만 인내심을 갖고 글을 읽는 데 달려 있고, 잘 기억하려면 반드시 중요한 대목을 기록해야 한다.


외물 外物의 맛은 잠깐은 좋아할 만하지만, 오래되면 반드시 싫증이 난다. 독서하는 맛은 오래될수록 더욱 좋아, 읽어도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나는 평소 성색 聲色을 좋아하지 않아, 정무를 돌보는 여가에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오직 서적뿐이다. 그러나 패관은 속된 글들을 보내는 것은 오직 서적뿐이다. 그러나 패관은 속된 글들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들 문자는 실용에 무익할 뿐 아니라, 그 말류의 폐해는 마음을 바꾸게 하고 뜻을 방탕하게 하는데,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세상에 실학에 힘쓰지 않고 방외의 학문에 힘쓰는 자들을 나는 매우 애석하게 여긴다.


책을 읽을 때는 체험이 가장 중요하니, 참으로 정밀히 살피고 밝게 분변하여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지 못한다면, 날마다 다섯 수레의 책을 암송한들 자기와 무슨 상관이 있으랴!



책은 많이 일으려 힘쓸 게 아니라 전일하고 정밀하게 읽어야 하며, 신기한 것을 읽으려 힘쓸 게 아니라 평상적인 것을 읽어야 한다. 전일하고 정밀한 독서 속에 자연히 폭넓은 이치가 들어 있게 마련이요, 평상적인 내용 속에 자연히 오묘한 아치가 들어 있게 마련이다. 요즘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 대체로 많이 보려고만 들고 정밀하게 읽는 데는 힘쓰지 않으며, 신기한 것만 좋아하고 평상적인 것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도 道가 더욱 멀어지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는 먼저 큰 요점을 파악해야 한다.
요점을 파악하면 갖가지 현상이 하나의 근본으로 귀결되어, 절반의 노력으로도 갑절의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요점을 파악하지 못하면 온갖 사건과 사물이 서로 연관되지 않아서, 종신토록 외우고 읽어도 성취하는 바가 없을 것이다.



책을 읽을 때는 모름지기 옛사람의 본의 本意와 옛사람의 기상 氣象을 체인해야 한다. 책을 읽고도 그것을 체인하지 못한다면 읽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은, '가슴이 답답한 사람은 책을 읽을 수 없는 게 근심'이라 한다.
내가 근일 신료들을 드물게 접견하고 서적을 가까이하여 정해진 분량을 읽느라 밤을 새우기도 하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심기가 편안하고 탁 트이는 것을 깨달았따. 책을 한 번 읽는 게 차 한 잔 마시는 것보다 나은데도, 요즘 사람들은 이런 맛을 잘 모른다.


요즘 사람들 중에는 평소 책을 읽는 사람이 드물어, 나는 그것을 무척 괴이하게 여긴다.
세상의 아름답고 귀한 것 중에, 책을 읽고 이치를 궁리하는 것만 한 게 어디 있으랴! 나는 일찍이, '경전 經傳을 궁리하고 옛날의 도를 배워서 성인 聖人의 정미 精微한 경지를 엿보는 것, 널리 인용하여 밝게 분변하여 천고에 판결되지 않은 사안을 결론짓는 것, 호방하고 웅장한 문장으로빼어난 글을 구사하여 작가의 동산에서 거닐고 조화의 오묘함을 빼앗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주 사이의 세 가지 유쾌한 일'라고 생각하였다. 이것이 어찌ㅐ 괴거시험을 위한 공부나 옛사람의 글귀나 따서 글을 짓는 학문과 견주어 논의할 수 있는 것이랴!



책을 읽는 사람은 자잘한 일에는 비록 오활하더라도, 중대한 일에는 본래부터 자키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사대부의 염치 廉恥와 명절 名節은, 모두 책을 읽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재주와 지모가 비록 출중하더라도, 끝내는 근본이 부족하여 성취가 보잘것없게 될 것이다.



옛사람은 일을 당해 사리를 파악할 때 반드시 두세 겹으로 꿰뚫어 보았다.
그런데 요즘 사람은 반 겹도 꿰뚫어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이 목전에 닥치면 망연자실하여 어떻게 조처해야 할지 모른다.
이는 바로 책을 읽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책을 보는 것이 베개를 베는 것보다 나으며, 토론을 하는 것이 잡담을 하는 것보다 낫다.
하루 이틀 좋은시간을 허송한다면, 어찌 너무 아깝지 않겠는가?


눈 내리는 밤에 글을 읽거나 맑은 새벽에 책을 펼칠 때, 조금이라도 나태한 생각이 일어나면, 문득 달빛 아래서 입김을 불며 언 손을 녹이는 한사 寒士와 궁유 窮儒가 떠올라, 정신이 번쩍 뜨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언젠가는 한밤중까지 책을 읽고 있노라니, 정신이 나태해지고 졸음이 몰려왔다.
그때 홀연 한 줄기 닭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혼몽한 기운이 단박에 사라지고 청명한 기운이 저절로 생겨나, 이 마음을 일깨울 수 있었다.


나는 글 읽는 소리 듣는 걸 좋아한다. 한밤중에 등불을 밝히고 무릎을 쳐서 박자를 맞추며 글을 읽노라면, 악기를 연주하는 것 못지않다.



만뢰가 고요한 한밤중에 밝게 촛불을 밝히고, 뜻 가는 대로 책을 읽는 것 역시 진기한 풍취 風趣이다.



책을 읽는 게 어느 때고 즐겁지 않으랴만, 깊고 적막한 겨울 밤이라면 더욱 좋다.



더위를 물리치는 데, 책 읽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책을 읽을 때는 몸이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고 마음에 주재 主宰가 있게 되어, 외기 外氣가 자연히 들어오지 못한다.



책을 읽는 공부의 경우, 사람들은 모두 어릴 때 터득한 것을 평생토록 쓸 밑천으로 삼는다.
대개 정신이 전일하고 기욕 嗜慾이 아직 싹트지 않은지라, 반드시 먼저 배우고 익힌 것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독서만 그런 게 아니라, 무릇 백공 百工의 기예에 관한 일이 모두 그렇지 않은 게 없다.



역사책은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선한 일을 보면 문득 감동하는 바가 있고, 악한 일을 보면 문득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당나라는 환관 때문에 망하였으니 경계하여 멀리하고, 송나라는 소인 때문에 망하였으니 거울삼아 물리친다.


역사책을 읽을 때 주관적 의견이 개입되는 게 가장 조심스럽다.
학문이 고명한 사람은 비록 의심스러운 일이 있어도 반드시 왜곡하여 옳다 여기고, 명성이나 덕망이 보잘것없는 사람은 취할 만한 점이 있어도 반드시 싸잡아서 무시하는데, 이런게 바로 주관적 의견이다.


출처:일득록(정조대왕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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