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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독서HAZA365>/책속글귀-2018년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오도엽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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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이 전태일입니다. 평화시장 앞에서 지옥 같은 근로자의 현실을 고발하려고 몸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장례를 치르면 노동조합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장례를 치렀습니다. 근데 조합 사무실이라고 고작 일곱 평 내주고는 근로자들이 조합에 오는 것마저 가로막고, 노사협의회도 여태 한 번도 못했어요. 아들 친구들은 배를 곯아가며 노동조합을 하려고 하는데 말이에요. 대통령께서 나서서 노사협의회라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고 왔습니다...."

"알았어요. 그만."
말이 길어지자 박정희는 이소선의 말을 끊었다.
"전화해서 조치해."
박정히는 옆에 군복을 입은 이에게 지시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품 공장에 와서 하루 몇 시간씩 일하냐? 일요일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쎄 빠지게 일하는데 얼마나 받냐? 와이셔츠 한 장 만들어 사장이 100원 벌면, 죽도록 일한 근로자는 50원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냐? 근데 50원은커녕 30원도 안 주잖아. 꼴랑 20원 주잖아. 그것도 제때에 주기나 하냐. 임금을 달라 하면 발로 뻥 차서 내쫓잖아. 그렇게 살았잖아. 쫓겨날 때 돈 제대로 받고 나온 근로자 있냐. 일도 못하고 돈 받으러 만날 찾아가는 게 일 아니냐. 결국 먹을 게 없어 딴 곳에 취직해야 하고 돈 뜯기기가 일쑤잖아. 돈도 못 받고 일자리 찾아 나가면 니네 엄마가 월급 받으러 공장에 쫓아다녔지? 일해서 사장 돈 벌어 주고 나면 돈도 못 받고 쫓겨나는 것이 근로자야. 여기 와서 보니 내 아들 태일이가 왜 죽었는지 알겠더라. 천불이 나더라.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든 거야. 조합에 가입해서 근로자가 한데 뭉쳐 싸워야 우리 처지를 개선할 수 있지, 만날 엎드려서 일만 해봐야 배곯아 죽기밖에 더하겠어. 안 그러냐? 우리 권리를 찾아주고, 돈을 받아 주는 것은 딴 사람이 아니라 바로 역에 모인 우리 자신이야. 내 말이 맞냐, 틀리냐?"
이소선의 말이 끝나자 열서너 살 시다들이 손뼉을 치며 외쳤다.
"맞아요. 맞아."





 

 



교도소 의무과에 가봤자 주는 거라고는 고작 아스피린 두 알. 물론 약으로 나을 수 수 없는 병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이소선이 잘 알고 있었다. 이소선은 가슴 앓이가 심할 때는 머리를 시멘트 벽에라도 처박고 죽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누군가 쾅 쾅 마룻바닥을 찬다.
"아이구 깜짝이야."
놀라 잠에서 깬 이소선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 ​
쾅​, 쾅.
'어디서 나는 소리야?'
이번에는 이소선의 엉덩이를 누가 발길로 차는 것 같다. 놀라서 엉덩이 밑을 내려다보니 관위에 자신이 누워 있다. 화들짝 놀라 변기통 쪽으로 도망간다. 다시 쾅 소리가 나며 관 뚜껑이 열리더니 까만 작업복을 입은 전태일이 벌떡 일어난다.

"어머니! 어머니!"
태일이다. 하지만 평소 자신을 부르던 아들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아니다. 성이 단단히 나서 호통을 친다. 이소선은 귀가 먹먹해진다.
"어머니 약속을 잊었습니까? 저와 한 약속을 기필코 이루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대로 죽다니, 죽을 생각을 하다니, 어머니가 이럴 수 있습니까. 전태일의 어머니 맞습니까?"
전태일은 다시 한 번 힘차게 마룻바닥을 찬다.
"어머니, 이를 악물로 단단히 마음을 먹으세요."
"..... 아, 알았다. 약속하마. 약속한다, 약속해."

 

 

 



이소선이 생각하는 이소선은 어떤 사람입니까?
.......

죄만 짓고 산 삶이지 내가 누구겠나. 어떤 사람이겠냐.
나는 아무것도 모른 사람이야. 그냥 남들한테 물어보고 살았어. 물어보고 남들한테 배우고 살았어. 나는 참 잘 물어보는 사람이다.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오도엽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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