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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독서HAZA365>/책소개,책속글귀-2019년

묵묵 -고병권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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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글귀

 

묵묵 -고병권 에세이

 


 

'묵'( 默 )이라는 글자는 소리가 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흑'(黑)과 '견'(犬)을 합친 글자로, 개가 잠잠히 사람을 따르는 모습에서 나왔다고 한다.

 

'흑'이 발음을, '견'이 뜻을 나타낸다. 그런데 '흑'과 '견' 모두 내게는 소중하다. 무엇보다 둘이 하나의 글자 '묵'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묵'은 어두운 밤길에 나와 함께 걷는 존재가 있음을 일깨워준다. 내게 자리를 내어준 노들야학은 밤길을 배움의 장소로 삼는 곳이다.

 

여기 몇 년을 들락거렸는데도 내게 이토록 배움이 늦은 것은 아마도 듣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빛을 보았노라고 떠들어댄 우화 속 어설픈 철학자처럼(그는 어둠을 견딜 수 없는 자에게 찾아드는 환각의 첫 번째 희생자였을 것이다), 나는 어둠 속에서 벗어날 궁리만 했을 뿐 한 번도 어둠을 주시하지 못했고 거기서 무언가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작 나 자신이 듣지 못했으면서 함부로 그들은 말할 수 없는 존재라고 선언해버렸다. 내 안의 영리한 철학자가 자신의 듣지 못함을 그들의 말하지 못함으로 바꿔치기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수십 번이고 똑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말해준 야학 학생들 덕분에 겨우 몇 마디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알아차린 것 하나, 세상에 목소리 없는 자란 없다. 다만 듣지 않는 자, 듣지 않으려는 자가 있을 뿐이다.

-프롤로그 中

 

 

묵묵이란 단어를 참 좋아한다. 내가 생각하는 묵묵이란 이미지는 알아도 아는체하지 않고, 들었던 이야기도 못 들은 척 다시 들어주는 그런 미덕, 혹은 겸손의 의미였다.

 

언제부터인가 묵묵이란 단어가 '모름'이나 '바보스러움'의 상징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놀랄 때가 있다. 요즘 말 못 하는 사람이 없다고 할 만큼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테일러의 말을 빌리면 ' 말할 수 없는 존재란 없으며 단지 듣지 못하는 존재, 듣지 않는 존재가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이 말을 인용해 보더라도 진정으로 말을 잘한다는 것은 듣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묵(默)이야말로 말을 잘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된다. 인간은 언어능력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귀를 막고 자기 말만 멋지게 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소리로 나오는 말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눈빛, 표정, 행동을 살피며 소리 너머의 뜻을 알아내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기 위해 묵(默)은 꼭 필요하다. 제대로 듣지 못할 때 제대로 된 말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자본가에게는 채무가 곧바로 가난을 의미하지 않는다. 몇 백 퍼센트의 채무를 지고도 기업을 굴리는 것은 문제가 없으며, 돈을 빌리는 것도 그런 사람들에게는 능력으로 통한다.

 

그러나 서민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채무가 많다는 것과 가난하다는 것은 동어반복에 가까운 진실이다.

 

하지만 주어와 술어를 바꾸어 가난을 그 자체로 채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점점 가난한 사람을 채무자처럼 몰아가고 있다. 예전에 '가난이 죄냐'고 항변하는 말이 있었는데, 가난해서 국가로부터 복지수당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분위기로는 반쯤은 '죄인' 취급을 받고 있다. 일종의 '보호관찰 대상자'처럼 생활규범을 통제받고 있으니 말이다."

돈이 있는 사람들이 돈을 빌리는 것은 '능력'이고,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빌리는 건 '죄인' 취급을 받는다는 말이 마음에 훅 들어온다.

 

가진 자는 가만히 있어도 관심을 받고 빛을 발한다. 빛에 빛을 더하기 보다 어두운 그늘에 빛을 보내 주는 것이 좀 더 평등해 보인다. 그늘에도 빛나는 삶을 살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미덕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묵묵히 세상에 귀 기울이며 생각하고 느낀 점을 에세이로 옮겨냈다. 저자의 말에 묵묵히 귀 기울이며 책을 들여다본다.

 

묵묵 -고병권 에세이

 

 

▶한줄 정리

"묵(默), 개가 주인을 따르듯 하면, 말(言)은 침묵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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