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너 하고 싶은 걸 해. 나는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폭력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득도하기 전 까지는, 자신보다 남이 자기에 대해 더 잘 아는 법이다. 물론 이 말이 "너는 아직 너를 몰라. 내가 너를 더 잘 알아"하면서 강요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 나이에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스스로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거울, 타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선배의 아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타자를 통해 자신을 비춰볼 기회를 가졌을까? 그런 교사는 있었을까? 그런 교사가 있었어도 선배의 아들은 졸업하는 순간 자기가 캄캄절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절망감을 가졌을까? 그런 교사가 있다면, 그들은 학교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교육현장은 지금 진퇴양난의 위험에 처해 있다.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해서는 해결되는 것이 없으며 오히려 더 위험해질 뿐이다. 또한 압축적 교육개혁에 의해 위기가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더 고조될 수 있고 새로운 위험이 생산되기도 한다. 따라서 위험사회에는 내재적으로 생산되는 위험을 언어화하고 소통해야 한다는 압력이 항상 잠재적으로 존재한다. 지금 학교의 위험에 대해서는 교사와 학부모, 학생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 나만 책임을 면제받을 수도 없고, 나만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수도 없다. 따라서 학교와 교육의 위기가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그런 전체 환경의 한 부분으로 위기가 경험하고 위험을 대면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서 학교 안에 존재하는 모든 이가 이것이 '우리 모두'의 공통의 운명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유대감을 형성할 가능성이 주어지는 것이다.
유대를 위해서는 성찰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왜냐하면 위험이 외부로 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재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성찰 없이는 이를 감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재된 위험은 벡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험 자체가 인지 사회학적인 것이다. 따라서 벡은 위험이 "지식과 규범 속에서 확대되거나 축소될 수 있으며 또는 의식의 염막에서 간단히 제거"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위험이 새로운 결속과 연대의 원리가 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적극적인 자각과 소통이 필요한 것이다. 위기관리 능력의 회복이란 소통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그러나 성과사회에서는 이 위험에 대해 성찰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성과는 그 즉시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는 시간과 속도와의 싸움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과를 내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바로 토론과 숙의의 과정이다. 토론은 언제나 성과를 내는 속도를 늦출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성과사회로 변모한 학교는 새로운 제도나 대책이 도입될 때마다 반드시 뒤따르는 위험을 늘 간과하면서 더더욱 위기를 불러온다. 위기에 대한 정책 혹은 대안이 오히려 위기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지금 교사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야 하는 이유는 이런 위험이 초래하는 고통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공유하는 것을 넘어 위험에 대해 성찰하고 결속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공통의 위험을 인지하고 토론하는 과정은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동료들을 만나고 결속하는 과정이 된다.
이런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우리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렇다는 것을 확인한다. 각자의 경험이 고립되고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고통의 경험임을 알게 된다. 이렇게 된다면 나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사적인 고백이 아니라 동시대에 대한 공적인 가치를 가진 '증언'이 될 것이다. 문화적 관용의 문제로 돌려지고 취향의 문제로 변질된 사적인 친밀감으로서의 우정이 아니라, 공통의 세계를 창조하는 우정이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삶의, 경험이, 이야기의 공공성을 회복할 수 있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엄기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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