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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독서HAZA365>/책속글귀-2018년

공부 공부 中 -엄기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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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돌보는 방법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


용기를 내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으니 새로운 것을 탄생시킬 수 없다. 철학자 아렌트가 말한 "탄생"이 점점 더 불가능해진다. 탄생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원천이다. 무언가의 탄생은 여전히 위 삶에 '새로운 것'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새로운 것을 탄생시킨다.

그런데 한계의 인정을 슬픈 것으로 만들어놓음으로써 아예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아, 각자의 삶에서 새로운 것이 탄생할 가능성 자체가 사라졌다. 이런 삶에 기쁨이 있을 수가 없다.





자연법칙은, 주어진 것을 활용하기 위해 인간이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바로 '아는 것'이다. 자연법칙을 모르면서 그것을 활용할 수는 없다. 그게 왜 그런지, 어떻게 그런지는 아직 모른다 해도, 그것을 일관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패턴이라도 알아야 한다. 그 이후에 그것이 왜 그런지, 즉 법칙을 알면 인간은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활용 이전에 알아야 한다. 지식 공부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익힘의 과정이 즐거울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사실 익힘의 과정은 지루하다. 내가 뭔가를 익힐 때도 그랬다. 익히려고 할 때마다 좌절하게 된다. 익히는 과정에서 사람이 경험하는 것은 부자유다. 이 부자유의 경험이 기쁨을 주기보다 좌절감을 갖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익힘의 과정은 그 자체로 지루하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익힘의 과정에서 탈락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익힘의 시작 단계에서 이 지루함을 견디게 하는 것은 매혹이다. 그러니 매혹의 힘이 끝까지 가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익힘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익히는 과정에서 또 한 번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은 익힘의 결과에서 과정으로서의 전환이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진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익힘의 과정에서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어떤 기량이 생기는지 알리 위해 다시 한번 자기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익힐 때, 많은 경우 우리는 익힘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고 익힘의 결과에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익힘의 과정에서 배우고 익히게 되는 차원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넘어간다. 익힘 자체의 기예가 향상되는 것 말이다......


자기에게 집중할 때 사람은 익힘의 지루한 과정에서도 배움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역량이 증강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배우고 익히는 법 자체의 특질을 발견하는 것을 비롯해 자기에 관한 앎에 도달하고, 그 앎으로부터 (다음의 앎을) 좀 더 수월한 것으로 만들거나 불가능한 것에서는 물러나는 등 배움과 익힘의 기예 자체를 키울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기술의 결과에만 집중하면 결코 보이지 않는 배움의 기술이다.

이 배움의 기술 역시 머리가 아니라 몸의 문제다. 듀이는 이것을 습관이라고 말했다. 배움을 통해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배우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다. 배우는 습관이 생긴 사람만이 계속 배움을 이어나갈 수 있다. 이렇게 배움을 이어나가는 사람이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게 익힘의 과정에서도 우리가 결과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이 배움과 익힘 자체의 기예는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다. 자본주의자들이 가끔 진실을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배운 자가 아니라 배우는 자가 디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어떤 내용을 배우는 것만큼이나 그 배움을 통해 배움과 익힘 자체의 기예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특히 지금처럼 한 사람이 자기 생애에서 적어도 두세 번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삶을 전환해야 하는 시대에는 배운 자가 아니라 배우는 자, 아니 배울 줄 아는 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배울 줄 아는 자가 배움의 기쁨을 지속할 수 있다.









모르니 자유롭지 못하다. 알지 못하니 눈을 옮길 때마다 무엇이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그 움직임을 모르니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없다. 무지가 감탄을 막고 향유를 방해한다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된다. 무지하니 자유롭고 승수 능란하게 향유하지 못한다. 충분히 즐길 수 없다. 그러니 무지하면 아름다움 앞에서 기쁨을 느끼는 게 아니라 답답함, 즉 슬픔을 느낀다. 이런 답답함이 공부를 시작할 마음을 먹게 한다.

공부 공부 中   -엄기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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