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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독서HAZA365>/책소개,독서-2024년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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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에리히 프롬 지음

 

 

 

현대인은 어떻게 자신의 삶에서 멀어졌는가?

 

삶을 사랑하는 능력을 회복하기 위한

에리히 프롬의 깊은 사유와 예리한 통찰

 


삶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타인에게 봉사하는 마음에 앞서 자신이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삶을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쁘게 사는 것이 아니다. 시작은 깨달음이다. 가만히 앉아 들여다보고 명상하는 것이다. 그렇다. 이런 깨달음이 삶을 사랑하는 시작이라 한다. 가만히 있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늘 해야 할 일로 분주한 함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책속으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실감하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활동적일 수 있는 자기 나름의 힘과 멀어지지 말아야 한다. 생명은 성장하고 표현하며 스스로 살아가는 성향이 있다. p17

기술이 유용하다 보니 인간은 자력을 키우는 훈련에 소홀해질 수 있다. 신체의 힘이 약해진 건 이미 오래전에 깨달은 사실이다. 차를 타고 다니면서 스스로 움직이지 않을수록 근육은 자꾸만 위축될 것이다. 따라서 신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 기술과 신체 건강, 그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 택해야 하는 문제다....

​-서문 중에서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삶을 사랑하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천천히 둘러보자.

 

​목차 사진

 

1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삶을 사랑할 수 있는 비법은 없지만 많이 배울 수는 있다. 망상을 버리고 타인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사람, 계속 밖으로만 나다니지 말고 자신에게 가는 길을 배울 수 있는 사람, 생명과 사물의 차이를 행복과 흥분의 차이를, 수단과 목적의 차이를,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과 폭력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삶에 대한 사랑을 향해 이미 첫걸음을 뗀 셈이다.  첫걸음을 뗀 후엔 다시금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질문에 맞는 의미 있는 해답을 이런 저런 책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답은 자기 안에 있을 것이다. p44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이다. 고통은 인생의 최악이 아니다. 최악은 무관심이다. 고통스러울 때는 그 원인을 없애려 노력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 감정도 없을 때는 마비된다. p45

 

2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진정한 사랑에는 타인과의 연관성과 자신의 온전함이 보전된다.

목적이 되어버린 수단, 사물의 생산만이 중요한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물로 바꾼다. 우리는 인간처럼 행동하는 기계를 제작하고, 점점 더 기계처럼 행동하는 인간을 생산한다. 19세기에는 노예가 될지 모를 위험이 있었다면 20세기에는 로봇이나 자동인형이 될 위험이 있다. 분명 시간은 절약된다. 하지만 막상 시간을 절약해놓고는 그 시간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워하며, 잘해봤자 시간을 죽이려 애쓸 뿐이다.

미국에서 일주일에 3일만 일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확신하건대 시간은 너무 많은데 뭘 해야 할지 몰라 일어나는 심리적 붕괴를 받아줄 병원은 충분치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사물을, 손수 만든 제품을 숭배하고 그 앞에 무릎 꿇는다. p55

 

 

 

3 이기심과 자기애

​ 자유와 독립이 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생 사이비 사랑과 달리 사랑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자유와 평등이다. 사랑의 조건은 혼자서도 제정신을 유지하며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자아의 강인함과 독립성, 온전함을 갖추는 것이다.

이 조건은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사랑받는 사람에게도 해당된다. 사랑은 자발적 행동으로, 여기서 자발성은 말 그대로 자신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을 말한다. 자아가 불안하고 나약하면 자기 안에 뿌리를 내릴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다. p109

 

이기적인 사람은 항상 조급해하고 자신에게 몰두하지만 절대 만족하지 못하며, 충분히 받지 못할 거라고, 뭔가를 놓칠 거라고 물건을 빼앗길 거라고 하루 종일 걱정하고 늘 불안에 떤다. 누군가 자기보다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며 격한 질투에 사로잡힌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서 무의식적 역학까지 고려한 이기적인 사람은 절대 자신에게 열광하지 않으며 자신을 미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언뜻 모순처럼 보이는 수수께끼는 쉽게 풀린다. 이기심이 바로 이런 자기애 결핍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불안하다. 진정한 사랑과 긍정을 바탕으로 해야만 존재하는 마음의 안정을 느끼지 못한다. 항상 자신에게 몰두해야 하고 모든 것을 얻고 싶어 욕심을 부린다. 근본적으로 그의 자아에는 안정과 만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p118

 

 

 

4 창의적인 삶

다른 사람을 창의적으로 본다는 것은 투영과 왜곡 없이 객관적으로 본다는 뜻이며, 이는 어쩔 수 없이 투영과 왜 곡을 낳는 자기 내부의 신경증적 '악덕'을 극복한다는 의미다. 완전히 눈을 떠 내면과 바깥의 현실을 인지한다는 의미다. 그런 내면의 성숙에 이른 사람만이, 자신의 투영과 왜곡을 최소로 줄일 수 있는 사람만이 창의적으로 살 것이다. p131

 

창의적 자세의 조건

-감탄하는 능력

-집중력

-매일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마음가짐

평등이란 우리 모두가 온갖 차이를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동일한 인간 존엄성을 갖든다는 뜻이다.

 

5 죽음에 대한 태도

 

6 무력감에 대하여

신경증의 무력감

-나는 어떤 것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고 어떤 일도 착수할 수 없으며 내 의지로도 외부 세계나 나 자신의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 없고, 나무도 나를 대우해 주지 않으며 모두가 없는 사람 취급한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극복하려는 노력

-무력감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합리화

(자신이 무기력한 이유는 신체적 결함 탓이다. 특정한 인생 경험으로 너무나 큰 상처를 입었기에 모든 활동성과 용기를 빼앗겼다는 확신)

위로 성격의 합리화

-기적에 대한 믿음

-시간에 대한 믿음

-무력감의 억압

무력감의 가장 중요하고 일반적인 결과는 분노다.-> 분노의 결과는 항상 불안이다. 분노가 억압될수록 불안도 커진다. 우리 사회의 평균적인 성인은 실제로 매우 무기력하다. 원래는 완전히 달라야 하며, 그가 이렇게 약한 것은 다 그의 책임이라고 믿을수록 이러한 무기력은 더욱 심한 압박으로 다가온다. 그에게는 자기 운명을 좌우할 힘이 전혀 없다. 그가 어떤 능력을 개발할 수 있을지부터가 출생의 우연히 결정한다.

일자리를 구하기나 할지, 어떤 직업을 선택할 수 있을지도 본질적으로 그의 의지나 노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요인이 결정한다. 심지어 파트너를 선택하는 자유조차 사회경제적 경계 때문에 제약받는다. 기분, 의견, 취향도 주입되며, 여기서 벗어나려는 그 어떤 일탈도 더 심한 고립으로 값을 치러야 한다.

세상이 활짝 열렸다는 착각으로 시작한 사람 중에서 어느 정도나마 독립과 경제적 안정을 이룬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미미한지는 통계자료로 입증할 수 있다. p185

개인의 무력함은 권위주의 철학의 기본 주제다.

 

7. 기본 소득으로 자유를 얻으려면

 

인간 행동의 자유를 제약하는 요인은 두 가지다.

1. 지배자들이 폭력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2. 노동 및 사회생활과 관련해 자신에게 부과된 조건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굶어 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자유"의 구호를 현실로 만들 뿐 아니라 서구의 종교와 인문주의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원칙, 즉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나 살 권리가 있다는 원칙의 정당성을 확인해 줄 것이다.

 

살고 먹고 집을 소유하고 아프면 치료 받고 교육을 받는 등의 권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제한되어 서는 안되는 인간의 타고난 권리다. 설사 그 사람이 사회 에 "유용하지 않다 해도 말이다. p195

 

8. 소비하는 인간의 공허함

과잉 사회의 심리적. 정신적 문제다.

 

9. 활동적인 삶

과거 전통적 의미의 활동성은 행위나 행동이다. 현대 산업의 의미에서 활동성은 분주함이다. 이 말은 영어 busyness와 정확히 일치한다. to be busy는 분주함이고 business는 사업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 것이다. 담배, 운전, 음주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일은 현대 사회의 최고 진통제 중 하나다. 사람들은 행위로 도망친다.

꼭 일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일이 끝나면 운동을 하고 클럽에 간다. 그저 분주하기만 하면 된다. 단 한순간도 고요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다시 불안이 고개를 내밀 테니 말이다.

.....

현대인은 매우 활동적이라 믿지만 실제로는 매우 수동적이다. 그의 활동성은 그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지시하고 조종하는 활동성, 그에게 불어넣은 활동성이기 때문이다. ...

지금 서구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과 행위가 무의미하고 즐겁지 않으며 일이 삶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의식하며, 명확하지는 않다 해도 적어도 어느 정도는 의식하고 있다. 삶에 깊은 불만이 있으며, 내면의 수동성이 빚어낸 자신의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 건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가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의식하는 것이다.

수동성의 결과는 바로 소비라는 강제, 소비하는 인간이 되라는 강제다. 소비하는 인간의 내면이 공허하고 수동적이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더 많은 것을 안으로 불어 넣어야 한다. 수동적인 탓에 실제로는 공허하지만 꽉 찼다는 허울을 선사할 물건으로 자신을 채워야 한다.

실제 분주함과 게으름은 같은 것이다. 즉 내면 활동성의 결핍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강박적으로 활동하고 강박적으로 활동적이지만 그러고 나면 활동적으로 행동한 만큼 게으르고 싶다는 갈망을 느낀다. 물론 활동하고 나서 운동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역시 다른 형태의 강박적 활동성일 때가 많다. 운이 좋아 아무것도 안 할 수 있고 최대한 게으름을 부릴 수 있는 사람도 아주 많다. 그것은 '휴식'이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휴식은 일과 마찬가지로 수동적이다. 수동적인 일과 수동적인 휴식, 이 둘은 딱 맞는 짝이다. 충분히 쉬고 나면 다시 문제가 고개를 내밀고, 아마도 고민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 그러고 나면 다시 고민을 잊기 위해 일해야 한다.

내가 이러한 고민을 하는 이유는 올바른 활동성을 키우라고 권하고 싶기 때문이다. 관조와 상반되지 않으며 자기 발전을 지원하는 활동성을 키우라고 권하고 싶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를 성공시키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우리가 생존하려면 지금처럼 그냥 살아가서는 안 된다. 제대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목표는 무엇인가? 나는 수동성을 의식하고 이 수동성이 인간에게 고통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작은 깨달음이다. 다음 걸음은 진정한 활동성의 연습이다. 아마도 그 시작은 한번 가만히 앉아 바라보려는, 들어보려는, 명상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이건 절대 쉬운 과제가 아니다. 말은 정말 쉬워 보인다. 가만히 좀 앉아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답할 것이다.

"그게 뭐 특 별하다고. 당장이라도 할 수 있어.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래?" 하지만 한번 해보면 당신이 얼마나 쉼 없는 행동의 강제와 분주함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p250

 

 

 


 

삶을 사랑하는 방식을 에리히 프롬의 각도로 따라가보았다. 내용이 우리 삶과 맞닿아 있어서 어렵지 않게 보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삶을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착각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관조하는 삶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잊지 말아야겠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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