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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아들에게주는가훈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주역]에 대하여) -정약용 지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성인들의 책을 읽고 말씀 올립니다 答仲氏 [주역]에 대하여 [주역]으로 말하더라도 요즘 사람은 하늘을 섬기지 않는데 어찌 감히 점을 칠 수 있겠습니까? 한선자(韓宣子)*가 노(魯)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역상(易象)을 보고서, "주나라의 예(禮)가 노나라에 있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역전(易箋)]*을 자세히 보면, 서주(西周)의 예법 가운데 환히 알 수 있는 것들이 부지기수인데, 지금 점치는 것이라 하여 그 예법마저 고찰하려 하지 않는대서야 되겠습니까? 공자는 점치는 것 외에 별도로 [단전(彖傳)]과 [대상전(大象傳)]*을 지었으니, [주역]이 어찌 점치는 책일 뿐이겠습니까? 옛날에는 봉건제도를 썼으나 지금은 쓰지 않고, 옛날에는 정전.. 더보기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형과 아우) -정약용 지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둘째형님께서는 깊이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上仲氏 형과 아우 신주(薪洲)에 귀양 와 있던 심생(沈生)이 금년 가을에 죽었습니다. 슬프군요. 선생의 옛날 술벗이 죽었습니다. 바다를 격해 있던 탓으로 옛날 좋아하던 관계를 지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나와 친한 사람을 향하여 "나의 벗 정공(丁公)*이 전에 '나의 아우는 문학(文學)이 나보다 낫다, 그 이마음이 끝없이 큰 것은 제 형보다 못하다'라고 하더니, 그 말이 들어맞구나"라고 했다 하는 데, 이는 저를 원망해서 한 말일 것입니다. 그가 나이 스물에 아내와 이별하였는데 금년 9월에 아내가 내려와서 서로 만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달을 남겨두고 부음(訃音)이 갔으니 아, 슬픈.. 더보기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아암이란 중에 대하여) -정약용 지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둘째형님께서는 깊이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上仲氏 아암이란 중에 대하여 대둔사(大芚寺)*에 어떤 승려가 있었는데 나이 마흔에 죽었습니다. 이름은 혜장(惠藏)*, 호는 연파(蓮波), 별호(別號)는 아암(兒菴), 자(字)는 무진(無盡)이라 하는데, 본래 해남의 한미한 사람이었습니다. 27세 병불(秉拂)*이 되자 제자가 백수십명에 이르렀으며, 30세에는 둔사(芚寺)의 대회(大會: 이 대회는 오직 팔도의 대종장 大宗匠이 된 뒤에야 개최하는 것임-지은이)를 주재하였습니다. 을축년(1805)가을에 만덕사(萬德寺)*에 머물렀는데 그때 저와 만났습니다. 서로 만나던 저녁에 곧 [주역]을 논했는데, 그는 하도(河圖) 낙서(洛書)의 학문에 대해 횡설.. 더보기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예와 인정) -정약용 지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둘째형님께서는 깊이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上仲氏 예와 인정 ​ 학기(學箕:자는 희열 希說임-지은이)* 가 그의 아들을 집 아이들에게 의탁하여 글을 배우도록 하였는데, 그 아이의 얼굴 모습이 준수하여 형수씨가 보고서 학초(學樵)의 후사로 세우고 싶어했습니다. 무장(武牂)과 문장(文牂) 두 아이들도 큰 욕심이 생겨 그를 끌어다가 당질(堂姪)로 삼고 싶어서 학기와 서로 의논하였더라니, 학기가 말하기를 "현산(玆山)과 다산(茶山)의 뜻이 데려가고 싶으시다면 나는 당연히 바치겠다"고 하였답니다. 두 아이들이 다산으로 편지를 보내왔기에 답하기를 "일로 보아서는 매우 좋으나 예(禮)로 보아서는 매우 어긋난다. 예를 어길 수는 없다"라고 하니,.. 더보기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소학주천] 과 [아학편]) -정약용 지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둘째형님께서는 깊이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上仲氏 [소학주천] 과 [아학편] ​ [소학주천(小學珠串)]*은 어린아이들을 위하여 지었습니다.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선생께서도 이러한 문자(文字)를 편집하셨다 하던데, 한집안에서 따로 두개의 문호(門戶)를 세울 필요는 없습니다. 이쪽 것을 사용하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 문례(文例)가 비록 쓸데없이 긴 듯하나 어린아이들에게 외우도록 하려면 이와 같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그 방법은 10단위로 한도를 삼았기 때문에 혹 구차스럽게 채운 것도 있고 피치 못하게 빼놓은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세상에서 통용되는 문자란 이렇게 하지 않으면 행해지지 않습니다. 선생께서 지으신 [몽.. 더보기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성경지도]에 대하여) -정약용 지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둘째형님께서는 깊이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上仲氏 [성경지도]에 대하여 [성경지도(盛京地圖)]는 세번이나 원고를 고친 뒤에야 다른 여러 글들과 겨우 서로 맞게 되었는데, 참으로 천하의 진귀한 책이자 우리나라의 더없는 보물입니다. 문인이나 학사는 이 지도를 보지 않고 동북 지방의 형세를 논할 수 없을 것이며, 장수나 군주(軍主)는 이 지도를 보지 않고 양계(兩界)의 방어를 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그것을 보건대, 이세적(李世勣)*이 고구려를 공격했을 때 의주(義州)를 경유하지 않고 곧장 흥경(興京)에서 남쪽 창성(創成)으로 나왔는데, 그 사이의 산천과 도리(道理)가 손바닥을 보듯이 명료합니다. 강홍립(姜弘立)*이 불벌할 때도 창.. 더보기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귀족 자제들이 쇠잔해지는 것 역시 천운) -정약용 지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둘째형님께서는 깊이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上仲氏 귀족 자제들이 쇠잔해지는 것 역시 천운 읍내에 있을 때 아전 집안의 아이들 네다섯명이 제게 배우러 왔었는데* 거의 모두가 몇년 만에 폐하고 말았습니다. 어떤 아이 하나가 단정한 용모에 마음도 깨끗하고 필재(筆才)도 상급에 속하며 글 역시 중급 정도의 재질을 가졌기에 끓어앉혀서 이학(理學)을 공부하게 하였습니다. 만약 머리를 숙이고 힘써 배울 수만 있다면 이청(李晴)*과 더불어 서로 짝이 맞을 것 같았는데, 어찌된 셈인지 혈기가 매우 약하고 비위가 아주 변벽하여 거친 밥이나 맛이 변한 장(醬)은 절대로 목으로 넘기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저를 따라 다산으로 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더보기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물감 들이는 법) -정약용 지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형님께서는 깊이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上仲氏 물감 들이는 법 ​ 산골에서 산 지가 오래되어 시험삼아 풀잎이나 나무껍질을 채취해다가 즙을 내기도 하고 달이기도 하며 물을 들여보니, 오색(五色)이나 자색 녹색 외에도 이름지어 형용할 수 없는 여러 색깔이 배어나와 기이하고 아담하고 잔잔한 것이 매우 많았습니다. 요즈음 중국에서 나오는 비단이나 지폐의 색깔이 기이하고도 속기(俗氣)를 벗어난 것은 모두 평범한 풀이나 나무에서 뽑아낸 물감을 사용했기 때문임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색 외에는 오직 자색과 녹색 두가지만 있는 줄 알고 이것 외의 물색(物色)은 다 버리고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안동답답(安東沓沓)*이라는 것입.. 더보기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돈꿰미의 뜻) -정약용 지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형님께서는 깊이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上仲氏 1811년 겨울 돈꿰미의 뜻 ​ 거론하신 9.6과 방(方). 원(圓)의 관계 개념은 서로 맞지 않는듯싶습니다. 8로 1을 에워싼 것이 9이고 6으로 1을 에워싼 것이 7인데 9는 변음(變音)이지만 7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6으로 1을 에워싼 것이 어떻게 6의 원이 된단 말입니까? 점치는 법에 나오는 7.8.9.6의 숫자는 별개의 법칙성을 갖고 있어 수리가(數理家)가 방과 원을 추산하는 법과는 서로 똑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시 자세히 살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민(緡)이란 돈꿰미입니다. [자서(字書)]나 [운서(韻書)]를 두루 고찰하여도 수목(數目)은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 더보기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시골 장터를 줄여야) -정약용 지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밥 파는 노파에게서도 배웁니다 上仲氏 시골 장터를 줄여야 ​ 오랫동안 백성들 사이에서 살며 백성들의 물정을 보았습니다. 시골의 장터가 마을마다 설치되어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커다란 폐속입니다. 재산을 낭비하고 농사짓는 일을 어지럽히며 술주정을 부리고 싸움판을 벌이는 일과 도적질하고 사람을 죽여 쓰러뜨리는 일 같은 변란이 일어나는 이유가 모두 장터 때문입니다. 단호하게 금하는 것이 마땅하며 큰 고을에는 오직 두 세곳만 남겨두고 작은 고을에는 단 한곳의 시장만 두게 한다면, 반드시 풍속이 순박해지고 송사(訟事)나 재판사건도 줄어들 것 같습니다. 시장을 주관하는 관청에서는 마땅히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 ​#유배지에서보낸편지 #정약용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