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선생 지석경영법 中 -정민 저
어느날 저녁 주인 노파가 제 곁에서 잡담을 나누다가 갑자기 묻더군요.
"나리께서는 글을 읽으셨으니, 이 뜻을 아실는지요?
부모의 은혜는 한가지인데, 어머니는 수고로움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가르침을 세울 적에 아버지는 무겁게 보고 어머니는 가벼이 여겨,
성씨도 아버지를 따르게 하고 상복(喪服)도 어머니는 낮추었습니다.
친가 쪽은 일가를 이루지만, 외가는 제외합니다. 너무 치우친 것이 아닌가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낳아주신 까닭에 옛 책에서는 아버지를 나를 처음 태어나게 해주신 분으로 여긴다네.
어머니의 은혜가 비록 깊지만 천지에 처음 나게 해주신 은혜가 더욱 중한 것일세."
"나리 말씀이 꼭 맞지는 않습니다.
제가 생각해볼 때 초목에 견준다면 아버지는 씨앗이고 어머니는 땅인 셈이지요.
씨를 뿌려 땅에 떨어뜨리는 것은 크게 힘든 일이 아니지만,
땅이 양분을 주어 기르는 일은 그 공이 몹시 큽니다.
하지만 조를 심으면 조가 되고 벼를 심으면 벼가 됩니다.
몸을 온전하게 만드는 것은 모두 땅의 기운이지만,
마침내 종류는 모두 그 씨앗을 따라갑니다.
옛날 성인께서 가르침을 세워 예를 제정할 적에 아마 이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이에 제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이 번쩍 들어 크게 깨닫고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표했습니다.
천지 사이의 지극히 정밀하고 미묘한 뜻을 밥 파는 노파가 펼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중씨께 올림
강진 읍내 주막거리 구석방에 살 때 있었던 일화를 적은 것이다.
손님이 없어 한가한 틈에 우연히 주막집 노파와 나눈 대화의 한 토막이다. 다산은 처음 유배되어 강진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모두 꺼려 묵어 잘 방 한 칸조차 구하지 못해 쩔쩔맸다. 그때 주막집의 구석방 하나를 노파가 내주었다. 그녀는 다산이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다산이 그녀의 매출장부가 엉망인 것을 보고,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말끔하게 정리해주자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무엇이든 헝클어지고 어지러운 것은 참고 보지 못하는 다산의 천성을 여기서도 볼 수 있따.
어쨌거나 다신은 이렇듯 주막집 노파와 우연찮게 주고받은 이야기도 그냥 흘러보내지 않고 기록해두었다가 공부의 화두로 삼았다. 다산은 스쳐지나가는 한마디도 절대로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 中 -정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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