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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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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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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공(奉公) 6

6. 차출되는 일(社役)

표류선(漂流船) 조사는 급하지만 어려운 일이니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




표류선을 조사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외국인과의 예의는 마땅히 서로 공경해야 한다. 늘 보면 우리나라 사람은 저들의 깎은 머리와 좁은 옷소매를 보고서 마음속으로 그들을 업신여겨 접대할 때의 문답에 체모를 잃어 경박하다는 이름이 천하에 퍼져 있으니, 이것이 첫째로 조심할 일이다. 각별히 공손하고 충실하고 신의 있게 하여 큰 손님을 대하듯 해야 한다.



 

 

둘째,

우리나라 법에 표류선 안에 있는 문자는 인쇄본이거나 사본이거나를 막론하고 모두 초록하여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에 표류선 한 척이 수만 권의 책을 가득 싣고 무장(茂長) 앞바다에 정박하였는데, 이를 조사한 관리들이 의논하기를 "장차 이를 모두 초록하여 보고하는 일은 작은 새가 흙을 물어 바다를 메우는 일과 같다. 만약 그 가운데 몇 가지만 골라 초록하면 반드시 엉뚱한 화를 당하게 될 것이다."하고, 마침내 모래밭을 파고 모든 책을 묻어버리니 표류인들은 크게 원통해했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나는 친구 이윤수(李儒修)가 그 뒤에 무장 현감이 되어 모래밭에서 [삼례의소(三禮義蔬)][십대가문초(十大家文鈔)]같은 몇 권의 책을 얻었는데, 아직도 물에 젖은 흔적이 있었다. 내가 강진에 도착하여 [연감유함(淵鑑類函) 한 권을 얻었는데 이미 심하게 썩었기에 "이 책이 무장에서 온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 책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크게 놀랐다.


대개 세상일이란 것이 본래 힘이 미치지 못하여 이루지 못한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산을 겨드랑이에 끼고 바다를 뛰어넘으라고 했을 때 신하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고 하여 정부에서 죄를 주면, 이것이 이치에 맞은 일이겠는가? 그런즉 마땅히 모든 서적을 진열하고 다만 책 이름만을 기록하되 그 권수를 상세히 해두고, "싣고 다니면 소가 땀을 흘릴 민하고, 집에 쌓아두면 천장에 닿을(汗牛充棟)' 정도로 많은 책을 갑자기 초록할 수 없어 책 이름만 기록하였다"고 보고하면 되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견책을 당하더라도 오직 웃음을 머금고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겠거늘, 도둑처럼 보물을 함부로 버린다면 그 외국인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오직 이치에 따르겠다고 마음먹고, 벼슬 떨어질까 겁내는 일이 없으면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다.



 

 

 

셋째,

표류선을 조사하는 일은 반드시 섬에서 일어난다. 섬사람들은 본래 호소할 길이 없는 사람들인데, 조사하는 일에 따라간 아전들이 조사관의 접대를 빙자해 침탈을 마음대로 해 솥과 항아리까지도 남기지 않는다. 표류선이 한번 지나가고 나면 몇 개의 섬이 모두 망하기 때문에, 표류선이 도착하면 섬사람들은 반드시 칼을 빼어들고 활을 겨누어 그들을 죽일 기색을 보여 도망하게 만든다. 또 혹시 바람이 급하게 불고 암초가 사나워 파선 직전에 있는 자들이 구원을 청해도 섬사람들은 침몰하도록 내버려 둔다. 배가 침몰하고 사람이 죽고 나면 은밀히 모의하여 배와 화물을 불태워 그 흔적을 없앤다. 10여 년 전에 나주 지방의 여러 섬에서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는데, 태워버린 염소 가죽이 수만 벌이고 감초 탄 것이 수만 곡(斛)이었다는데 불에 타고 남은 것이 있어서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

아둔한 수령들이 아전들을 단속하지 못해 나쁜 짓을 마음대로 하게 버려두니 백성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런 짓을 해버린다. 해외의 여러 나라가 만약 이 일을 들으면 우리를 사람고기로 포를 떠 씹어먹는 나라로 여기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표류선을 조사하는 관리들은 마땅히 눈을 밝게 뜨고 엄하게 살펴서 아전들의 침학을 금지시켜야 한다. 이를테면 큰 집 한 채를 따로 빌려 가마솥을 늘어놓고 아전들을 한 집에 같이 있게 하며, 그들이 먹는 쌀이나 소금은 관에서 돈을 주고 사들여 날마다 배당해야 한다. 잘 계획하여 한 톨의 쌀이나 한 줌의 소금이라도 그곳 백성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넷째,

좋은 것을 보고 실천하는 것은 작은 일도 그래야 한다. 지금 해외 여러 나라가 ㅈ선술이 많이 발전하여 운항에 편리하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인데도 조선술은 소박하고 고루하다. 표류선을 만날 때마다 그 선박을 상세히 그려두고 재목은 무엇을 썼고 뱃전과 판자는 몇 장을 썼으며, 배의 길이와 넓이 그리고 높이는 몇 도나 되며, 배 앞머리의 구부리고 치솟은 형세는 어떠하며, 돛. 돛대. 상앗대. 노. 키 등의 모양은 어떠하며, 배의 구멍 난 부분을 어떻게 메우는지 등의 배를 수리하는 법과, 익판( 翼板 )이 파도를 잘 헤치게 하는 기술은 어떠한가 등의 여러 가지 신묘한 이치를 상세히 조사하고 기록한, 그것을 모방할 것을 꾀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표류인이 상륙하면 그 배를 큰 도끼로 쪼개고 부수어 즉시 불태워 없애버리려 하니, 이것이 무슨 법인가? 뜻있는 선비가 이런 일을 맡았으면 마땅히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다섯째,

외국인을 대할 때에는 마땅히 동정하는 빛을 보여야 하며, 음식물 등 필요한 것은 신선하고 깨끗한 것을 주어야 한다. 우리의 정성에 그들도 감복하여 기뻐할 것이며 돌아가서 좋은 말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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