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목민심서>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728x90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

제7부

예전(禮典) 6조

3. 백성을 가르침[敎民]


 

 

백성을 편성해서 향약을 실행하는 것 또한 옛날부터 내려온 것이다. 위엄과 은혜가 이미 두루 미쳤으면 이를 행하는 것이 좋다.

 

뜻은 높으나 재주가 엉성한 수령은 반드시 향약을 실행하는데, 이 경우 향약의 해가 도둑보다 더 심하다. 향청의 일을 맡고 있는 가문과 토호들이 권력을 제 마음대로 휘둘러 백성을 공갈하고 위협하여 술과 곡식을 빼앗는데, 이들의 요구는 끝이 없다.

백성들의 드러나지 않는 허물을 적발하여 뇌물을 받고 보답을 요구해서, 가는 곳마다 술과 고기가 질펀하고 집에서는 송사를 처리한다고 소란스러우며, 부역은 어리석은 백성에게 떠맡기고 농사는 그들을 끌어다 짓는다.

수령은 또 고소장을 향약에 위임하여 그들로 하여금 조사하여 보고하게 하니, 세력을 믿고 저지르는 간사한 짓이 끝이 없다.

보성군(寶城郡)에는 교파(敎派)와 약파(約派)가 있다. 교파는 향교에 출입하는 자들이고 약파는 향약을 주관하는 자들인데, 서로 끊임없이 싸우고 모함하여 마침내 보성군의 풍송이 도에서 가장 나바 져버렸다. 이를 보면 향악은 가볍게 논의할 수 없는 것이요, 깊이 강구하고 곰곰이 생각해야만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이(李珥)가 임금께 이렇게 아뢰었다. "여러 신하들이 향약을 시행하자고 급하게 청했기 대문에 전하께서 명하여 이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신은 향약을 시행하는 것이 너무 바르다고 생각합니다. 백성을 기르는 것이 먼저 할 일이고 백성을 가르치는 것은 그 뒤에 할 일입니다.

지급 백성들의 생활이 너무 피폐하오니 서둘러 폐단들을 없애고 먼저 백성들의 고통을 풀어준 다음에 향약을 시행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덕을 가르치는 것은 비유하자면 좋은 쌀과 고기와 같습니다. 뱃속이 심하게 상해서 죽도 삼키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쌀밥과 고기인들 어떻게 먹겠습니까? 그러자 유희춘(柳希春)이 "이이의 말이 옳습니다."라고 말하였다.

허엽(許曄)이 "어찌하여 향약을 멈추게 권했습니까?"라고 묻자, 이이는 "먹고 입는 것이 넉넉한 연후에 예의를 안다고 하였으니,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백성에게 억지로 예를 시행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허엽이 "세상의 도덕이 융성하느냐 타락하느냐에 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으니 어찌하겠습니까?"라고 탄식하자, 이이는 "그대는 백성들이 아주 어렵고 고달프더라도 향약만 시행한다면 능히 백성을 교화하여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예로부터 백성이 도탄에 빠져 있는데 예의범절 있는 풍속을 이룬 일이 있습니까? 굶주리고 추운 것을 생각하지 않고 날마다 때리면서 학문을 권장한다면 아무리 가까운 아버지와 아들이라도 사이가 벌어질 텐데, 하물며 백성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허엽이 "요즘은 착한 사람이 많고 나쁜 사람이 적기 때문에 향약을 시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이이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마음이 착하기 때문에 남의 착한 것만 보고 나 같은 사람은 착하지 않은 자를 많이 보니, 분명 내 마음이 착하지 못해서 그런가 봅니다. 그러나 경전에 이르기를 '행동으로 가르치는 자에게는 따르고, 말로 가르치는 자와는 다툰다"고 하였으니, 오늘의 향약에 어찌 다툼이 없겠습니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