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독서노트,독서HAZA365>/독서노트-2018년

아트테이너 中 -심상용 저​

728x90

 

 

조영남 대작 사건이 던지는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

두 종류의 예술이 있다.
그 하나는 명품브랜드 신화를 맹렬하게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가능한, 현재의 주류예술에서 흔히 목격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냥꾼의 영혼으로 무장하고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또 하나의 예술은 이방인의 인식 안에서 열리는 것으로 타인에 대한 오만한 계몽주의적 주체가 정지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예술이다. 이 예술은 판에 박은 인식과 건력화 된 브랜드로부터는 조금도 허영될 수 없다.

주류 질서 안에 머물면서 주류 질서를 반성하기란 쉽지 않다. 역사와 당대사회를 직관하기 위해서는 역사 너머와 당대사회의 밖에 머물러야 한다. [나는 고발한다]에서 에밀 졸라의 태도가 그러했듯, 이방인의 시선으로 보고 느꺼야 하는 것이다. '고독한 사람이 되는것' '어떤 정파에도 얽매이지 않는 것', '오직 자신의 양심만을 따르고 진실만을 사랑하면서', 그것에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이 동반될 때조차 '자신의 길을 꿋꿋이 가는 것'이었다.





어떤 그리기건 그것에는 그린 이의 구체적인 존재성, 노동과 기술, 인식과 감각의 섬세한 교환의 흔적이 열력하게 각인되게 마련이다. 이 세계는 붓터치라는, 인식과 근육, 질료와 사유가 서로 변증적으로 삼투하는 작용을 끝도 없이 요구하는, 종종 부당하게 길고 지루한 과정의 산물이다. 강하거나 덜 강한 채색과 농담, 붓 터치들의 조밀하거나 성긴 밀도, 부드럽거나 거친 표면효과는 이 세계의 구성요인이 아니라 이 세계 자체다. 선의 가볍고 경쾌한 실행과 무겁고 과격한 실행 사이에서 셀 수 없는 가능성들이 열렸다가 닫히고 닫혔다가 다시 열리는 과정이 반복된다. 매끄러운 표면과 거친 표면 사이도 이와 같다. 차분함과 흥분 사이의 변주되는 톤을 정확히 예측하고 지정해 하나의 주문서 안에 빠짐없이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이다.



사실 우리는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회화에 대해서조차 잘 못알고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 세계의 결정적인 특성은 반 고흐의 그리기의 재능만으로는 결코 다 설명될 수 없으며, 오히려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에 의해 가능해진 세계라는 것이 그것들 가운데 하나다.

반 고흐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던 것은 자신의 회화의 잠재적 구매자인 파리 상류층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의 마음은 힘겨운 노동에도 감자로 끼니를 때우는 것 외에는 허락되지 않았떤 가난한 고앙부들과 그들의 '진실'에 가 있었다.

그는 진실과 동떨어진 취향을 택하도록 촉구했기 때문이다. 그의 붓과 물감은 그것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그런 마음은 사회적으로 낙오된 자신을 조롱해대는 아를르 사람들에게조차 대항하지 않았던 것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힘을 소유하는 것과 관련된 어떤 주도적인 시도도 하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힘의 부재가 자신의 존재성의 고유한 상태가 되도록 했다. 그가 자연의 약동하는 생명력에 대해 그토록 아름다운 해석을 내놓았던 때는, 자신이 철저하게 무력해졌던 생 레미 정신병원의 담장 안에 갇혀 있었던 때였다.

아트테이너 中  -심상용 저​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