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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독서HAZA365>/책속글귀-2018년

아직도 가야 할 길(2부 사랑) -M. 스콧 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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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입니다.~~^^


2부 사랑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하려는 욕구 자체는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란 행위로 표현되는 만큼만 사랑이다. 사랑은 의지에 따른 행동이며, 의도와 행동이 결합된 결과다. 의지는 또한 선택을 내포한다. 우리는 꼭 사랑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랑하기를 선택한다. 아무리 우리가 사랑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만약에 실제로 사랑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가 사랑하지 않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이 된다.





 



사랑은 자아 영역을 확대하는 것
참 사랑의 경험도 역시 인간 한계의 확장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한계란 인간의 자아 영역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랑을 통해서 우리의 자아 경계를 확장하는 것은 자아 영역을 넘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다가가 그 사람의 성숙을 도와주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가장 먼저 사랑할 대상을 찾아야 한다. 즉, 우리는 자아 영역을 훨씬 능가하는 자신 밖의 대상에게 매혹을 느끼고 완전히 몰두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러한 과정을 '정신집중'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자신 밖에 있는 대상에 집중할 때에 우리의 심리적으로 그 대상을 자신과 일치시킨다......

여러 해 동안의 사랑, 정신 집중 그리고 자기의 한계 확장은 결국 무엇을 가져다줄까? 그것은 점진적이고도 발전적인 자아의 확장,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의 통합, 이에 따른 자아 영역의 성장과 확장을 연쇄적으로 가져다준다. 이렇게 우리가 자신을 더욱더 많이 그리고 더욱 오랫동안 자아를 확장해 나가면 나갈수록 우리의 사랑은 더욱 깊어지고 자아와 세계의 거리는 좁혀진다.






의존성을 경계하라
사랑을 받는 것이 당신들의 목적이라면 그걸 성취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확실히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기 자신이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첫 번째 생의 목적이 수동적으로 사랑을 받는 것이라면 당신은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 말은 수동적 의존자는 남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이 하는 일들의 동기가 다른 사람이 자기와의 관계에 집작해서 자신만을 보호하고 자신만을 사랑하도록 하려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받을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일 때 그들은 '일하는 데' 큰 곤란을 느끼게 된다.

요컨대 의존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끈질기게 상대방에게 애착하도록 하는 힘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과는 정반대다. 그것은 부모의 사랑이 결핍된 데서 처음 시작된다. 그리고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추구하게 하며 성장하기보다는 어린아이로의 퇴행을 부추긴다. 이것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자유로운 해방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함정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의존성은 관계를 이룩해 주기보다는 파괴한다. 또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 주기보다는 파멸에 이르는 문으로 밀어 넣는다.


 

 

 


사랑이 없는 애착
갓난아이와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것이나 의존적. 복종적인 부부 사이의 사랑도 모두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본능적 행동은 '모성 본능' 또는 '부모로서의 본능'이라는 용어로 표현된다. 그리고 이것은 '사랑'에 바지는 본능적 행동과 비슷하다. 이것은 절대로 순수한 사랑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사랑은 상대적으로 노력이 별로 들지 않고, 전적으로 의지에 따르거나 선택에 따른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좀 더 엄밀하게 정의를 내리면, 우리는 인간만을 사랑할 수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물에 대해서 생각할 때 인간만이 근본적 성장을 할 수 있는 정신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단순히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지각 있게 주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지각 있게 주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지각 있게 칭찬하고, 지각 있게 비판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평안하게 해 주는 것과 더불어 지각 있게 논쟁하고, 투쟁하고, 맞서고, 몰아대고 밀고 당기는 것이다.

그것은 '지도'를 필요로 하는 관계다. 지각 있다는 것은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며, 판단은 본능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심사숙고해야 하며 때로는 고통스러운 결정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사랑은 느낌이 아니다.
나는 사랑이란 하나의 행동이고 하나의 활동이라고 말했다. 사랑에 대한 마지막 그릇된 오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랑은 느낌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책임과 지혜가 뒤따른다.

진정한 사랑은 애착을 초월한다는 뜻이다. 참 사랑은 애착이나 사랑의 느낌과는 상관없이 실존하는 것이다. 물론 애착이나 사랑의 느낌을 가지고 하는 사랑이 훨씬 재미있고 수월하다. 그러나 애착과 사랑의 느낌 없이도 사랑할 수 있다. 이를 구별하는데 있어서 열쇠가 되는 게 바로 '의지'이다. 나는 사랑에 대해 정의하기를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키려는 의지'라고 했다. 진정한 사랑은 감정이기보다는 의지적인 것이다.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녔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행동하는 만큼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은 선과 악처럼 객관적인 것이지 주관적인 현상이 아니다.



 

 

 


 


사랑은 깊이 관심을 갖는 것
사랑하는 일이란 원칙적으로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는 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즉, 그 사람의 성장을 기원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사랑할 때 우리는 자신의 성장에 관심을 둔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때는 또한 그 사람에 대해 근심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행동은 우리 자신의 의식을 변환시키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의지로 가득 찬 행동으로, 마음속에 굳어진 타성에서 뛰쳐나올 것을 호소한다. 이러한 노력에 대해 롤로 메이는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현대의 모든 정신 분석 도구를 다 이용해서 의지를 분석 할 때, 의지가 굳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행한다는 것임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의지 있는 행동을 하고자 하는 노력은 실제로 관심을 기울이려는 노력이다. 의지적인 행동을 할 때 나타나는 긴장은 의식을 명백히 지탱하려는 노력이며, 그것은 또한 집중적인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노력이다. "
관심을 행동으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평범하고 중요한 방법은 말을 들어 주는 것이다.



 

 


 


사랑은 훈련되는 것
나는 자기 훈련의 힘이 사랑에서 나오며 이것은 의지의 한 가지 유형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따라서 자기 훈련은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한 것이며,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훈련된 행동을 한다. 지정한 사랑의 관계 역시 훈련된 관계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내가 참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내 행동을 어떻게 해서든 교정하고 그 사람의 정신적 성장에 최대로 이바지하려고 할 것이다.

정열이란 거대한 심층적 느낌이지 제어되지 않는 감정이 아니다. 잘 알려진 격언에 "얕은 시냇물은 시끄럽지만, 깊은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이 감정을 잘 조절하고 평정을 유지한다고 해서 그 사람은 정열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간주할 수는 없다. 사람이 감정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또한 자기 절제가 너무 철저해 감정을 짓누르는 것도 안 된다.

인간의 감정을 적절하게 다루는 데에는 복잡하지만(절대 단순하거나 쉽지 않다) 균형 잡힌 중용의 길이 있다. 그것은 끊임없는 비판과 적절한 조절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주인은 그의 감정(노예들)을 존중하고, 좋은 음식, 집, 의료 혜택 등을 제공하며 그들의 말을 들어 주고 대답해 주며, 그들이 건강에 대해 걱정하면서 그들에게 규율을 정해 주고, 제한도 하며, 분명하게 결정해 주고, 새로 방향 지어 주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며, 더불어 누가 윗사람인가에 대하여 의심할 여지없이 분명히 해 준다. 이것이 건전한 자기 훈련의 길이다.


감정 중에서 분명 훈련되어야 하는 것은 사랑의 감정이다. 내가 지적한 대로 이것은 그 자체로서는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순간적인 애착이나 정신 집중일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정신 집중이 자아 가져다줄 창조적인 힘을 위해서 이것은 존중되고 길러져야 한다.

이것이 제멋대로 가게 놔두면 그 결과는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혼란과 비생산성을 낳는다. 진정한 사랑은 자아의 확장을 포함하기 때문에 거대한 양의 에너지가 요구된다. 그러나 좋든 싫든 우리가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는 양은 하루 24시간에 비례한다. 쉽게 말해 우리는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다.....

결론적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또 그가 사랑할 대상이 많은 사람이라도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 선택해야 한다. 이 선택은 쉬운 게 아니다. 어쩌면 이것은 신의 역할을 맡아 수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많이 괴로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택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선택에서 많은 요인들이 고려되어야 하는데, 첫째로 사랑을 받을 사람은 그 사랑으로 인해 정신적 성장을 이룰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의 이러한 능력에는 각각 차이가 있다. 갑옷으로 무장한 듯 마음의 문이 꽁꽁 닫혀 아무리 이쪽에서 노력해도 그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진정으로 사랑할 때 나 자신을 확대하고 있으며, 나 자신을 확대할 때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 커진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다시 채우는 것이다. 내가 달ㄴ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도우면 도울수록 나 자신의 정신적 성장도 더욱더 촉진된다. 나는 완전히 이기적인 인간이다. 나는 절대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내가 사랑을 통해 성장함에 따라 내 기쁨도 증가하고, 계속해서 증대될 것이다.


 

 




사랑은 분리됨에 있다.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촉진하는 행동이 자신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진정한 사람의 주요 특징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구별이 언제나 유지되고 보존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상대를 전적으로 나와 다른 아이덴티티를 가진 한 사람으로 인지한다.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은 항상 사랑하는 사람의 독특한 개성을 존중하고 더 나아가 그 개성을 격려해 준다. 이처럼 상대방과 나와의 개별성을 존중하지 못할 때 그것은 많은 정신 질환과 불필요한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독립성을 인지 못하는 극단적인 형태가 바로 나르시시즘 Narcissism이다.




​"십 대가 되기까지는 대개의 부모가 아이를 효과적으로 다루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다음부터는 부모 자신이 더 이상 변화할 수가 없어서
계속해서 성숙하고 달라지는 아이의 요구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 결과 좋은 부모로서의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랑의 예와 마찬가지로 부모 노릇 하는 데 따르는
괴로움을 자기희생이나 순교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부모가 아이보다 그 과정을 통해 얻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변화하는 고통을 이겨 내겠다는 의지가 없고,
성장하는 아이에게서 배울 의사가 없는 부모는
부지불식간에 노망의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아이와 세상은 그런 부모를 뒤에 남겨 놓을 것이다.
아이에게서 배운다는 것은 대개의 사람들이 의미 있는 노년을 보내기 위해
자신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칼릴 지브란

 

 

 



분리되어 있음의 지혜(일심동체가 아닌 이심이체)로 말한다.
그러나 당신 부부 사이에는 빈 공간을 두어서,
당신들 사이에서 하늘의 바람이 춤추도록 하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서로 포개어지지는 마라.

당신 부부 영혼들의 해변 사이에는 저 움직이는 바다가 오히려 있도록 하라.
각각의 잔을 채워라. 그러나 한 개인의 잔으로 마시지는 마라.

서로 당신의 빵을 주어라. 그러나 같은 덩어리의 빵을 먹지는 마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라. 그러나 각각 홀로 있어라.

현악기의 줄들이 같은 음악을 울릴지라도 서로 떨어져 홀로 있듯이.
당신 마음을 주어라. 그러나 상대방 고유의 세계 속으로는 침범하지 마라.

생명의 손길만이 당신의 심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서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붙어 서지는 마라.
사원의 기둥들은 떨어져 있어야 하며,
떡갈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칼릴 지브란


 아직도 가야 할 길(2부)   -M. 스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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