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제25장
나는 그 이름을 모릅니다.
-근원으로서의 도
분화되지 않은 완전한 무엇,
하늘과 땅보다 먼저 있었습니다.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고,
무엇에 의존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고,
두루 편만하여 계속 움직이나 [없어질]위험이 없습니다.
가히 세상의 어머니라 하겠습니다.
나는 이 이름을 모릅니다.
그저 '도'라 불러 봅니다.
구태어 형용하라 한다면 '크다大'고 하겠습니다.
크다고 하는 것은 끝없이 뻗어 간다는 것,
끝없이 뻗어 간다는 것은 멀리 멀리 나가는 것,
멀리 멀리 나간다는 것은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도 크고,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임금도 큽니다.
세상에는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사람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습니다.
출처: 도덕경 -老子 원전. 오강남 풀이
이 장은 제1장, 제14장, 제21장, 제40장과 함께 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요한 장에 속한다.
천지가 창조되었다는 태초보다도 더 이전에 '무엇物'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혼混 혹은 혼돈混沌인데 혼잡하다거나 무질서하다는 식의 부정적 의미로서의 'chaos'가 아니라, 모든 것의 근원으로서 그 안에 모든 것을 잠재적으로 포괄하고 있는 '분화되지 않은 무엇 (the Undifferentiated)'을 말한다.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은 '미발未發'상태의 무엇 혹은 '포괄자(the Allembraching)'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신유학에서 말하는 무극無極, 태극太極 중에서 음양으로 갈라지기 전의 태극(Supreme Ultimate)에 해당되는 개년미알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노자], [장자]에서는 이 '혼돈'을 모든 것의 시원으로 본다.
통전적, 통일적 실체로서 모든 가능성을 그 속에 머금고 있는 '완전한 무엇'이다.
이것은 분화 이전, 창조 이전의 개물個物들의 근본 자리이기 때문에 물론 소리도 형체도 있을 수 없다. 무엇에 의존하지도 않고 독립된 자존적自存的존재이다.
중세 철학에 쓰던 'aseitas'라고나 할까.
이것은 또 '변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변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고착되거나 정적인(static)무엇으로 가만히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이랬다 저랬다 변덕을 부리지 않고 항존한다는 뜻이다.
'두루 편만하다'는 것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여 어디서나 역동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변화의 근원이지만 그 자체로서는 변하거나 지치거나 없어지지 않는 무엇이다.
모든 것이 여기서 나온다는 뜻에서 이것은 세상 모든 것의 '어머니'다
'어머니'라는 것은 상징이지 그 무엇의 이름 자체는 아니다.
제1장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은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엇無名'이다.
절대적인 것은 어떤 이름이나 범주로 한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름이 아니라 뭔가 그냥 덧붙여 보는 자字로 말하면 '도'라 할 수 있다고 한다.
'도'라 하는 것도 엄격히 따지자면 그 무엇의 참 이름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구태여 뭔가로 표현하자면 '크다'는 말이나 써 볼 수 있을까?
크다는 것은 무한하다는 것, 무한하다는 것은 끝없이 뻗어 나간다는 것, 끝없이 뻗어 간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기에게 되돌아옴을 뜻한다.
절대적이고, 전일적이고, 무소부재하므로 아무리 뻗어 나가도 결국 그 자체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확대(evolution)와 축소(involution)의 순환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가?
아무튼 여기서 강조하려는 것은 도의 정적 존재성(static being)의 면보다는 역동적 생성(dyanmic becoming)의 면임이 분명한 것 같다.
'도'는 크다. 도를 본받는 하늘도 크다.
도를 본받으므로 위대해진 하늘, 그 하늘을 본받는 땅도 크다.
도를 본받으므로 위대해진 하늘, 그 하늘의 본받으므로 위대해진 땅, 그 땅을 본받는 사람도 크다(여기서 '임금'이라고 했지만 '사람'이라고 된 사본도 있고, 임금이란 사람들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사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모든 위대함의 근원은 '도'다.
사람의 위대함도 땅과 하늘을 거슬러 올라가 도를 본받는 데서 비롯한다.
'도'는 무엇을 본받는가? 도는 '자연自然'을 본받는다고 한다.
해석이 구구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기서 말하는 자연이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산천 초목 같은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문자대로 '스스로 그러함'이다. 영어로 'self-so'나 'spontaneity'로 번역하기도 한다.
따라서 '자연을 본받는다' 함은 '스스로 그렇게 존재한다'는 뜻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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