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에 잠 못 들고
1
어릴 때는 성인(聖인)을 배우려 했고
중년에는 현인(賢人)이라도 되려다가
늘그막엔 우인(愚인)으로 만족하고 있으니
걱정이 되어잠이 오질 않네.
2
복희(伏羲)의 시대가 아니니
복희에게 물을 수도 없고
공자의 시대가 아니니
공자에게 물을 수도 없네.
3
밤에도 빛이 나는 구슬 하나를
우연히 오랑캐 상인의 배에 실었는데
큰 바다 폭풍에 배가 가라앉아
영원히 그 빛을 볼 수 없다네.
4
입술은 타고 입 안은 마르고
혀는 갈라지고 목은 쉬었네.
내 마음 헤아릴 이 없는데
하늘이 성큼 어두워 오네.
5
취하여 북산(北山)에 올라 통곡하니
통곡 소리 하늘에 닿누나.
곁에선 이 맘을 모르고서
제 신세 가련해 운다 하네.
6
천 명이 술주정하는 가운데
단정한 선배 하나 엄숙하면
천 명 모두 손가락질하며
한 선비를 미쳤다 하겠지.
7
늙음도 피할 수 없고
죽음도 피할 수 없는데
한번 죽으면 다시 나지 못하는
이 인간세(人間世)를 하늘로 아는구나.
8
눈앞에 얽혀 있는 일들
제대로 된 것 없고
정리할 길도 없어
생각하면 마음만 아프네.
9
마음은 몸의 노예라고
도연명(陶淵明)도 말했지만
백 번 싸움에 백 번을 지니
나는 왜 이리도 못났을까?
10
태양은 나는 새처럼 빨라
총알도 쫓을 수 없고
잡아맬 수도 없어
생각하면 속만 상하네.
11
범이 이리 양을 잡아먹고
붉은 피가 입술에 번들한데
범과 이리를 당당한 위세에
여우 토끼는 인자하다 칭송하네.
12
탐스럽고 아담한 복사나무
봄에는 가지마다 꽃이 피어도
해 지나서 꺾이고 잘리면
쓸쓸히 옛 모습이 아니라네.
다산의 풍경 中 -정약용 시 선집
노래로 근심을 푸노라
1
부리(鳧吏)가 꼭 치우친 것도 아니고
중국(中國)이 꼭 가운데인 것도 아니지.
둥글둥글 흙덩어리 지구에는
본래 동(東)도 서(西)도 없다네.
2
세상의 책을 모두 소화해
[주역](周易)으로 내놓고 싶었는데
하늘이 그 귀한 걸 내어 주려고
내게 3년째 귀양살이를 선물하였네.
3
하늘 있어 내 머리 들 수 있고
땅이 있어 발 디딜 수 있으며
물 있고 곡식 있어
그냥 배는 채울 수 있네.
4
부귀는 참으로 한낱 꿈이요
불행 또한 한낱 꿈이니
꿈 깨면 그뿐이지
온 우주가 한갓 농담인 것을.
5
세상 걱정 하나하나 따져 보면
처자식 걱정이 그중 제일.
누가 알겠나 집 나온 사람이
이렇게 호탕하게 놀고 있는 것.
6
진흙탕 돼지와도 어울리고
구더기도 좋아하게 되었으니
미인과 맛있는 음식은
두어라 말할 것도 없네.
7
높이 오르면 떨어질까 늘 걱정이지만
떨어지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네.
수레 타고 관 쓴 이들 쳐다보면
아슬아슬 거꾸로 매달린 것 같아.
8
부귀를 밑천 삼아 나쁜 짓을 하니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이지
나는 지금 깃 잘린 새가 되어
잔인한 짓 않는 걸 덕으로 삼는다네.
9
물고기 먹는 사람을 보았겠지
맛과 독을 함께 먹는 거라네.
맛을 즐기지만 않는다면
독을 뱉지 않아도 될 텐데.
10
아기가 까닭 없이 울기도 하고
까닭 없이 방긋 웃기도 하듯이
기쁨과 슬픔은 본래 까닭 없는것
나이가 많을 뿐 어른도 마찬가지
11
뜻을 펴지 못하면 애석해들 하지만
등용된 후에는 험담만 무성하지.
그래서 소부(巢父) 허유(許由) 무리는
고개 내젓고 한가히 지냈다네.
12
백성들이 굶어도 날 원망 않을 테고
백성들이 아둔해도 난 모를레라.
훗날 나를 두고 말하겠지
뜻을 이뤘으면 큰일을 했을 거라고.
다산의 풍경 中 -정약용 시 선집
아름다운 난초
1
아름다운 난초가
산비탈에 돋았네.
참 아름다운 나의 벗
덕을 지녀 반듯하여라.
다른 벗도 좋아하지마는
그대 생각을 정말 많이 한다오.
2
아름다운 난초가
산비탈에 돋았네.
요즘 사람들처럼
빨리 변하지 않는
그대를 잊지 못해
내 마음은 어쩔 줄 모른다오
3
아름다운 난초가
쑥대밭에 돋았네.
시들고 무성한데
누가 손질해 줄까.
그대를 잊지 못해
내 마음은 애닯다오.
다산의 풍경 中 -정약용 시 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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