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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주역]의 연구방법) -정약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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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귀양살이의 괴로움을 잊는법


 

[주역]의 연구방법

 

[주역]에 관한 조그만 연구서는 둘째아이 학유에게 공부감으로 준 것인데, 그 애가 벌써부터 즐겨 하지 않기에 책상 위에 그냥 놓아둔 것을 때대로 자세히 읽어보고는 껄껄 웃노라니 귀양살이 괴로움을 잊을 만합니다.

 

몇해 전의 초고를 열람해보니 갈지 않은 옥이요, 제련하지 않은 광석이요, 아직 찧지 않은 겨 붙은 벼요, 뼛속이 드러나지 않은 껍질이요, 아직 굽지 않은 도자기며 설익은 목수와 같습니다.

 

[시경]에 '절차탁마'라 했는데 바로 이를 두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 또 하나의 효(爻)를 고쳤습니다. 만약 제가 앞으로 10년의 시간을 더 갖고서 [주역]공부를 마친다 해도 또 고쳐야 할 곳이 나올 겁니다.

 

[주역] 가운데서도 감(坎) 이(離) 이(頤) 대과(大過) 중부(中孚) 소과(小過) 등의 괘는 성인이 마음쓰신 바가 기기묘묘한 곳들입니다.

 

또한 "부유함으로써 그 이웃을 좌우하는 것은 믿음이 있어 서로 밀접하기 때문이다(富以其隣有孚孿)부유기린유부산"라든지 "달이 거의 보름에 가까웠다"(月幾望)월기망등은 땅 밑까지 꿰뚫고 들어가야 비로소 물을 얻어낼 수 있는 것처럼 반드시 그러한 종류 전체를 합해서 함께 비교해보면서 살핀 후에야 그 오묘함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역]을 공부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먼저 조용한 장소를 구해야 합니다.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아기 보채는 소리, 아낙네 탄식하는 소리 등이 가장 꺼려집니다. 어떻게 해야 그러한 곳을 얻을 수 있을까요?

금년 다섯가지 대사면에서 모든 탐관오리와 살인 강도범까지 석방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데, 이름이 임금께 아뢰어져 있는 사람은 거론조차 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이것은 엄하게 단속하려는 것이 아니라 남의 아픔을 까마득히 잊어먹은 때문일 것입니다.

 

고관대작의 집안과 굶주려 추위에 떠는 사람들 사이에는 본래가 잊어먹게 마련이니 한탄할 것 있겠습니까?

 

이제 풀려나 집에 돌아간다 해도 바람벽만 남은 집에 곡식이라고는 설 전에 다 떨어지고 늙은 아내의 얼고 굶주린 모습이나 아이들의 처량한 모습뿐일 테지요.

 

두분 형수께서는 "왔으면 왔으면 했는데 와도 그 모양이구나"라고 할 겁니다. 태산이 등을 누르고 큰 파도가 앞을 가리고 있으니, 만약 풀려난다면 [주역]에 관한 공부가 가마득해질 것이고 음악공부도 봄철의 개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무슨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이곳 다산을 제가 죽어서 묻힐 땅으로 정해주셨으며, 보암산(寶岩山) 몇뙈기 밭을 식읍지로 주셨고, 한해가 다 가도록 아이들의 울음소리, 아낙네의 탄식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니, 이처럼 복이 후하고 지위가 높은데도 이 세가지의 깨끗한 신선세계를 버리고 네겹으로 둘러싸인 아비규환의 세계에다 몸을 던지려 하니 천하에 이렇게 어리석은 사내가 있을 수 있습니까?

이 이야기는 억지로 지어낸 말이 아니라 마음속 계획이 정말 이렇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돌아가고픈 심정도 사라진 적이 없었으니 사람의 본성이 원래 약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분명코 간음이 그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의 아내나 첩을 도적질하려하고 분명코 생계가 파탄남을 알면서도 더러는 마작을 하는 수가 있듯이, 저에게 돌아가고픈 마음도 이런 유의 심정이지 어찌 본심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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