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밥 먹는 것과 잠자는 것도 잊고
答仲氏
지금 [논어]를 연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사서(四書) 분야에는 결코 누락된 해석이 없다고 말합니다. 굉보(紘父)*가 과거공부로부터 돌아와 발분하여 경학과 예학 분야에 몸을 바치고 있는데, 그를 가르치려다보니 안경을 쓰지 않고는 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고 보니 여기에도 떨어진 볏단이 있고 저기에도 남은 이삭이 있으며, 여기에 거두지 않은 볏단이 있고 저기에 거두지 않은 늦벼가 있어서, 전도가 낭자하여 이루 다 수습하지 못할 지경입니다.
어린시절 새벽에 밤나무 동산에 나갔다가 갑자기 난만히 땅에 흩어져 있는 붉은 밤알들을 만나 이루 다 주울 수 없는 것과 같은 격이니 이를 장차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평소 [논어]에 대한 고금의 여러 학설을 수집한 것이 많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만, 한장(章)씩 대할 때마다 모조리 고찰하여 그중 좋은 것은 취해다가 간략히 기록하고 의견이 대립하는 것은 취해다가 논평하여 단정했으니, 이제야 이밖에 새로 더 보충할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도 고금의 학설들을 두루 고찰해보면 도무지 이치에 합당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이때는 어쩔 수 없이 책을 덮고 눈을 감은 채 앉아서 더러는 밥 먹는 것도 잊고 더러는 잠자는 것도 잊노라면 반드시 새로운 의미나 이치가 번뜩 떠오르게 마련입니다.
[학이(學而)]와 [위정(爲政)] 두편에서 새로운 의미와 이치를 깨달은 것만도 이미 10여조목이나 됩니다.
또 대립되는 학설을 결론지은 것 중에는 두 사람이 인용했던 것 이외에 따로 있었던 단안(斷案)이 오늘에야 비로소 나오게 되어 패배한 이론들로 하여금 다시 말할 수 없게 만든 것이 많습니다.
하늘이 만약 나에게 세월을 주어 이 작업을 마칠 수 있게 해준다면 그 책은 제법 볼 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탈고할 방법이 없으니 매우 안타깝습니다.
*굉보: 다산의 18제자 가운데 하나인 이강회(李鋼會)의 자로, 서울사람인데 다산에 와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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